예수교 장로회 통합 측의 관습이나 헌법 개정의 기준은 다수결에 의한 여론 몰이에 불과했다.

치리는 형사소송법으로, 헌법의 개정작업들은 다수결에 의한 여론 선동: 이것이 거의 유일한 기준이다.

공헌배 | 입력 : 2018/10/08 [10:15] | 조회수: 768

사람들은 ‘J. A. 핫지’라는 이름에 익숙하지 않다. 특히 통합 측에서 교육 받은 나는 이 이름을 신학교 생활 12년 동안(학부, 신대원, 대학원 석사) 한 번도 들은 일이 없었다. 아니, 나는 이 이름을 박사학위 취득 후에서야 알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신학교육 기관에 그토록 많은 등록금들을 쳐 바르고도 이런 이름조차도 듣지 못한 나는 너무 억울했다.

 

그 따위의 교육커리큘럼으로 가르쳐놓고서도 교회로 가라고 하신 신학 선배님들에게 매우 유감이다. 한국교회사에서 곽안련이란 이름은 아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 분이 번역하신 <교회정치문답조례>는 필독서인데, 오늘날 이 책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도대체 출판사들은 무엇을 해왔는지 모를 지경이다. 어떤 분은 이 책을 번역했던 데, 나는 그 번역본을 신뢰하지 않는다. 옛 한글체로 돼 있는 데, 무슨 번역이 필요한가? 조선말도 모르는가?

 

토시 하나도 고치지 말고 그대로 출판하면 된다. 띄어쓰기, 맞춤법 교정 다 필요 없다. 점 하나도 수정하지 말고, 그대로 100%로 완벽하게 찍어내면 된다. 왜냐하면 그게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판은 1882년 판 What is Presbyterian Law?이며, 이 책의 개정판은 1884년도에 나온 것 같다. 이 정도의 책도 배우지 못했으면서 소위 ‘장로회 정치’니 ‘장로교’니 해댔지 않았는가? 소위 ‘교회법학회’라는 곳도 사실은 국가법이나 민법, 대법원 판례 등을 많이 인용하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장로회 정치’가 아니다.

 

단지 일부의 장로회 정치에다 사회법을 섞어놓은 셈이다. “장로교”라는 말은 추상명사로서 뜻이 없다. 칼뱅주의 교회의 역사가 500년 정도인데다, 대륙에 따라, 지역에 따라, 교파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다 다른 그 모든 사태들이 장로회 정치인데, 이게 어떻게 단수로 쓰일 수 있는가? 어림도 없다. 그래서 더러 “이것이 장로교”라든가, “저것이 장로교”라는 발성들은 다분히 포괄적이며, 뜻이 없다. 차라리 “대한예수교 내 법대로 파”로 부르는 편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예수교 장로회 통합 측의 관습이나 헌법 개정의 기준은 다수결에 의한, 여론 몰이에 불과했다. 즉 기초나 기본매뉴얼 교육들을 부실하게 받은 사태에서 저마다 자신의 소견들을 말씀해댔다고 여겨도 될 듯하다. 왜냐하면 교육받지 못했으며, 자료들은 없었고, 대부분의 신학 교수들은 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주 기본적으로 몇 개만 소개한다.

 

곽안련 교수님이 옮기신 <교회정치문답조례>의 314문을 따르면, 다음과 같다:

 

313問: 牧師候補者(목사후보쟈)라난거슨무어시뇨(* 원문에는 띄어쓰기 없음).


答:牧師候補者(목사후보쟈)라난거슨牧師(목사)되기를願(원)하난者(쟈)니本老會(본로회)가該敎友(그교우)에계對(대)하야信仰(믿음)과牧師(목사)되기를願(원)하난理由(리유)와牧師職分(목사직분)에對(대)한資格有無(자격유무)를調査(됴사)한後(후)에神學校(신학교)에入學(입학)함을許諾(허낙)할거시니라

 

314問: 牧師候補者(목사후보쟈)난누구의管轄下(관할아래)에잇나뇨


答: 本敎會堂會(본교회당회)管轄下(관할아래)에잇고學業(학업)에關係(관계)되난事(일)은老會(로회)가基才智(그재지)와勤慢(근만)을考察(고찰)하얏다가講道認許(강도인허)의合當與否(합당여부)를作定(쟉뎡)하되不足(부족)한者(쟈)로認定(인뎡)하면該名簿錄(그명부록)에셔 基名(그일흠)을削去(삭거)할지니라

 

이게 상당히 중요하다. 오늘날에는 신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학교 내의 규율로써 처벌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신학교에서 가만있어도 노회에서 그 신학생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명하거나 그만두게 하거나 정학시킬 수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즉 목회자 후보자들(신학생들)을 관할하는 곳은 노회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목사임직식은 어디서 하는 것이 합당했을까?

 

320問: 牧師(목사)를어대셔將立(쟝립)하난거시合當(합당)하뇨


答: 將立(쟝립)受(밧)난者(쟈)의治理(치리)할敎會(교회)에셔行(행)하난거시合當(합당)하나該 地方(그디방)이迢遠(쵸원)하야老會(로회)가前往(전왕)하기難(어렵)던지宣敎師(선교사)를將立(쟝립)하난時(때)에난老會(로회)의會集處(회집처)에셔將立(쟝립)을擧行(거행)할거시니라

 

즉 목사의 임직은 시무할 교회에서 실행해야 한다고 돼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처럼 노회 개회도중 노회에서 하는 게 아니라 목사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임직한다. 그렇다면 이게 전통의 매뉴얼인가? 두말할 나위 없다. “웨스트민스터교회정치(1645)”를 따르면, 목사의 임직은 그 목사가 시무할 교회에서 실행한다(아래의 몸글: 2016년 3월 16일;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에 나타난 목사고시”를 참고).

 

즉 전통의 매뉴얼인 웨스트민스터교회정치(1645)를 따르면, 노회가 목사후보자를 개(個)교회로 파송하고, 개 교회에서는 교인들과 목사후보자와의 일정한 기간들을 보내면서 교감들(모시고 싶은 마음들)이 생겨, 노회에 청빙(請聘)을 보내면, 노회에서 개 교회로 가서, 임직식을 거행한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전통의 매뉴얼은 파송형식이다. 다시 말해 (노회에서)파송 후, (지 교회에서의)청빙(請聘)승인형식이다. 필자는 이 부분을 곽안련의 <교회정치문답조례>에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장로파 교회에서는 노회파송 후, 지 교회에서의 청빙승인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노회는 파송권을 갖는다: 더 쉽게 설명하면, 개 교회가 자신들 마음에 드는 목사후보자를 모셔놓고 노회에 허락받는 형식이라기보다는 노회에서 개 교회로 보내 준 목사를 받을래/ 말래?하고 묻는 형식이다), 19세기의 산물인 J. A. 핫지의 책을 그대로 옮겼다면, 당연히 곽안련의 <교회정치문답조례>에서도 그 개념을 전제했거나 그런 개념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짙다.

 

정리해보자.

 

곽안련 교수(선교사님)께서 옮기신 <교회정치문답조례>에 의하면, 목사의 임직식은 그 목사가 시무할 교회로 가서, 실행한다. 이는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의 형식과 닮았다. 그러나 곽안련의 책에서는 예외를 두었는데, 내왕하기 어렵든가, 정확하게 개(個)교회 하나 만을 맡을 필요가 없었던 선교사의 경우다. 즉 오늘날의 기관목사들처럼 선교사는 그 목사임직식을 노회에서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를 맡는 목사들은 자신이 시무할 교회에서 임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를 두었는데, 교통이 불편한 경우다.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를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유일할 정도의 대중교통수단이 철도였다. 즉 버스가 없다. 말(馬)을 타거나 걸어 다녀야 했다. 특히 오지와 같은 곳은 통행도 힘들었다(어떤 기록을 따르면, 언더우드는 조선에서 여행할 때 안전 때문에 권총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이럴 경우 노회에서 지 교회까지 행차하기가 어렵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노회에서 목사임직식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 목사가 시무할 개(個)교회에서 임직한다.

 

당연히 교인들에게 “000목사님을 여러분의 목사님으로 받으시며, 그분에게 생활비를 드리고, 그분께서 실행하시는 치리에 순종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이럴 때, 교인들이 “예”하고 대답하면, (노회에서 파송 된)집례목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했을 듯하다. <교회정치문답조례>에는 목사임직에 관한 규정도 있다. 당연히 목사안수는 미국 북(北)장로회의 전통을 따라, 목사들만 안수하는 것이 원칙이다(<교회정치문답조례>, 321문과 답에 나온다: 필자는 이거 두 군데서 봤다).

 

그러면 목사의 아들이 그 교회의 목사로 청빙될 수 있는가? 가능한 듯하다(<교회정치문답조례>, 327문과 답). 즉 여기서는 목사의 아들이 그 교회의 목사로 갈 수 없다는 규례가 없다. 다시 말해 개교회가 원하는 자를 노회에 서류로 보내고(어찌 보면 노회에서 파송해달라는 뜻처럼 보이기도 한데, 좀 더 연구해보아야 한다), 노회에서 심사 후, 허락하면 노회에서 개교회로 가서 위임식 한다. 이와 같이 되어 있다. 즉 목사는 노회소속이지만 목사후보자는 노회의 관할 아래 있다. 쉽게 설명하면 강도사(목사후보자)를 노회에서 관리하는 데, 개(個)교회에서 모 강도사를 목사로 모시기로 청빙(연빙)서류로 제출하고, 노회에서 검토 후, 허락하게 되면, 지교회로 가서 위임식을 하는 구조다.

 

오늘날과는 좀 차이가 있다. 그럼 이미 목사 된 자가 개교회로 취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임직식이 아니고 목사의 이명과 비슷할 듯하다. 그래서 초기의 <교회정치문답조례>는 전통의 매뉴얼인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를 상당히 반영한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한민국 장로파 교회들 중에서도 특히 통합 측은 사회의 규율들을 적지 않게 베꼈다. 그래서 교단보다 개(個)교회의 정관들을 더 중요시하는 민법의 판례들을 많이 고려한다. 그리고 원래의 매뉴얼에서의 치리는 재판형식과는 다르지만 광복이후부터는 통합 교단에서 형사소송법들을 적지 않게 베꼈다. 결국 교회의 치리가 재판으로 변질됐다.

 

내가 화가 난 이유?

 

내가 화가 나는 게 바로 이와 같은 사태들이다. 오늘날의 신학교들은 사회의 대학교 행정들을 너무 많이 따른다. 그래서 목사후보자들의 교육기관들이 아니라 마치 일반대학교의 종교학과 부설 단과대학처럼 여겨질 정도다. 물론 신학 교수들의 년봉들 역시 일반대학교의 교수들 못지않게 높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를 따르면, 목사안수는 노회가 관할하며, 목사임직의 필수요건으로 신학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대를 나왔던, 자연과학대학을 나왔던 관계없다. 목사고시에 합격하면 된다. 그런데 그 목사고시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그와 같은 매뉴얼을 실행할 능력자체도 없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한국어로 번역하기로 총회에서 결의 한 게 1960년대 후반이었다.

 

그럼 갈라진 총회에서의 행동 패턴들은 어떻게 됐을까? 전통의 매뉴얼들을 간과한 채, 법대출신들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치리는 형사소송법으로, 헌법의 개정작업들은 다수결에 의한 여론 선동: 이것이 거의 유일한 기준이다. 미안하지만 이와 같은 행태는 칼뱅주의가 아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왜 이를 인정하지 않는가? 왜 자신들이 부실하게 배웠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느냐 말이다. 이와 같은 자기고백적 회개들 없이: 공(公)교회니, 헌법이니, 총회의 결의니 하는 등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속한 교파가 자랑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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