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헌배의 쓴 소리, " PD수첩, 불교와 카톨릭은 부동산이 없는가?"

명성교회 부동산, 개인소유가 아니라 교회의 재산들이다

공헌배 | 입력 : 2018/10/12 [14:25] | 조회수: 217

지난 MBC PD수첩에서는 M교회에 대해 방송한 것 같다. 내가 TV시청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 직접 본 것은 아닌데, 인터넷에서 기사들이 돌아다니더라, 그 기사나 동영상들을 참고하여, 나는 몇 줄 지껄이기로 했다. 내용인 즉, 명성교회가 전국 곳곳에 제법 많은 부동산들을 갖고 있다고 방송했고, 이에 대해 명성교회 측에서는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한 모양이다.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른다. 나는 명성교회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냥 소식이 그런 식으로 떠돌아다닌다.

 

불교의 부동산

 

그럼 재산(교회 소유의 부동산들)에 대해 좀 써 보자, 역사공부를 해보면 알겠지만 종교단체들은 적지 않은 재산들을 갖고 있었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안에 있는 불교의 부동산들은 어느 정도일까? 조선시대 이후 불교는 적지 않은 쇠퇴의 길들을 걸었을테지만 여전히 불교는 적지 않은 부동산들을 소유하고 있을 듯하며, 그 중 일부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전국의 문화재 갯수로 할 때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불교에 비교하면 게임이 안 된다. 조족지혈도 안 될 듯하다.

 

카톨릭의 부동산

 

로마 가톨릭 교회와 비교해보자: 비교할 필요가 없다. 바티칸은 전 세계 각 대륙에 국민들을 갖고 있는 굉장히 거대한 국가이다. 즉 바티칸은 교회의 본부이기도 하지만 로마 가톨릭이라는 거대국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국가에 개신교는 비교조차도 할 필요가 없다. 교세로 하나, 국민으로 하나 게임 안 된다. 굳이 로마 가톨릭에서 개신교 사람들을 교회로 여겨 줄지 조차도 의문이다. 더러 교회라는 말보다는 ‘갈라진 형제들’로 불러주지 않을까? 그들은 개신교를 그들과 같은 레벨의 교회로 쳐주지 않는다.

 

개신교의 부동산은?

 

그럼 부동산으로 해 볼까? 하나 마나 한 비교이다. 도대체 개신교들이 무슨 부동산들을 얼마나 갖고 있단 말인가! 로마에 가면, 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이 있다. 이런 박물관을 개신교는 한 개도 갖고 있지 못할 것이다. 물론 독일에도 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박물관 하면 로마다. 프랑스에 있는 루블 박물관을 가 봐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곳에 개신교 예술품들은 상대적으로 적을 듯하다. 영국의 애쉬몰리안 박물관이나 미국의 유명 박물관을 찾는다고 한들, 그곳들에서 무슨 개신교의 우위가 있겠는가? 또한 러시아를 가보자: 이삭성당이 있다. 개신교에 그런 관광명소는 흔하지 않다. 생 뻬째르부르크에서 미술관을 갈 일이 있어, 방문해 봐도, 왠지 개신교는 그다지 우월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그럼 해외의 대륙들에서는 그렇다 치고, 대한민국은 어떤가? 대한민국에서의 개신교는 신흥종교에 가까우며, 타 종교에 비해 역사와 전통은 게임이 안 된다. 제대로 된 박물관이 있기나 한가? 숭실대 박물관이나 이화여대 박물관 그리고 연세대 박물관 정도가 있지만 우수박물관 선정은 영남대학교에서 가져 간 적이 있지 싶다. 그러니까 대학박물관으로 해도 굳이 기독교대학교는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계명대 박물관은 뭐랄까? 인터넷 홍보를 잘 하는 특성 정도 있을까나?

 

당연히 한국의 대학교 박물관들은 영국의 애쉬몰리안 박물관과의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그러니까 문화로 하나, 예술로 하나 한국의 개신교는 비교우위가 없다. 그냥 나이 어린 종교이다.

 

명성교회의 부동산?

 

MBC의 PD수첩에서는 이 나이 어린 종교의 성장 발육이 볼썽사나웠나 보다! 그냥 좀 봐 주시지!

명성교회가 부동산들을 소유하고 있다 해도, 그것들은 개인소유가 아니라 교회의 재산들이다. 그리고 한국개신교회들의 특성 상 지 교회들은 민법의 영향들을 받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례들이 총회의 헌법보다 지 교회의 정관을 더 중요시 해왔다. 이 부분은 미국교회의 사례들과는 차이가 있다.

 

즉 대한민국의 민법에 의하면, 교회는 총유인데, 이는 재산총유로서 비(非)법인사단(?)인 모양이다. 그러니 재산귀속이 개(個)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교회론이나 구조 자체가 로마 가톨릭 교회와는 다르다는 뜻이다. 그래서 교회들의 구성원들이 약하면, 교회의 재산도 없이 남의 부동산에 세 들어 살아야 하고, 교회의 구성원들이 강하면, 전국에 적지 않은 부동산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법이 그렇다.

 

여기서 따지고 들어가는 게 왜 개 교회가 부동산에 투자했느냐이다. 그거야 그 교회의 구성원들 마음이지! 그것을 왜 간섭 받아야 하는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대학교, 병원, 복지관, 고아원, 사회시설 등 적지 않은 부동산들을 소유하고 있다. 개신교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개신교는 특성 상 개(個)교회성이 강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민법을 따라, 개 교회별로 그 부동산의 규모들이 차이 난다. 물론 대학교와 같은 기관들은 학교법인이나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비법인사단이 아니지만 교회들은 법인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민법을 따라 총유가 될 수밖에 없다. 이걸 어쩌란 말인가?

 

여기서 등장하는 게 있을 법한데, 역시 예수님의 마음이다. 즉 예수님은 가난하게 사셨는데, 바울은 박해 받았는데, 왜 교회는 부동산에 투자했느냐이다. 그러나 그리 따지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왜 그 많은 부동산들을 소유했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교회사를 부정하고 싶은 겐가?

 

선교사(史) 공부해보면 짐작 가능한데, 서방 유럽이 각 대륙으로 식민지들을 넓혀 갔다. 이리 되면 교회도 가만있을 수 없게 된다. 생각해보라, 국가의 영역들은 점점 더 확장 되는 데, 교회가 가면 있으면, 교회의 영역들은 자동적으로 국가에 비해 축소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당연히 선교지들을 확장하여, 교회의 영역 또한 넓혀야 한다. 물론 선교는 확실히 로마 가톨릭교회가 개신교에 비해 빨랐고, 신학적으로도 가톨릭교회가 많이 앞선다.

 

그러나 좀 예외적인 사회가 있었는데, 조선이다. 조선에서 로마 가톨릭 신도들은 적지 않게 박해받았지만 개신교는 환대 받았다. 즉 대원군 때에는 가톨릭 박해가 실행됐고, 명성황후와 고종 때에는 개신교가 엄청 환영받았다. 고종은 미국의 힘이 필요했는지, 스스로 금광채굴권과 조선의 부동산들을 내한 개신교 미국 선교사들에게 할애했다. 그냥 조선의 역사가 그렇다. 그러니 고종부부의 개신교 사랑은 왕가에 가서 따지고 기독교인들한테는 따지지 말길 바란다.

 

그 때 이후로 개신교는 제법 큰 특혜들과 왕가에서의 환대 그리고 적지 않은 후원 등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로마 가톨릭에서 보면 많이 서운할만한 일이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는데, 서강대학교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 때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하셨고, 광화문 정문 앞에서 시복식을 했다. 이는 조선시대의 그 일들을 완전히 뒤 짚는 사건이다. 지하에 있는 대원군의 입장에서는 피 눈물 흘릴 일이지만 수많은 가톨릭의 순교자들의 입장에서는 한(限)을 푼 것처럼 될 수도 있을 일이다. 조선에서 박해받던 가톨릭교회에서는 조선에게 서운 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가톨릭교회도 대한민국에서 위상이 많이 높아진 만큼 좀 더 관대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서만 그렇지, 타 대륙에서는 개신교가 가톨릭한테 게임도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강자들(로마 가톨릭교회)에게 관대함을 좀 기대하고 싶다.

 

이래저래 따져보니, 개신교들의 문화재나 부동산들은 조족지혈수준이다. 다시 말해 경쟁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어느 특정 교회가 대한민국의 민법을 따라, 선교사업들의 일환으로 부동산들 좀 갖고 있다고 해서 그리도 곱씹을 일인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어느 스님이 경찰에게 검문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불교계에서는 약 2만 명의 신도들이 모여, 집회를 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 신도들이 다음과 같이 발성했다: “정부는 불교를 박해한다!” 정말 정부가 불교를 박해했는가? 아니지 않은가? 어느 스님을 검문했지, 불교 전체를 박해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불교계에서는 스님 한 사람에게 한 검문을 불교에 대한 박해로 받아들였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의 개신교에서의 어떤 사람들은 명성교회가 저토록 얻어터지는 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깨소금 맛처럼 즐기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내부 고발자로서 제보까지 했지 않은가? 재산이나 부동산으로 한다면 가톨릭교회나 불교에도 많지만 가톨릭교도나 불도들 중에서 언론에 제보하는 사람들 봤는가? 잘 없을 듯하다.

 

하여간 대한민국에서는 개신교가 미운털 박힌 종교인 모양이다. 유명한 목사님들까지 나서셔서 자기 교파 안의 한 교회를 집중적으로 비판하시지 않는가? 그리고 신학생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한 교회를 공격하지 않았는가? 이 놀라운 통합 교파의 내분 사태에 경이로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럼 명성교회는 왜 재산이 필요했는가?: 모 신학교의 부동산 건축물을 세워주기 위해서였다. 명성교회는 왜 재산이 필요했는가?: 어려움을 겪는 지방의 모 병원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명성교회는 왜 재산이 필요했는가?: 어려움을 겪는 지방의 모 학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명성교회는 왜 재산이 필요했는가?: 에디오피아에 의과대학을 세워주기 위해서였다. 명성교회는 왜 돈을 쓸 수밖에 없었는가?: 전국 곳곳에 도움의 손길들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어려운 곳들마다 명성교회에게 도움들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왜 지금의 통합 교파에서는 가만있는가?

 

그런데 왜 지금의 통합 교파에서는 가만있는가? 전에 불교계에서 2만 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불교를 탄압한다며 일어섰던 그 이명박 정부를 향한 집단행동을 모르는가? 명성교회가 잘 했던 못했던 우리의 형제 아닌가? MBC라는 공공 방송에서 우리의 형제들에게 모욕을 주었다면, 우리도 여의도 광장에 모여, “왜? 공공방송에서 기독교를 박해하느냐?”면서 집회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상하게도 개신교에서는 형제의 어려움들을 외면하면서 도리어 엉뚱한 곳에 가서 편들어주지 않는가? 모 신학대학교에 기숙사 건물이 필요할 때 세속에서 그대들에게 십원 한 장 보태준 일 있는가? 모 병원이 어려워 몰락해 갈 무렵 세속이나 타 종교에서 그대들에게 천원 한 장 준 일 있는가? 모 교육기관이 어려움을 겪을 때 그 학교의 문제를 떠안은 교회가 어느 교회인가? 바로 명성교회 아니었는가?

 

그토록 많은 혜택들을 받으면서도 왜 배은망덕하는가? 대관절 총회가 명성교회에게 무엇을 해주었다고 그토록 명성교회를 힘들게 하는가? 오히려 총회는 명성교회에게 혜택을 입었으면 입었지, 명성교회가 총회에게 뭘 그리 잘못했는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교파이며, 이해하기 힘든 종교인들이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세뇌 됐길래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가? 오래 전 2만 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이명박 정부를 향하여 ‘불교를 박해한다’며 단합했던 그 불교계의 단결력이 부럽다. 이에 비해 개신교는 너무 취약하다. 스스로 헐 뜯고 공격해대지 않는가?

 

아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논문에 나온 내용의 일부이다. 이 내용을 옮기며 글을 맺는다:


이러한 공희제사야 말로 하나의 공적 의례였고, 부족 전체의 제사였다.(중략) 이 공적인 공희향연이 지니는 윤리적 힘은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의미에 대한 태곳적 관념에 그 바탕을 두는 것이었다.(중략) 아랍인의 경우, 친족 하나가 살해되면 “아무개의 피가 흘렀다”라고 하지 않고, “우리 피가 흘렀다”라고 한다. 히브리 족의 경우, 혈연을 인정하는 관용구가 “나는 너의 뼈이자 살이다”(S. Freud, “토템과 타부,” 이윤기 옮김 <종교의 기원>, J. Strachey ed., (서울: 열린책들, 1997), 39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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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헌배 교수는 기독교학술원 연구교수로 있고, 영신대, 호신대(M.Div)를 졸업하고, 계명대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고, 현재 영남대학교 인류학과에 다니면서 고고학을 연구하고 있다. 영주 간운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인문학적인 소양과 교회사적인 식견, 철학과 인류학적인 접근으로 그의 신학사상을 폭넓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칼빈의 교회법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한 바 있다. 기독교계에서 보기드문 논객이다. 그의 글을 보면 한국사, 언어철학, 교회사, 인류학, 조직신학적 시각으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쏟아내고있다. 김삿갓의 시와 욥의 시를 비교하기도 하고, 모세의 출애굽과 진한 이주민들의 출진한을 비교하기도 하였다.      

 

 

공헌배 교수의글들은 다음과 같다.

 

1. 논문

 

공헌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통해 부활. <한국조직신학논총> 47 (2017. 6): 165-203.

공헌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통해 신정론 비판. <한국조직신학논총> 42 (2015. 9): 47-86.

공헌배. “초기 한국장로교회에서의 임기제 실행가능성에 관한 연구. <한국조직신학논총> 35 (2013. 6): 329-355.

공헌배. 16세기 제네바의 목양방식을 통해 교역자의 위상. <한국조직신학논총> 29 (2011. 6): 125-153.

공헌배. “심적 외상을 통해 야훼종교와 진한의 이주민들: 프로이트의 ‘인간모세와 유일신교’를 중심으로. <계명신학> 15 (2015. 6): 35-74.

공헌배. “창4:1-12경주의 적석목곽분에 나타난 유목적 요소와의 비교연구. <계명신학> 14 (2014. 6): 33-54.

공헌배. “민왕후시해와 아관파천을통해언더우드와 조선왕가. <계명신학> 13 (2013. 6): 1-18.

 

2. 학회에서의논문발표

 

공헌배. “심적외상을 통해 야훼종교와 진한의 이주민들: 프로이트의‘인간모세와 유일신교’를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공교회성> 13한국조직신학자 전국대회 논문자료집 (2018. 4): 191-215.

 

공헌배. “투레틴의 논박 신학강요를 통해교역자의사례비 연구. <종교개혁 500주년기념공동학술대회>(주의말씀은빛이니이다) (2017. 10): 389-400.

 

공헌배. “회귀본능을 통해역대기 역사서와 한일관계와의조명: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의비전으로 바라본 한국교회와 한국사회> 12한국조직신학자전국대회논문자료집 (2017. 4): 162-191.

 

공헌배. “한국장로교회의 일치를 위한 헌법적 제언: ‘한교단다체제헌법’을 중심으로. <통일을 염두에 한국 개신교회 일치를 위한 신학적 대화> 11한국조직신학자전국대회논문자료집 (2016. 4): 189-198.

 

공헌배. “언어철학의 이론을 통해 구원과 심판. <사회혁신과 교회개혁을 위한 조직신학의모색> 10한국조직신학자 전국대회 논문자료집 (2015. 4): 380-399.

 

공헌배. “방언기도에 대한 개혁신학적 고찰. What is East Asia Theology? 2014 한중일신학포럼9한국조직신학자전국대회논문자료집 (2014. 5): 75-88.

 

공헌배. “초기 한국장로교회에서의 임기제 실행가능성에 관한 연구. <한국신학은무엇인가?> 8한국 조직 신학자 전국대회 논문자료집 (2013. 4): 25-35.

 

공헌배. “김삿갓의시와 39:1-30; 41:1-34나타난 동물의 존재론적 의미와 교훈적 의미와의 비교연구. <다문화·다종교시대의 교회의 선택: 종교갈등인가, 종교평화인가?> 7한국조직신학자전국대회논문자료집 (2012. 4): 394-406.

 

3. 단행본

 

공헌배. <한국기독교사상사>. 파주: 한국학술정보북토리, 2014.

 

공헌배. <목사들을 위한 변호>. 파주: 한국학술정보, 2012.

 

공저. <목회를 위한 교의학 주제해설>.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6.

 

4. 학위논문

 

공헌배. “튜레틴의성경관연구: 그의 <논박신학강요>중심으로.계명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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