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명성교회에 대한 모욕, 세뇌효과인가? 아르바이트인가?

공헌배 | 입력 : 2018/10/17 [09:14] | 조회수: 177

 

▲     © THE기독공보

 

요즘의 대한민국은 언어폭력의 시대를 살아간다. 왜냐하면 언론매체에 의해 삽시간에 지구반대편까지 소식들이 전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제법 오래 전, 한 보육교사가 어린이를 때렸다. 종편방송에서는 하루 종일 그 동영상을 방영했다. 물론 그 교사의 행동을 칭찬할 수는 없지만 앞 뒤 사정을 들은 것도 아니고, 그 교사의 애로사항이나 소명을 들은 것도 아니다. 일방적으로 언론에서는 그 폭력적 장면을 마치 증거자료로 채택하듯 하루 종일 내보냈다. 아무리 교사가 잘못했더라도 그 교사에게도 가족이 있고, 인권이 있는데, 종일토록 방송해댔다.

 

최진실씨의 자살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모함성 대글에 시달렸다고 하는 데, 이 역시 악의적 말투들에 시달렸다는 뜻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 노 대통령의 방송선언을 듣더니, 본인이 책임지겠다면서 모 기업인이 한강에 투신자살했다. 노 대통령 역시 언론들에 적지 않게 시달렸던 것 같다. 이른바 그분들 말로는 그 당시에는 ‘조·중·동’이었다고 하던 데, 그 언론매체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쇠고기 사태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간간히 언론들을 통해, 시달리다가 결국 그 분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지셨다. 즉 검찰이전에 언론으로부터 일차적으로 공격(?)받으며, 이래저래 시달리다가 결국 그분은 부엉이 바위를 선택하셨다. 즉 오늘날의 언론들은 물리적 폭력을 행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을 죽일 만큼 강한 힘을 가진 듯하다.

 

그리고 종편방송은 이명박 정부 때 실행되다시피 했는 데, 이제는 TV나 언론이 상당한 기업처럼 된 셈이다. 그들의 영향력 역시 만만하지 않다. 언론의 힘은 박근혜 정부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월호 사건은 몇 달 간에 걸쳐, 언론들을 도배했다. 언론은 박근혜 정부에게도 가혹했다. 태블릿 PC라는 영어로 등장하더니, 광장의 여론으로 모아졌고, 결국 그게 대통령의 탄핵과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어느 장관 후보자나 군인일지라도 하루 종일 언론에서 털면, 그게 곧 인사청문회에 반영된다. 그래서 대통령의 추천을 무마시키거나 스스로 사퇴하도록 만든다. 심지어는 작은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면, 언론에서는 종일토록 반복한다. 위장전입은 큰 죄는 아니지만 장관 후보자로서의 능력이나 그의 정책실행 능력보다도 위장전입을 했느냐 말았느냐로 종일토록 흔든다. 물론 고대의 플라톤은 이와 같은 정치 행태를 아주 우습게 여기겠지만 대중은 플라톤의 고전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임마누엘 칸트 식 인식론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언론에 주입되기 십상이다.

 

어느 정치인에게 스캔달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뭐 그리 중요한가? 이런 주제는 과거의 선데이 서울이나 토큰 판매기 앞에 있는 잡지들에서는 흥미로웠는지 모르겠는 데, 이게 그 정치인의 능력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정치인들의 스캔달이나 주량, 위장전입과 같은 류에는 전혀 관심 없다. 나에게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치인이 중요하지, 그 사람이 바람을 피웠던 말던, 술을 많이 마시든 말든, 어떤 여인과 잤던 말던 아무런 관심도 없다. 내가 왜 정치인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그러나 언론들은 내가 관심 있는 정보들을 주지 않는다. 언론들이 나에게 주는 정보들은 위장전입을 했느냐 말았느냐? 대통령의 연설문을 누가 썼느냐? 모 부대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어떤 여인이랑 스캔달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이와 같은 내용들이 적지 않은 듯 했다. 강간도 아니고, 바람 핀 것 정도까지 내가 신경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마치 언론들은 사람들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도덕시험 점수매기기를 하지 않는가? 그러다가 이게 정도를 넘으면, 한강으로 가고, 부엉이 바위로 가며, 심하면 대통령도 탄핵된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를 읽으니, 사람들은 온통 헛소리들을 하고 있더라, <논리철학논고>를 읽으니, 더 그렇게 여겨진다. 사실 사람들은 말 하는 게 아니라 발성한다고 여겨야 한다.

 

그래서 언어철학대로 해버리면, 그냥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들이 많은 데, 문제는 언어로서는 성립되지도 않을 그 적지 않을 발성적 선동들 때문에 사람들이 행동들을 한다는 데 있다.

 

JTBC, CBS, KBS 그리고 마침내는 MBC의 PD수첩까지 언론들은 명성교회를 너무도 유명하게 만들어 준다. 이제는 종교를 넘어, 명성교회를 못 들은 사람들이 없을 만큼 그 개(個)교회를 알도록 해주었다.

 

일부러 돈 써서 홍보해달라고 부탁을 해도 쉽지 않을 일인데, 아예 명성교회를 널리 알려버렸다. 마치 언론들이 개신교 신경 좀 써주세요! 우린 개신교에 관심 많아요! 우린 개신교가 잘 되고 개혁되길 바라요! 교회가 잘 돼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어요! 우린 그래도 아직까지 개신교에 관심 있으며, 개신교에게 기대하고 있어요!라고 호소하듯 들린다. 오, 놀라워라∼∼∼

 

종교개혁의 시대는 오늘날과 같은 홍보매체가 없었다. 그리고 그 시대는 문자시대였다. 그래서 문서들이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영상시대인 모양이다. 그래서 매우 입체적이며, 영상적이요, 이미지가 중요하다. 종교개혁의 시대에는 국가가 중요했다. 그래서 신앙고백들을 보면, 국가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표명했다. 물론 바르멘선언도 국가와 종교와의 관계에 있다. 그러니까 칼 바르트의 시대 때만 해도 국가와 종교와의 관계에 관심이 컸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의 교회들에서는 국가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한 입장이 있어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언론매체가 없다. 다만 예수님의 말씀들을 따르니, 예수님께서 중요 시 한 것이 있는 데, 예수님께서 크게 다룬 죄가 있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이 가장 큰 죄로 명명한 것은 ‘성령훼방 죄’이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눈 여겨 볼 것은 ‘모욕 죄’이다. 예수님은 살인이나 간음죄보다도 모욕죄에 주목하셨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모욕하면 지옥에 들어간다고 했으며, 형제에게 미련하다고 하면 그 죄는 작지 않다.

 

인간 사회의 법률로 하면,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는 벌금형이나 합의로도 가능하지만 예수님의 기준은 다르다. 모욕죄는 지옥행이다. 사람들이 흔히 쉽게 범할 수 있는 죄들이 뒷 담화 하는 일들이거나 남을 헐뜯는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뒷 담화 때문에 누군가는 피눈물을 흘릴 수도 있으며, 뒷 담화를 너머, 언론에서 종일토록 씹어대면, 한강이나 부엉이 바위 등으로 갈 수도 있다.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모욕죄는 살인죄보다 더 크다!

 

성경에는 혀에 대한 아주 많은 교훈들이 있다. 성경은 말로써 짓는 죄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혀는 불이며, 혀는 길들여지지 않는 그 무엇이요, 때로는 말에 실수가 없어야 하고, 스스로 한 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목사 하기를 아주 싫어했던 사람인데, 그 이유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목사는 모를 권리도, 침묵할 자유도 없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정말 짜증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모함 성 대글들이나 언론에서의 방송 또는 다른 그 무엇들을 통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하는 벼랑으로까지 사람들을 내모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예수님의 기준에서 보면, 이와 같은 죄들은 가볍지 않다.

 

사실 최진실씨는 죽을 필요가 없었다. 어느 분이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던 말았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 누가 누구에게 선물을 했던 말던 그게 어쨌단 말인가! 그게 정 문제가 되면, 검찰에서 조용히 조사받으면 된다. 그러나 검찰을 너머, 언론에서 먼저 작살낸다. 그러나 언론은 심판기구가 아니다. 언론은 보도 기구이다.

 

사실 명성교회는 그만 유명해져도 될 듯하다. 지금 출석하는 교인들도 적지 않은 데, 더 유명해져도 교인들을 수용할만한 공간이 부족하다. 그러나 언론들에서는 왠지모르게 명성교회를 주목한다.

 

나는 명성교회를 잃고 싶지 않다. 그리고 김삼환 목사님도 잃고 싶지 않다. 고령의 연세이신데다, 그 분은 충분할 정도로 시달렸다. 그분은 이미 WCC사태 때 충분할 정도로 돌멩이들을 맞았다.

 

평소 사시면서 얼마나 많은 돌멩이들을 맞으셨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뒷 담화들이 있었겠는가? 그 분은 목양 하실 때 자녀 중 한 분을 잃는 고통도 있으셨다고 하더라, 왜 사람들은 멈출 줄 모르는가!

 

세뇌효과인가? 아니면 아르바이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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