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국 교수님의 설교에 대한 단상

내가 하면 로맨스,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

공헌배 | 입력 : 2018/11/15 [09:29] | 조회수: 319

▲     © 基督公報

 

우연히 유튜브의 동영상을 시청하다가 설교한편을 들었는데, 명성교회를 비판하듯 한 설교였다. 물론 그 설교자는 고유명사를 사용하지 않아, ‘명성’이라든가, 김 모 목사님의 성함을 직접 발성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를 지칭함인지는 충분하게 느낄 수 있다.

 

그 설교는 장로회 신학대학교에서 종교개혁주간에 선포 된 설교인 듯하다. 이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모 목사님의 부자는 설교강단에서 선포하신 말씀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목양지 대물림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는 그 말씀을 어겼다.

 

② 목자로서의 자세가 부족하다: 손양원 목사님은 한국전쟁 당시, 조그마한 배를 타고 피난갈 수 있었지만 교회를 지키느라 남아 있었고, 결국 순교하셨다. 그러나 모 교회에서는 그가 맡고 있던 교회를 그만두고 다른 교회로 옮겨, 목양지 대물림을 했다.

 

③ 종교개혁 해야 할 당시에는 성직매매가 성행하였고, 그 당시의 관행을 따르면, 수도원장이나 주교와 같은 직책들이 기득권이었는데, 그런 자리들을 특권층이 차지하던 관계로 공정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성골, 진골 하듯이 목회자 세계에서도 특권층이 있고, 따라서 공정성이 훼손된다.

 

④ 마르틴 루터는 그 당시의 사면부 판매를 비판했다. 이는 검은돈이나 성직매매 그리고 맘몸숭배 등과의 연관이 있다.

 

⑤ 교회는 성전과 같은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을 공격하신 예수님을 예로 들었다.

 

이 설교의 예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예전적 효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만일 이 설교가 신학대학교의 강단에서 선포되었다면, 역시 예전으로서의 효력이 있다. 그래서 이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경청해야 하며, 말씀선포의 주체(설교자)보다는 성경의 복음 그 자체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울리히 츠빙글리는 그의 설교를 통해, 대적자들을 비판하고, 공격했으며, 그분의 설교 역시 어느 특정교회를 비판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 역(逆)으로써의 비판도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설교자들끼리 싸우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이는 공동의 교제와 공동의 증언을 방해할만한 일인데, 이를 주의하려면 가급적 개(個)교회를 비판하는 일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그 설교는 어느 특정 개인들을 비판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나도 어느 특정 개인을 향한 설교를 아래와 같이 해보고 싶은 데, 차마 설교로는 하기 힘들 듯하여, 그냥 느낌을 쓴다.

 

먼저 제1항에 대해서는 뒤에서 말하겠다. 제2항부터 살펴보자;

 

설교자께서는 아마도 새노래 명성교회를 사임하면서 명성교회로 가신 모 목사님을 겨냥한 듯하다. 고유명사를 거론하지 않아, 실질적 내용은 모르겠다. 이를 비판하면서 손양원 목사님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리를 지키셨다고 하셨다.

 

참으로 손양원 목사님은 존경스런 분이시며, 훌륭하시다. 인정한다! 그래서 나도 한 가지의 질문이 생겼다. 임희국 교수님께서는 원래 영남신학교에 교수님으로 오신분이신데, 어느 날 보니까 장로회신학대학교로 가셨더라! 당연히 영남신학교에도 임희국 교수님을 좋아했을 제자들이 있었을 텐데, 왜 서울의 장신대로 가셨는가? 손양원 목사님을 본받아 지방신학교가 어렵더라도 그 자리를 지키셔야 했지 않겠는가?

 

모 목사님은 포항에서 큰 교회를 담임하셨는데, 어느 날 보니까 서울의 모 교회로 가신다고 하더라, 모 목사님도 영주에서 제법 큰 교회를 맡으셨는데, 어느 날 사임청원이 들어와 있어, 어디로 가셨냐고 여쭈었더니, 서울로 가셨다고 하시더라, 또 모 교수님은 호남신학대학교에 교수로 오셨는데, 어느 날 보니까 장로회신학대학교에 교수로 가 계시더라!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례들은 손양원 목사님의 예에 비교할 때, 목회자로서의 자세에 어긋난 것인가? 그럼 나처럼 무능한 인간은 임지를 옮기지도 말고, 평생을 가난하게만 살아야 하는가? 목회자들은 그 임지들을 옮길 수 없는가!

 

제3항을 보자: 성직매매와 특권층

 

본질적으로 성직매매와 직접적 연관이 될 수 있는 기구들은 총회의 고시부와 총회의 신학교육부이다. 다시 말해 신학교육기관이야 말로 성직매매적 구조에 노출되기에 가장 좋다. 그렇다면 그 성직매매의 문제는 어느 특정 개(個)교회보다도 신학대학교에 해당한다. 그럼 성직매매의 문제에 대해 논해보자;

 

고용수, “예장교역자 수급계획을 위한 조사연구,” <敎會와 神學> ⅩⅦ (1985. 5): 403-460을 따르면, 그 당시 예장 통합 교파의 전국교역자 통계 및 수급현황 등을 그래프까지 그려가면서 기초조사에 충실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논문이 게재되어 있다.

 

그 논문의 408쪽 <표1>을 따르면, 전국의 교인 수 증가와 교역자들의 수 증가를 대비했는데, 1976년부터는 교역자들의 증가곡선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그래서 1984년도에는 그 차이가 꽤 벌어진다. 다시 말해 교인수의 증가에 비해 교역자들의 증가 수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표이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약 34년 전의 일이다. 그 후로부터 30년이나 지난 뒤이니까, 오늘날의 교역자 과잉추세는 더 말할 필요조차도 없다. 따라서 성직매매와 같은 구조의 가장 심각한 요인은 신학교육기관에 있다. 따라서 그 설교는 어느 특정 개(個)교회를 겨냥할 것이 아니라 신학교를 겨냥해야 했다.

 

장로회 신학대학교의 신입생들 선발은 다소 편법적임을 알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신학대학원(목사후보생들 교육기관) 입학시험에서, 1995학년도에는 입학 정원이 삼백 몇 십 명이었으나 1996학년도에는 450명으로 늘였다가, 1997학년도에는 이백십 몇 명으로 다시 줄였다. 왜 1년 사이에 이렇게 정원이 들쭉날쭉 하는지 잘 모르겠다. 혹시 학교에 건축물이라도 필요했던가? 그리고 교육부가 지정한 인원보다 월등하게 많은 인원들을 지속적으로 뽑아 왔던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 또한 궁금하다.

 

그리고 입시 유형의 경우 95년도 신대원 신약성경의 출제는 그 이전에 보지 못했던 파격적 유형이었다. 예를 들면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아람어 다섯 개를 쓰시오(김진성 편, <신. 구약 성경 문제집>, (서울: 도서출판 장신선교, 1996), 296)라는 문제는 아주 놀라웠다. 심지어 92년에는 마태복음 16장 중간 부분에 무슨 기사가 나오냐(<같은 책>, 285)라고 묻기도 했는데, 이런 유형의 문제는 복사기가 더 정확하게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왜 인간을 복사기처럼 취급하려 했는지 궁금하다. 이와 같은 유형의 문제를 출제해도, 그 입학경쟁률이 6대1에서 7대1정도였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는 그 신학대학원의 갑질이 아닐까 싶다.

 

과연 이와 같은 행태는 ‘성직매매’라는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특권층이나 성골, 진골들과 같은 귀족층을 언급하셨는데, 보통 사람들이 느끼기에도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교수님들은 특권층이나 귀족층과 같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싶다. 만일 공헌배와 같이 띨띨한 인간이라도 그 학교에 교수로 재직할 수 있다면 몰라도, 그런 띨띨한 인간은 그 학교 근처에는 얼씬 조차도 할 수 없다면, 가히 그 학교는 특권층의 교수들로 구성 된 성골/진골들의 교육기관으로 여겨도 될 법 하지 않겠는가?

 

제4항을 보자: 제4항은 제3항과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교회의 사면부 판매 비판이야 워낙 많이 듣던 주제이니,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루터나 손양원 목사님에 관하여는 다음에 좀 더 구체적으로 주장하면 어떨까 싶다.

 

제5항의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이거 모르는 사람도 있는가?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너무 당연한 주장은 그야말로 당위적 주장이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것인가? 천막치고 예배할 텐가?

 

혹시 남의 부동산에서 세 들어 사는 교회에서 주일마다 예배하는 목사님의 고충을 들은 일 있는가? 나는 들은 적 있다. 이제 제1항의 주제를 다루어보자: 모 목사님 부자는 말씀에 책임지지 않았다. 또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 이 부분은 비판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설교에 다 책임지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나도 임희국 교수님한테 좀 실망한 일 하나를 말씀드린다. 양해하시면 좋겠다. 그분의 말씀의 진정성이 지금도 좀 궁금하기 때문이다.

 

임희국교수, 크리스텐돔 없는 신학을 해보자. 

 

이상하게도 나는 지방신학교에서 임희국 교수님한테 학부의 논문지도를 받았고(물론 그 당시의 내 논문은 형편없는 쓰레기였다), 수업도 한 과목 들었다. 그런데 그 임희국 교수님은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크리스텐돔 없는 신학을 해보자! 우리의 교회사, 한국교회사, 영남교회사, 우리의 신학 등을 해 보자!”라는 것이었다.

 

그분은 그 당시에도 벌써 봉경 이원영 목사님을 언급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께서는 한국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좋아하시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뭐 굳이 그 교수님 때문은 아니었지만 키 작고 못생겼으며, 열등한 내가 무슨 수로 서양신학씩이나 하겠는가? 그래, 주제파악 좀 하자, 좋은 제안인 것 같다. 그래, 한국학을 하자!

 

그 후로부터 20년 쯤 지난 후, 나는 우연히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교회사 분야의 교수를 채용한다는 비(非)정년트랙 전임교원 채용의 광고를 보았다.

 

임희국 교수, 독일식 크리스텐돔 교수 채용

 

그래서 나는 옳거니! 바로 이때다, 한국교회사를 강조하신 분이니, 한국학에 관심 있던 내가 가는 게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도 교수지원서를 들고 임희국 교수님이 계시는 그 학교의 접수처로 갔다.

그랬는데, 나의 집사람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당신, 미쳤어? 제 정신이야! 거기가 어디라고 지원서를 낸 거야! 돌았구만!”이라고 하더라.

 

그러나 나의 생각은 좀 달랐다: ‘뭐, 그게 어떤 데? 저 분은 20여 년 전부터 줄곧 크리스텐돔 없는 신학을 하자고 제안하신 분이야! 그러니 국내파인 내가 가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 뭐가 잘못됐는데?’

 

그런데 결과는 집사람의 판단이 옳았다. 내 기억으로 그 당시 교회사 분야에는 5명이 지원했던 것 같은데, 독일에서 공부한 모 박사가 채용됐다. 다시 말해 독일 식 크리스텐돔 교육의 수혜자께서 채용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하, 저분이 20년 쯤 세월이 지나면서 생각이나 환경이 바뀐 모양이다. 그래, 내가 좀 지나쳤던 것 같다!’라며, 대충 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임희국교수, 크리스텐돔 없는 신학 강의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사태에서 발생했다:

 

2015년 10월 19일(월), 여전도회관 루이시기념관에서 열린, 제48회 한국기독교학술원 공개 세미나에서 그 임희국 교수님이 “계시와 문화. 20세기 초반 중국선교사 빌헬름의 중국 전통문화 이해를 중심으로”를

발표하러 오셨다: 거기서 그분은 그날 바젤선교회와 크리스토퍼 블룸하르트를 말씀하시면서, 크리스텐돔 없는 신학을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내가 그로부터 20여 년 전, 지방의 이름 없던 신학교에서 듣던 말씀이었다. 내용이 대동소이 했다.

그렇다면 생각이나 신념이 바뀐 게 아니란 말씀이지? 그런데 왜 그분은 자신의 분야에서 교수를 채용할 때, 한국교회사 전공자를 뽑지 않고, 독일 식 크리스텐돔 구조의 수혜자를 받은 거야? 이거 말씀이 다르잖아!

 

어느 개(個)교회의 목사님들이 말씀을 번복한 것은 문제가 되고, 자신의 말씀 번복은 별 문제가 없는가?

아니면 임희국 교수님은 말씀을 번복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해명하실 만한 합당한 이유라도 있는가?

나는 그분에게 합당한 이유를 듣고 싶다!

 

그분은 그걸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아직도 그분의 말씀이 기억난다: "칼 바르트는 자신의 선생들을 반대하고, 자신의 선생들의 신학에 반항한 사람이다!". 나는 굳이 그 칼 바르트를 흉내 내고 싶지 않은데, 임희국 교수님은 왜 나로 하여금 수십 년 전의 그 말씀이 떠오르도록 충동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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