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연경 교수 vs. 김삼환 목사

나는 권연경 교수의 신학은 부럽지 않은데, 그분의 긴 가방끈과 귀족스러움은 정말 부럽다!

공헌배 | 입력 : 2018/11/17 [16:24] | 조회수: 508

우연히 뉴스앤조이에서 박요셉 기자가 올린

“명성교회 세습 1년, "핵심은 돈"
권연경 교수, 세습 반대 강연…"교회 본질은 욕망 아닌 거룩”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숭실대학교의 권연경 교수를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일면식도 없다. 전에 CBS에 출현하셔서 ‘낸시랭의 신학펀치’에 단골 선생님으로 출현한 분이라는 것과 그 TV프로에서 좀 보수적 의견을 내신 것 외에 그다지 아는 바 없다.

 

그분이 쓴 아티클로는 권연경, “C. S. Lewis-사실이 된 신화와 신화적 알레고리,” <한국기독교 신학논총> 79 (2012): 251-280을 얼핏 본 것 말고는 없다. 이 논문은 여느 신약학 논문과는 달리, 이채롭게 여겨졌다.

그런데 이분도 명성교회를 비판하다니, 좀 놀랍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그분에 대해 아주 조금 알아보았다: 서울대(영문과)를 졸업하셨고, 미국 풀러신학교(M. Div.) 및 예일대 신학부(S.T.M.)를 거쳐 영국 King's College London에서 갈라디아서 연구로 박사학위(Ph.D.)를 받으셨다.

 

이 학적은 나도 확신이 없다. 전에 이것과 비슷하게 소개받은 적은 있다. 얼핏 보기에도 이분은 돈이 있을 법하다. 서울대는 잘 모르겠는데, 미국과 영국에서의 과정들은 돈 없이는 생활불가이다. 아주 간단하게 계산해보자: 미국의 달러는 한국의 원화에 약 13배이니까, 그 돈은 뭐 그냥 견적 나온다. 그리고 영국의 파운드화는 달러의 두 배이니까 한국 돈 원화와는 대략 26배정도 차이난다.

 

저렇게 많이 돈 드는 과정들을 밟으며, 외국생활을 오랫동안 했다는 것은 돈이 많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전반적으로 집세가 비싼 편이다. 밴터빌트 대학교처럼 변두리라면 몰라도, 대체로 미국은 지가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영국은 한국인들이 견디기에는 물가가 높은 편인데, 런던에서 사셨다니, 가히 성골 또는 진골로서의 면모를 여실하게 보려주실 만한 분이시다. 그래서 나는 저런 분을 보면, 부러워죽는다!

대한민국에서 유학생활의 한 원조를 꼽으면, 윤보선 대통령이 든다. 그 이른 시기에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교로 유학하셨다. 알려져 있다 시피, 윤보선의 가문은 엄청난 부자였다.

 

나에게도 지인이 있어, 미국생활, 영연방 국가에서의 대학원 생활을 경험해 본 이가 있다. 전반적으로 미국은 수업료 내는 학생들과 수업료 면제받는 장학생들이 있다. 3세계의 사람들이 수업료를 내기에는 너무 벅차다. 특히 신학분야는 펀딩 없이 수업료 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리고 영국은 아예, 거의 장학금 없다고 여기는 편이 낫지 싶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돈 내고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영국의 살인적 물가에다, 만일 등록금이라도 내고 다녔다면, 우리는 세 가지의 유추가 가능하다: 영국 유학생들의 경우, 첫째, 집안이 부자이거나 모아놓은 돈이 있거나 누군가가 스폰서를 하여, 학비를 대주었다. 둘째, 빚을 졌다. 셋째, 엄청난 시간의 노동이나 돈벌이로 몸이 망가질 정도다.

 

대체로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든다고 여길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권연경 교수님은 그 세 가지 중, 어디에 해당할까?

 

그래서 나는 권연경 교수님과 같은 분들을 보면, 부러워 죽는다. 그 이유는 그분들의 신학 때문이 아니라 그분들의 놀라운 가방끈 길이와 그 엄청난 학비들이 어디로부터 나왔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정말 부럽다. 그래서 나는 권연경 교수님과 같은 분들을 보면, 자동적으로 돈부터 떠오른다! 이미지 자체가 그렇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경우들이 있다. 뭐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는데, 그 돈 많이 든다는 디 유나이티드 킹덤에 두 아들을 유학 보내 박사를 만들 수 있는 집안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여러분은 여기서 무얼 느끼는가? 사람들은 대체로 그 훌륭하신 분에게서 겸손, 검소, 청빈 등의 이미지를 갖기도 하더라! 그러나 실상은 대한민국의 귀족들로 여길 수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들이 있다. 그 둘째 아드님은 해방신학의 전문가이시고, 그 첫째 아드님은 동학 및 민중신학의 전문가이시다.

 

물론 민중신학의 대가(大家)이신 심원 안병무 박사님도 서울대 출신이신데, 사모님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으로 들었으며,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할 때 심원 선생님도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셨다고 소문으로 들었다. 심원 선생님은 세계적 명문 하이델베르크에서 공부하셨다. 그래서 나는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을 본질 상 귀족들의 학문인 줄 착각할 뻔 했다. 그분들의 책을 읽었기에 망정이지 읽지 않았으면 오해할 뻔 했다.

 

이제 권연경 교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려 보자: “명성교회 세습 1년, "핵심은 돈" "교회 본질은 욕망 아닌 거룩”이라는 기사를 참고한다면, 마치 김삼환 목사님이 돈 하고의 연관이 깊은 분처럼 느낄 만 하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게 느낀다: 어떻게 김삼환 목사님에게서 돈 냄새부터 맡는가? 우스꽝스럽다. 사람들이 하도 “돈” “돈”해서, 좀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김삼환 목사님은 상당히 오지와 같은 곳 출신이셨으며, 그 가정의 배경이 돈 하고는 먼 것 같더라! 게다가 목양하실 때, 가족 중 한 분이 돌아가시는 슬픔도 있으셨다고 들었다. 게다가 결혼사진을 본 어느 분 말씀을 따르면, 김삼환 목사님은 뼈밖에 없는 분 같았다고 하시더라. 즉 태생부터 가난했으며, 아예 가난을 몸에 달고 사셨던 분처럼 느꼈다. 지금도 별로 뚱뚱하지 않으신 듯 하더라. 물론 노년에는 좀 넉넉하게 살지 싶다. 그게 배 아프신가?

 

김삼환 목사님은 권연경 교수님과 같은 분과는 태생적으로 다르다.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비교할 필요조차 없다. 런던의 킹스 칼리지 출신한테 무슨 비교를 하겠는가?

 

그러니까 정말 귀족스런 분은 권연경 교수님과 같은 분이시다! 그래서 내가 권연경 교수님을 많이 부러워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그분의 신학은 부럽지 않은데, 그분의 긴 가방끈과 귀족스러움은 정말 부럽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권연경 교수님과 같은 스펙을 쌓을 수 있을까? 나 같은 천골(賤骨)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권연경 교수님은 명성교회를 말씀하시면서, 에베소서를 소개하여 교회의 본질을 설명했다. 바울이 쓴 다른 서신서와는 달리 에베소서에는 보편적 교회 개념이 등장한다고 했다. 권 교수는 "에베소서는 구원의 시작과 끝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책이다. 구원이라는 드라마에서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에베소서가 마치 드라마 대본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바울이 교회에 강조하는 건 '거룩'이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물로서 깨끗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 교수는 "교회가 '거룩'이라는 본질을 놓치게 된다면 끝이 난다고 바울은 강하게 경고한다. 교회를 크게 그리고 많이 세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거룩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고 말했다.

 

교회를 많이 세우는 일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거룩한 교회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굽쇼? 그것은 초대교회이니까 시도해 볼 만 했지 않을까? 극동의 유색인종들에게, 더군다나 현대 과학문명에 길들여 져 있는 사람들에게 에베소서와 꼭 같은 행동강령을 요구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로서는 일제시대의 신앙선조들 정도 되는 신앙생활도 쉽지 않을 듯하다.

 

여러분은 신약학자요, 예수 전문가인 권연경 선생님에게서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나던가? 나는 느끼지 못했다. 본인도 못할 일을 왜 남에게 요구하시는가?


다음으로는 거룩성을 논해보자:

 

가난하면 거룩하고, 돈 많으면 불경한가?

 

이야 말로 이분법적 사고이다. 나는 제법 많이 약하고 가난한 교회들을 가 보았고, 또 돈 있는 교회에서도 시무해보았다. 그 결과 가난하거나 약한 교회들이 더 거룩하다는 보증을 찾을 수 없었다. 교회의 돈 많음을 비판하신 듯 하여, 나는 가난에 대해 좀 말씀드리겠다. 나의 아버지의 회고를 따르면 아래와 같다:

 

1974년 9월 6일(금요일) 경주 황성교회로 큰 아들(헌배: 6세), 둘째 아들(은배: 4세), 장녀 00(생후 3개월)를 데리고 갓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로 경주에 갔다. 황성교회에 가니, 크고 좋은 사택은 아니었지만 방 두 칸에 부엌이 따로 된 정남향 집이었다. 사택의 마당은 넓었다. 전에 대구에서 살던 단칸방에 비하면 대궐이었다. 아버지는 ‘하나님은 좋으신 분,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주심을’ 눈물겹게 감사했다.

 

이게 뭐 되게 좋은 사택 같이 들릴는 지 모르겠는데, 실상은 그 사택이 필자(헌배)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살았던 집이었다: 6평짜리 집으로 부엌의 지붕은 스레트였고, 가옥의 지붕은 기와로 돼 있었다. 특별히 집의 벽이 벽돌로 지어지지 않고, 블록으로 쌓아 올려 우풍이 있었고, 겨울에는 추웠다. 방이 두 칸이었지만 부흥회를 할 때면 좋은 방을 강사의 침소로 쓴다. 이리되면 전(全) 식구가 다시 한 방에 몰려야 했다. 한 번은 우리 집(사택)에 손님이 왔다. 그 당시의 나는 아마도 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손님이 와 계신 그 방을 향하여 돌을 세게 던졌다. 당연히 그 방문에 돌이 부딪히며 “쾅”하고 소리를 냈다. 물론 방 안에서는 무슨 일인가하여 내다볼 게 뻔했다. 돌을 던진 후 나는 잽싸게 달아났다.

 

아버지에게는 평생 가난과 경제적 어려움이 따라 다녔다. 목사는 일평생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 은퇴 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따라다닌다. 경제적 어려움과 배고픔 때문에 무릎을 꿇고, 더 낮아지는 지도 모른다. 목회의 첫 걸음은 낮아지는 소명과 사명 때문이지만 목회의 둘째 걸음은 다른 직업으로의 전업이 쉽지 않아 결국은 그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목사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어떤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돈이 많으면 목회를 하지 않겠다.” 하나님께서는 돈으로 목사를 붙잡고 계신 것일까? 이는 은퇴하신 아버지의 생각이다. 아버지가 현직에 있을 때에는 이런 생각이 없었다. 마음으로는 언제나 부유하게 살았다. 그러나 자녀의 등록금이나 가사에 쓸 돈이 없을 때에는 어려웠다. 목사가 돈 빌려 달라는 소리를 하면 목양에 지장이 오며, 덕스럽지 못하다. 결국 재무집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된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물질에는 초연했던 편이다.

 

아버지는 지금도 가난하게 사신다. 자녀들에게까지 가난하게 먹이고, 입혔다. 그렇게 하면서도 자족하려 했다. 이것이 믿음에 유익이라 여겼다. 하나님은 가난한 중에서도 언제나 부하게 넉넉하게 좋은 것으로 입혀주셨다. 목사의 자녀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는 기관과 학교가 있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의 돈으로 아내에게 옷을 사준다거나 자신의 옷을 사는 것은 상상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입혀주셨다. 이게 아버지의 고백이다.

 

자, 이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내가 거룩해 보이는가?

 

내 집사람한테 물어보시라!: 별로 좋지 않게 말할 것이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내가 거룩한 사람처럼 여겨지는가? 가난으로 훈련되어 겸손하며, 검소하거나 소위 거룩성이나 성화(聖化)와의 연관이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는가? 아니지 않은가!

 

 

임희국교수에 대한 단상

http://kidogkongbo.com/1251

 

 

 

장신대 교수들에게 쓴 소리

 

http://kidogkongbo.com/866

 

공헌배 박사는 영남출신으로서 영남신학교를 졸업하고 호신대에서 석사학위를 마쳤고, 계명대학교에서 한국사상과 접목하여 조직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영남대학교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실증사학으로 한국신학을 접근하고 있다. 현재 영주에서 목회를 하고 기독교학술원연구교수로 있다. 

 

공헌배 교수의 글들은 다음과 같다.

 

1. 논문

 

공헌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통해 부활. <한국조직신학논총> 47 (2017. 6): 165-203.

공헌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통해 신정론 비판. <한국조직신학논총> 42 (2015. 9): 47-86.

공헌배. “초기 한국장로교회에서의 임기제 실행가능성에 관한 연구. <한국조직신학논총> 35 (2013. 6): 329-355.

공헌배. 16세기 제네바의 목양방식을 통해 교역자의 위상. <한국조직신학논총> 29 (2011. 6): 125-153.

공헌배. “심적 외상을 통해 야훼종교와 진한의 이주민들: 프로이트의 ‘인간모세와 유일신교’를 중심으로. <계명신학> 15 (2015. 6): 35-74.

공헌배. “창4:1-12경주의 적석목곽분에 나타난 유목적 요소와의 비교연구. <계명신학> 14 (2014. 6): 33-54.

공헌배. “민왕후시해와 아관파천을통해언더우드와 조선왕가. <계명신학> 13 (2013. 6): 1-18.

 

2. 학회에서의논문발표

 

공헌배. “심적외상을 통해 야훼종교와 진한의 이주민들: 프로이트의‘인간모세와 유일신교’를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공교회성> 13한국조직신학자 전국대회 논문자료집 (2018. 4): 191-215.

 

공헌배. “투레틴의 논박 신학강요를 통해교역자의사례비 연구. <종교개혁 500주년기념공동학술대회>(주의말씀은빛이니이다) (2017. 10): 389-400.

 

공헌배. “회귀본능을 통해역대기 역사서와 한일관계와의조명: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의비전으로 바라본 한국교회와 한국사회> 12한국조직신학자전국대회논문자료집 (2017. 4): 162-191.

 

공헌배. “한국장로교회의 일치를 위한 헌법적 제언: ‘한교단다체제헌법’을 중심으로. <통일을 염두에 한국 개신교회 일치를 위한 신학적 대화> 11한국조직신학자전국대회논문자료집 (2016. 4): 189-198.

 

공헌배. “언어철학의 이론을 통해 구원과 심판. <사회혁신과 교회개혁을 위한 조직신학의모색> 10한국조직신학자 전국대회 논문자료집 (2015. 4): 380-399.

 

공헌배. “방언기도에 대한 개혁신학적 고찰. What is East Asia Theology? 2014 한중일신학포럼9한국조직신학자전국대회논문자료집 (2014. 5): 75-88.

 

공헌배. “초기 한국장로교회에서의 임기제 실행가능성에 관한 연구. <한국신학은무엇인가?> 8한국 조직 신학자 전국대회 논문자료집 (2013. 4): 25-35.

 

공헌배. “김삿갓의시와 39:1-30; 41:1-34나타난 동물의 존재론적 의미와 교훈적 의미와의 비교연구. <다문화·다종교시대의 교회의 선택: 종교갈등인가, 종교평화인가?> 7한국조직신학자전국대회논문자료집 (2012. 4): 394-406.

 

3. 단행본

 

공헌배. <한국기독교사상사>. 파주: 한국학술정보북토리, 2014.

 

공헌배. <목사들을 위한 변호>. 파주: 한국학술정보, 2012.

 

공저. <목회를 위한 교의학 주제해설>.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6.

 

4. 학위논문

 

공헌배. “튜레틴의성경관연구: 그의 <논박신학강요>중심으로.계명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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