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동성애반대 대책위, 장신대 S교수 설교 문제 제기할 듯

장신대, 경건과 학문에서 세속과 경건으로

基督公報 | 입력 : 2019/05/06 [10:14] | 조회수: 470

 

 

▲     © 基督公報

 

총회 동성애 대책위원회는 5월 7일 모임에서 장신대 S 교수의 동성애 옹호설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장신대 교회사 S교수(강의 전담교수)는 2018.  9. 21. 장신대 채플실에서  '예수께서 몸을 굽혀'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동성애자까지 사랑하라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사랑하는 장신 가족 여러분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성 때문에 고통받는 형제 자매에게 오늘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 소개한 스위스 신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동행하십시요. 동행하십시요. 동행하십시요. 특히 판단하지 마십시오(죄를 죄라고 말하면 안된다는 전형적인 이중잣대 논리). 누구도 하나님 마음에서 배제되어 있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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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장신 가족 여러분, 여러분 곁에 있는 아품을 가진 자매와 형제를 향해서 주님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 귀한 생명 사랑 가치를 보십시오.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자매와 형제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헌법시행규중 26조 12항에는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교회의 직원 및 신학대학교 교수, 교직원이 될 수 없다."고 하여 앞으로 논란이 될 전망이다. 5. 7. 동성애대책위에서 어떤 결론이 내려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미 여러 노회에서 헌의할 예정에 있어 교단과 장신대의 힘겨루기가 될 전망이다.   

 

앞서 장신대는 채플실에서 동성애 깃발을 든 학생들에 대해서 징계를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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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12월 22일 동성애를 옹호하고,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성매매 합법화를 요구하며, 다자성애(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내용 등의 주제로 학내에서 불법집회를 가진 학생들을 징계한 한동대학교에 대하여 징계를 철회하라고 권고하였을뿐만 아니라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는 "종교사학이라도 공공성이 전제된 교육기관이므로 헌법질서와 타인의 기본권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행사해야 한다"며, "대학 측이 취한 일련의 조치는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한 것으로 징계를 받은 학생들의 피해 정도가 심하고 향후 학교 구성원들의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권고 이유를 하달하였다.

 

따라서 학교측이나 교단측은 교수의 설교로 인해 징계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S교수가 국가로 끌고 나갈 경우, 국가측은 장신대에 "종교사학이라도 공공성이 전제된 교육기관이므로 헌법질서와 타인의 기본권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행사해야 한다"며, "대학 측이 취한 일련의 조치는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한 것으로 징계를 받은 학생들의 피해 정도가 심하고 향후 학교 구성원들의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권고할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S 교수의 설교이다. 

 

설교 제목 : '예수께서 몸을 굽혀'

 

 평소와는 달리 말씀을 회피하면 안된다는 마음의 외침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머리속에 떠오른 본문이 방금 함께 읽은 텍스트입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성경을 펴서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이 이 본문을 읽었지만, 그 순간 처음으로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시는 몸짓이 가슴에서 깊이 와 닿았습니다. 화요일부터 평양에서 열린 남북 3차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환영나온 북녘 동포들에게 몸을 굽혀 인사하는 장면이 많은 화재가 되었죠 어떤이는 대통령 몸짓에서 품어져 나오는 진정성은 예측할 수 없는 통한의 힘으로 전달 될 것이다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지도자의 품격 이라는 간결한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유학시절 한 프랑스 친구는 한국 사람들이 서로 몸을 굽혀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신선하게 여김. 우리의 이렇게 몸을 굽혀 인사하는 것이 매우 아름다운 예법이라는 알았습니다.


부디 남과 북의 동포가 서로 몸을 굽혀 인사 나누며 함께 살아갈 날이 속히 오기를,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떨어져 살았던 우리 동포가 지난 70년간의 적대를 회개하고 우리의 평화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방의 등불 세계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기를.

 

오늘 본문을 읽을 때 시작하는 7장 53절-끝절 8장 11절에 꺽쇠표시가 있고, 각주가 붙어 있는 것을 보셨습니까? 각주에 어떤 사본에 없다 이렇게 표기되어 있지요?


이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오늘 읽은 본문은 두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 본문은 요한복음의 후대에 삽입된 것입니다. 즉 가장 오래된 사본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어떤 본문에서는 요한복음에 나타나지 않고 누가복음 21장 38절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정경성과  역사적 가치에는 이론이 없습니다.


요한문헌의 대가 레이몬드 브라운은 그러면은 왜 이 본문이 복음서의 일부로 즉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독일학자 리젠 펠트의 설명이 가장 그럴듯 하며 소개합니다. 리젠 펠트는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쉽게 용서하신 것은 초기 교회에 유행하고 있던 엄격한 창의 규율과 화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보다 관대한 회개 관습이 확고히 확립되었을 때만 이 본문이 널리 수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본문 내용을 살펴봅시다.


도입부 7장 53절~8장 2절은 간음한 여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간과 공간의 묘사합니다. 저녘에 예수님이 성전에서 교육을 마친다. 청중은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님은 감람산에 가셔서 밤을 보내시고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돌아와 백성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에 쳐들어와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중단되었죠. 그들은 간음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현장에서 그녀를 잡은 사람이 누군인지, 그녀와 함께 있던 남자, 또 남편의 반응에 대해서 일체 언급하지 않습니다. 중앙에 세워 놓은 그 여인 위에만 스포트 라이트가 켜져 있습니다. 이 복음서 기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여인을 예수님앞에 붙잡아온 의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찾기 위해서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백성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다니시는 모습에서 진리와 너그러움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진리를 가르치셨고 또 예수님은 사람들을 죄에서 해방하는 분으로서 너그러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은 진리와 너그러움으로 가득찬 분이니까 정의 문제를 가지고 트집을 잡아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죄인들에게 너그러운 분이심을 보고, 바로 이 너그러움, 자비 때문에 정의를 포기할 것이라고 예측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죄를 범한 사람을 현장에서 붙잡아서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 범죄 현장에서 붙잡은 여인을 중앙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말했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명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인정한다고 가장하면서 그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들의 질문은 사실 술책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여인을 그냥 가게하면그는 정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자를 구하러 오신 분이 그 여인을 정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들은 예수님이 지금까지 죄인들에게 보여주었던 너그러움을 잃지 않기위해서 그들을 파괴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율법위반자로 고발할 속셈이었던 겁니다.


한마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딜레마에 빠뜨렸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을 존중하면 작은 자 땅의 사람들 암 하아레츠를(장신대 동아리에 암하아레츠가 있음) 향한 자비를 부정하게 됩니다. 반면에 작은 사람들을 위한 자비를 유지하면 율법을 위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게 할 술책을 가지고 찾아온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도를 환히 꿰뚫어보셨지만,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그들에게 맞서지도 않으셨습니다. 꾸짖지도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은 몸을 굽히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몸짓을 볼 때 여러분은 귀에 어떤 대속의 말씀이 들려옵니까?
제 귀에는 이런 말씀이 들립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몸을 굽힌 예수님은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땅위에 무엇을 쓰셨을 까요?

성서는 우리에게 아무 답도 주지 않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요한복음 주석에는 그 당시 전해져오던 교부들의 주석 2가지가 소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예레미야 22:29에서 23절(설교자 실수로 추정)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어다. 이 글이 쓰여있을 것이다 라고 추측한 교과에서도, 또다른 교부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를 썼을 거다 추측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2번째 해석이 더 개연성이 있어 보이지만, 성경에 아무런 명시된 것이 없으니까 어느 의견도 확실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몸을 굽혀서 땅에 기록하는 예수님의 행동은 문제를 적대자들이 원하는 대로 다루기를 분명하게 거부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넘어뜨리려는 사람들은 반복해서 예수님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몸을 일으켜 세우시고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의 말씀은 율법의 엄격한 적용을 요구하는 사람은 동일하게 자신에게 먼저 그 율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로마서 2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내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너가 악한 일을 행함이니라


스스로 율법의 위반자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그리스도를 율법위반자로 고발하기 위해서 또 가련한 죄인을 정죄하기 위해서 아침 됫바람 부터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판결을 듣자 그들은 분노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 이행위에 대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예수님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리를 뜰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안 보고 편하게 떠나 갈수 있도록 배려하는 행위로 해석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들은 연장자에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차례로 모두 조용히 떠났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시편의 말씀을 우리 눈앞에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이 몸을 굽혀 땅에 쓰시지 않고 율법의 목적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그들을 말로 설득하시려 하셨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율법을 연구하고 암송하고 자기 목적으로 율법을 사용하는 것이 능한 율법으로 무장한 그들은 예수님에게 끝없이 시비를 걸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모두가 돌아간 후에 9절 하반절, 오직 예수와 한복판에 세워져있던 여자만 남았더라. 이 장면을 레이몬드 브라운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죄있는 여인이 죄없는 예수님과 마주 서있는 이 장면은 강렬한 드라마의 순간이다. 이 드라마를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름답게 포착했다. 이 예수님과 여인 둘만 남아있는 장면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둘만남았다. 불쌍한 여인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 브라운이 인용하는 이 아우구스티누스... 그러니까 5세기 초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설교한 요한복음 설교에 나오는 문장인데, 이 본문을 해석한, 지금 21세기의 요한복음의 대가들은 쉬지 않고 인용합니다. 그리고 주석가들은 이 문장을 라틴어로 인용하기를 즐기는데요,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렇게 썼습니다.
(중략)


렌디틱스드 두 하면 둘이 담았다라는 의미죠? 미세라 하면 불쌍한 여인. 미세 라고 하는게 불쌍한 이고, 여성형이니까 불쌍한 여인, 그리고 미세디 코르디아, 착이라는 단위인데 그 단위가 미세르 불쌍한 코르 마음, 그래서 불쌍한 마음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가 결합되면 자비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뜻합니다. 불쌍한 여인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자비 자체이신 예수, 둘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모두가 떠난 후에 몸을 일으켜 다시 일어났습니다. 여자만 남은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여인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네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한 여인이 어디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예수님은 여인에게 그의 행동에 대해 묻지 않으시고 고발자들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 여인은 그들이 사라졌음을 확인합니다. 그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고발 철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죄를 용서하시지만, 용서를 베풀기 위해서 죄를 고백하라거나 믿음을 요구하시거나 하는 그는 어떤 부담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 죄를 두둔하시거나 간음을 허용하는 방임주의를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분명히 인정하셨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은 여인이 이 순간을 삶의 새 길을 선택하는 기회로 붙잡도록 초대 하셨습니다. 삶을 새 길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간음하는 여인의 본문은 이처럼 죄를 용납하지 않는 예수님의 정의와 죄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자비의 섬세한 균형.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심으로써 정의를 완성하시는 자리, 한 마디로 위대한 복음의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시험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우리의 반면교사로서 율법의 악용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던 마귀처럼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율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토라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에스겔 18장 23절.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죄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토라의 목적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죽음을 부추기기 위한 수단이나 이웃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을 정죄하고 배제와 혐오로 부추기는 데 사용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 교회에서 과거의 종북몰이를 대체하는 프레임으로 반동성애가 조장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동성애 문제가 한국 교회에서도 뜨거운 이슈가 되었습니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무관심하게 물러서 있는 것은 이 문제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에 귀를 막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 분야가 아니라고 아무 공부도 하지 않는 것을  지적인 나태이자 신앙적인 무책임에 해당할 것입니다. 산처럼 쌓여있는 과제들이 우리가 이 공부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죠 얼마전 저는 파리 유명 신학 서점에서 동성애 코너에서 여러 권의 책을 사 와서 이동할 때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민망하게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읽었던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30년간 교구 중심으로 목회하고 교구 신학 대상으로 활동하는 한 스위스 사제가 쓴 책인데 '네가 누구길래 나의 동성애 형제를 판단하리요' 라는 제목의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 정신분석가 친구가 전화했다. 동성애라는 성정체성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는 21살 청년을 급히 만나줄 수 있겠니? 그의 신앙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 하고 있어. 더운 여름 강둑 길에서 그 청년을 만났다. 기욤이라는 청년이었다. 기욤은 멀리서 다가오는 데 머리를 푹 숙이고 천천히 걸어 오고 있었다. 나는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고 강둑 길을 따라 걷자고 제안했다. 수줍어하며 그는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진실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제는 진실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저는 호모입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사람처럼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여자 아이들을 사귀고 이 동성애 성향을 격퇴시키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하지만 허사였습니다. 제 인생은 실패입니다. 이제는 사라지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저는 결코 동성애 경험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성애가 혐오스럽습니다. 저는 자신이 너무 더럽게 느껴져서 더 이상 성찬을 받지 않습니다. 저는 심지어 하나님도 저를 심판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학교 성적은 떨어졌고 저는 방에 홀로 틀어 박혀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감히 마주 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제 머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이해하기 위해서 저를 정신분석가에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부모님께 호모라고 말하겠습니까? 제 부친은 이탈리아 남부 출신 독실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는 이해하지 못 할 것입니다. 아마 아버지는 제게 집에서 나가라고 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여러분 앞에 혹은 앞으로 목사가 되었을 때 이런 어려움을 겪는 형제 혹은 자매가 여러분 앞에 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013년 교황 프란체스코가 치빌카 카톨리카라는 이탈리아의 유서깊은 잡지 편집장에게 한 말은 그가 이 유사한 문제를 다룰 때에 오늘 본문에서 본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에서 우러난 지혜의 본문을 잘 배웠음을 보여 줍니다. 프렌체스코 로마 주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모든 길에서 선포해야 합니다." 복음을 설교하고 설교를 통해 모든 병과 상처를 보살펴야 합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회에서 상처입는 자들인 동성애자들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교회에서 정죄를 받는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교회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리오데자네이루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말했습니다.  만약 어떤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다면 나는 그를 판단하기 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제게 매우 도발적으로 제가 동성애를 인정하는가 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다른 질문으로 대답했습니다.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동성애자를 볼 때 그의 존재를 사랑으로 인정하실까요? 아니면 그를 정죄하시면서 밀쳐내실까요? 언제나 사람을 보아야 하는가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은 사람들과 동행하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이 조건에서 부터 동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비를 가지고 동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일어나면 성령은 가장 정의로운 것을 말하도록 영감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장신 가족 여러분,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성 때문에 고통받는 형제 자매에게 오늘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 소개한 스위스 신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동행하십시요 동행하십시요. 동행하십시요. 특히 판단하지 마십시오(죄를 죄라고 말하면 안된다는 전형적인 이중잣대 논리).

 

누구도 하나님 마음에서 배제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장신 가족 여러분 여러분 곁에 있는 아픔을 가진 자매와 형제를 향해서 주님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 귀한 생명 사랑 가치를 보십시오.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자매와 형제 아품과 고통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모든 공감과 사랑의 원천이 주님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시로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의 선배 목사님이시며 청각 장애를 가진 시인 서덕석 목사님의 시입니다.

 

사랑법
그대 진실로 나를 사랑하려거든
높고 고상한 이름뿐인
나를 사랑하지 말 것,
다만 낮고 낮은 곳에서 머리 풀고
속으로 흐느끼는 나의 슬픔을 껴안을 것,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땅의 사람들을
위해서 울 것,
외로운 자와 함께 외로워하고
분노하는 자와 함께 분노할 것,
목말라 하는 자의 목마름과
배고픈 자의 배고픔을 나누어 가질 것,
그대 진실로 나를 사랑하려거든
거짓과 속임수와 위선으로 가득 찬
그대 병든 가슴을 죽도록 미워할 것

 

결론과 평가

 

S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카톨릭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를 전공하여 프랑스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았다. S교수는 동성애자까지 정죄하기 보다는 사랑하고 성적지향성때문에 고통받는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교한 것으로 보인다.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는 것처럼 동성애자를 정죄하지 말라는 것이 S 교수의 설교 취지이다.  

 

그러나 S교수는 무조건 동성애자를 사랑하기 보다는 동성애는 성경에 벗어난 죄악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면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으로 설교했어야 했다. 또한 장신대는 교단이 세운 학교이기 때문에 교단의 입장을 존중할 필요성이 있고, 교수들은 교단이 위탁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 벗어난 어설픈 학문성보다는 교단의 입장안에서 설교를 해야 한다. 

 

교단 역시 교수를 정죄하거나 무조건 징계하기 보다는 교수를 소환하여 교단의 입장을 교수에게 전달하여 재론하지 않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이 문제는 임성빈 총장이 해결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총회 동성애 대책위는 S 교수를 소환하여 동성애는 성경에 벗어난 죄악이기 때문에 S 교수에게 일단 죄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S 교수의 설교는 총회헌법에 벗어난 것, 또한 학교총장은 S교수의 설교는 장신대 모토인 '경건과 학문'에 벗어난 것으로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나아가 교단이나 학교는 징계보다는 대화차원에서 다룰 필요성이 있다.

 

동성애자까지 사랑해야하지만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로 인해서 멸망한 사례가 있고, 바울사도도 동성애의 죄악성을 지적한 바 있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은 동성애자까지 옹호하거나 사랑하는 것은 기독교 복음에서 벗어난 것이다. 

 

장신대 채플실에서 일부 학생들은 무지개깃발을 흔들고, 교수까지 동성애자를 정죄하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는 무조건적 동성애자 사랑 설교는 장신대의 경건성을 떨어뜨릴 염려가 있다. 나아가 교단 교회로부터 후원금도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아직까지 장신대가 무조건적으로 동성애자를 사랑하기에는 믿음이 부족하다. 성경에 벗어났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여전히 서구유럽보다는 세속화의 속도가 더딘 것이 사실이다.  그 만큼 영성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까지 한국교회 영성이 동성애자까지 무조건 사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http://kidogkongbo.com/1595

신학교육부, 표절과 이단옹호 논문 밝혀야

신학교육부는 표절논문과 통일교옹호논문 조사해야 

 

A. 표절의혹

 

서울대 배철현교수의 논문표절을 찾아내 낙마시켰던 신학서적표절반대 연대는 예장통합교단 소속 교수들이 14명이나 표절로 문제되었다고 페이스북에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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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용운교수는 학생들에게 예단하지 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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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통합교단 소속 교수들에 대해 표절의 의혹이 불거졌으니 이에 대해 신학교육부는 속히 해당교수들을 불러 소명기회를 주고, 자초지종을 듣고 총회에 보고하기를 바란다.

 

B. 이단옹호논문

 

이외에 통일교옹호논문을 쓴 탁지일교수의 논문도 소명기회를 주고 파악하기를 바란다. 이단을 옹호한 논문은 표절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탁지일의 통일교옹호논문 인정

http://kidogkongbo.com/1141

 

이 논문은 통일교와 몰몬교의 홍보지에 불과했다. 비판이 한 줄도 없기 때문이다.  

 

탁지일 논문

 

▲     © 基督公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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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예수재림은 없고, 문선명 재림만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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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다가 문선명에 대해서 존경한다는 표현을 했고, 문선명에 대해서만 큰 활자체로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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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글자의 크키, 굵기, 형태 등의 구성형식상 유독 문선명에 대해서 강조되어 있는 점과 통일교에 대한 비판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형사부분에 대해서 대법원은 모두 무죄, 민사는 기각했다. 통일옹호논문을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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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결론

 

신학교육부는 속히 예장통합 산하 교수들의 표절의혹과 이단옹호논문의혹에 대해서 조사하여 밝힐 필요가 있다.  

 

 

  주승중목사의 일사각오 표절

“할아버지에 대한 전기들이 일사각오를 더욱 갖게 합니다"

http://kidogkongbo.com/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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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장신대 차정식 교수에 이어 최근 장신대 구약학  H 교수의 표절이 드러나 장신대 학보인 신학춘추까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H 교수뿐만아니라 주기철목사의 손자인 인천주안장로교회 주승중목사까지 표절을 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2016. 11.24일 신학표절반대 연대의 김진원이라는 사람이 두란노 아카데미에서 출판한 'HOW 주석 시리즈' 에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에서 주승중목사가 '주안에 굳게 서라'(빌4;1-9) 설교 주해중 179-194p가 WBC(World Biblical Commentary) 빌립보서의 주석(337-360p)을 인용부호 없이 자신의 말처럼 그대로 베낀 것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주목사는 2014년 크리스찬 리뷰에서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산다고 말했다.

 http://www.christianreview.com.au/sub_read.html?uid=3868

 

"인생의 안개처럼 드리웠던 갈등이 사라지자 말할 수 없는 영예가 보였다. 그토록 흠모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가문의 가훈도 할아버지의 유훈-일사각오-였다. 항상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다. 가장 학자인 그가 좋아하는 아끼는 책도 ‘할아버님 이야기를 담은 전기, 할아버지 설교집’이 되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전기들이 일사각오를 더욱 갖게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할아버지 전기를 다시 읽고, 설교를 다시 읽고, 저를 다시 다집니다. 가정의 찬송도 평소 할아버지가 애송하던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이는 주기철 목사 일대기의 영화제목이기도 하다)입니다.”

 

그러나 2007년 그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표절을 하였다.
  

표절반대 연대 김진원씨는 "부분 발췌했고, 순서를 바꿔놓긴 했지만 원서 번역도 아니고 WBC 한글판을 그대로 베껴 놓은 것을 보고 이게 뭔가 싶어서, 물론 책에 각주 하나 없이 깨끗합니다"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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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중목사는 당시 빌4:1-9: "주안에서 굳게서라" 는 제목으로 글을 기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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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서적 표절반대 연대 김진원씨는 주승중목사의 표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 빌립보서 4장1절-9절의 주석을 읽다가 ]
.
HOW 주석 시리즈(두란노 아카데미),
"빌립보서, 빌레몬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의
해당 부분(179-194p)을 읽다가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
WBC 빌립보서의 주석(337p-360p)을 
그대로 베껴놓았기 때문입니다.
.
부분 발췌했고, 순서를 바꿔놓긴 했지만
원서 번역도 아니고 WBC 한글판을 그대로 
베껴 놓은 것을 보고 이게 뭔가 싶어서
(물론 책에 각주 하나 없이 깨끗합니다. ^^)
.
목차에서 기고한 분을 찾아보니
아주 훌륭한(?) 분이시네요...
.
주기철 목사님의 후예가 이래도 되는 건가요?
HOW 주석은 원래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건가요?
.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4:9)
.
하필 이런 본문의 주석을 표절해서 기고하다니 참 슬픈 일이네요.

 

이성하 목사, "주승중 목사가 표절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신학표절 반대 연대 이성하목사는 2017. 2. 6. 주승중목사가 표절을 인정한 답변이 왔다고 했다. 주승중목사가 표절을 인정했고, 독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전했고, 2017년 상반기에 문제된 글을 재집필하기로 했고, 기존의 재고도서를 파기하고 재인쇄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했다.

 

 

<주승중 목사님의 답신이 도착했습니다>

 

전에 #김진원님께서 두란노에서 나온 HOW 주석 시리즈 중에서 빌립보서를 보시다가 주승중 목사님이 저술하신 부분에서 심각한 표절이 있다고 제보해주셨습니다.

 

그 제보 내용을 제가 직접 확인했고, 그 내용을 토대로 주승중목사님께 이메일로 의견을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답신을 받았습니다.

 

주승중목사님께서는 독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전달해주셨고, 출판사인 두란노와 상의한 결과 2017년 상반기에 문제된 글을 재집필하기로 하셨고, 재집필 후 두란노 서원은 기존의 재고도서를 파기하고 재인쇄하기로 결정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독자/소비자들을 위해 귀한 결단을 해주신 주승중 목사님과 두란노 서원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2017년 이 책은 더이상 인쇄되지 않았고 품절되었다. 주승중목사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인용부호 하나없이 주석을 그대로 베껴 일사각오 표절을 하였던 것이다.  표절이 아니라 복사였을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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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임원회와 강남노회, 소화기 난사에 대한 입장 발표해야

소화기난사는 폭력행위

http://kidogkongbo.com/1596

 

 

서울강남노회와 총회임원회는 법원이 파송한 직무집행자와 당회에 대해 박노철측이 소화기분말을 난사한 것에 대해 야간폭력에 해당함으로 침묵하지 말고 정당성여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소화전을 사용하여 분말을 난사하는 것은 건강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에 폭력이다. 그러므로 교단 치리회는 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해야 한다. 박노철목사측은 작년에도 교회당에 진입할 때 소화전을 난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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