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새로운 중세를 선택하고 있다

기독공보 | 입력 : 2016/12/07 [12:22] | 조회수: 579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미분화와 동질성으로부터 분화와 이질성으로의 이행으로 간단하게 정의될 수 있습니다.

 

AD.600 년경에 완결되어 AD.1200년경까지 지속된 중세는  1.중앙관력의 소멸,  2. 관료제의 부재, 3. 치안의 부재, 4. 지방의 독립성, 5. 교역의 소멸 등으로 특징지워집니다. 여기서 중앙권력은 물론 로마제국의 행정 시스템과 무력을 가리킵니다. 다뉴브 강 동안과 그 북쪽의 이민족들의 서쪽으로의 이동은 제국을 붕괴시키고 유럽을 무질서의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중앙권력의 소멸은 치안의 부재상태를 의미합니다. 깡패들의 천국이 된 겁니다. 신민들은 준노예의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강도들로부터의 위협보다는 봉건영주 밑의 농노의 운명이 낫다고 생각한 거지요.

 

이때 하나의 봉건영지로서의 장원(manor)은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영주의 성, 그것을 둘러싼 농지와 농가, 땔감을 얻기 위한 숲, 영주의 사냥을 위해 따로 설정된 삼림, 성 밖 중심지의 대장간 등. 모든 장원이 동질적입니다. 각각의 장원이 특화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영주가 아닌 주교의 장원도 동일한 모습입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권력이었으니까요.

 

이 상태로 약 600년이 지속됩니다. 우리가 중세라고 할 때 엄밀히는 A.D 600에서 A.D.1200입니다. 600 년 간 유럽은 어떤 변화 없이 유지됩니다. 그렇다면 중세의 몰락은 어떻게 해서 온 걸까요? 그 몰락은 도시의 발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시는 교역에 기반합니다. 교역이 없다면 도시도 없습니다. 교역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치안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교역이 의미하는 것은 이동이기 때문입니다. 교역의 생산성은 폭발적입니다. 이것은 장원간의 특화된 산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각각의 지역은 그 지역에 유리한 작물, 혹은 유리한 공업에 종사하게 됩니다. 이때 근대 세계 전체는 분업으로의 이행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각각의 지역은 서로 이질적인 것이 되어 갑니다. 어떤 지역은 포도주만, 다른 지역은 밀만, 또 다른 지역은 농기구만 생산합니다. 중세 내내 유럽전체의 장원은 미분화였습니다. 이것이 이제 분화되기 시작한 겁니다. 다시 말하면 상호 동질적인 장원들이 서로 이질적인 장원들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동질성과 미분화에서 이질성과 분화로의 이행입니다. 이것을 진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에 진보와 후퇴는 없습니다. 단지 변화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유럽에서 노트르담 사원, 쾰른 성당, 사르트르 성당, 웰스 성당 등의 지극히 대담하고 아름다운 성당들을 봅니다. 이 성당들의 특징은 모두 교역 중심지, 곧 도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고딕건축물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AD1200년 이후의 소산입니다. 이때 이미 유럽은 중세의 가을을 맞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딕입니다. 로마네스크 성당은 시골에, 고딕성당은 도시에 세워집니다. 고딕을 새로운 길(Via Moderna)이라고 부릅니다. 근대의 여명인 것이지요.

 

 

우리는 계속해서 근대의 이념에 입각한 세계에 살아왔습니다. 근대의 이념을 가장 간단히 말했을 때 그것은 분화입니다. 각각의 지역은 계속해서 분화해 나갑니다. 분업의 효율성을 최대로 살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계속된 도시화와 세계화(globalization)를 부릅니다. 교역의 효율성을 고도로 높이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분화된 지역들이 동일한 수요공급의 법칙에 준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전자상거래가 아마도 이 분화의 정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화는 그 안에 치명적인 부정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입니다. 세계화는 지니계수를 높게 만듭니다.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 훨씬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세계화가 없고 각각의 지역이 동질적이라면 빈부의 격차는 그렇게 까지 커지지 않습니다. 세계 전체가 국지화(localization)된다면 각각의 지역은 전체적으로 평준화된 가난 속에 살게 됩니다. 즉 평등을 위해 효율과 생산성을 희생시키는 것이지요. 질투가 풍요를 이기는 순간입니다.

 

인간은 그렇게까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재화와 서비스의 혜택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그것들에 훨씬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우리는 내가 100만원을 벌고 그가 200만원을 버는 사회보다는 내가 80만원을 벌고 그가 100만원을 버는 사회를 왕왕 택합니다.

 

이것이 국지화를 부릅니다. 이것이 또한 모더니즘으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이행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파편화, 국지화, 자율화 독립화 등 입니다. 한마디로 지역주의입니다. 좋은 삶에 대한 보편적 기준의 부재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윤리학입니다.

 

이것은 교역의 위축을 부르게 됩니다. 어느 순간 하나의 정치단위가 교역이 주는 효율성보다는 시민들의 일자리를 더 중시합니다. 외국의 경쟁력있는 상품이 유입될 경우 거기에 종사하는 내국민들의 실업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즉 교역이 어떤 직종의 일자리를 잃게 만듭니다. 물론 여기에서 혜택을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제 경쟁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수입 이상으로 수출에 의해 고도로 효율화된 생산성을 유지합니다. 미국은 2차 산업의 생산력을 잃었지만 IT와 금융 부문에서 고도의 생산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러스트벨트는 실리콘밸리와 월가의 대가입니다. 그러나 효율화되면 효율화 될수록 실업률은 높아집니다. 이때 국제경쟁력에서 뒤쳐진 사람들이 어느 임계점을 넘을 경우 사태를 되돌리길 원합니다. 전제적인 효율성을 잃더라도 더 이상의 빈부격차를 용인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보호무역입니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했습니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사태를 단 몇 개월 만에 보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국가가 될 것이고 파운드화는 달러나 유로화보다도 낮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질투에 물들어 국지화를 원했던 사람들은 잘 사는 사람들의 몰락이 자기의 가난보다 더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이미 런던에 주재했던 외국 금융기업과 금융인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런던 부동산의 거품이 현저하게 꺼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어떻게 될까요? 먼저 생활수준이 낮아질 것입니다. 미국은 교역우위를 가진 국가들에 대해 아마도 두 가지를 할 겁니다. 첫 번째는 관세장벽, 두 번째는 환율입니다. 아마도 자유무역은 사라지고 관세장벽이 새롭게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은 환율조작국으로 취급당할 것입니다. 위안화와 원화는 달러대비 상당한 절상을 각오해야합니다. 포드나 GE가 미국 내에서 다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입해야 하는 사람들은 더 높은 값을 치러야 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모든 분야에서 발생할 것이고 따라서 미국인들의 전체적인 생활수준은 낮아질 것입니다.

 

새로운 이념은 우리의 비준 없이 도입되지 않습니다. 중세인들은 중앙권력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중세인으로 삽니다. 그들이 그렇기를 선택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도 새로운 중세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전체적으로 이 새로운 물결에 대응해야 합니다. 수출보다는 내수가 훨씬 중요해집니다. 새롭게 다가오는 사회주의로의 요구에 잘 대응할 때입니다.

 

저자는 프랑스 소르본느와 미국 예일, 시카고에서 서양고대사, 중세사, 철학사, 예술사를 전공하고 중세예술사, 근현대예술사, 열정적 고전읽기 등에 대한 수십권의 책을 쓴 수리철학자이면서 인문학자이면서 예술사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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