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통해본 명성교회 사건

98회는 브루투스의 연설, 104회는 안토니우스의 연설

편집인 | 입력 : 2019/10/07 [20:53] | 조회수: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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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불완전하고 신이 아니기 때문에 늘 오류에 노출되어 있다. 오류의 진위여부를 구분하기 어려운 민중들은 교수와 박사, 전문가들이 외치는 논리에 속아 오류인지를 모르고 진리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교수나 박사, 전문가들은 권위를 갖고서 오류를 진리로 둔갑시키는 능력이 있다.

 

교사보다는 교수가 권위 있고, 개척교회목사의 말보다는 대형교회의 목사의 말이 권위 있고, 학생들보다 선생의 말이 권위있어 보인다. 한국 대통령의 말보다 미국 대통령의 말이 권위 있어 보이고, 지방대학보다는 서울대학교수의 말이 권위 있어 보이고, 한국대학교수보다는 미국대학교수들이 권위있어 보일 때가 많이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오류가 진리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같은 내용일지라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오류가 달리 나타난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인 「줄리어스 시이저」에는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나온다. 


로마 공화정의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카이사르(시저)는 BC 59년에 최고 관직인 콘술에 취임하였다. 그 이후 카이사르(시저)는 갈리아 전쟁의 승리, 폼페이우스 반란에 대한 평정 등의 과정을 겪으며, 오랜 기간 공화정의 실권을 틀어쥐고 있던 원로원의 지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처럼 카이사르(시저)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 갔고, 그에게는 각종 특권이 부여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롱기누스 등은 카이사르가 왕위를 노리고 있다고 판단하였고, 원로원의 공화정 옹호 세력과 함께 그를 살해하였다. 로마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카이사르의 죽음 앞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였고,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시민들 앞에 브루투스가 나타나 이유를 설명하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편,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갔을 때부터 그의 오른팔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안토니우스는 브루투스에 뒤이어 로마 시민에게 추도 연설을 하였다. 안토니우스는 폼페이우스 상 밑에서 미친 듯이 소리치는 군중 앞에서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공개하고, 핏자국이 낭자한 카이사르의 주검을 보여 줌으로써 로마 시민의 마음을 반전시켰다. 그는 민심을 선동하여 암살자들이 실권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견제함으로써 카이사르를 따랐던 지지 세력의 기반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브루투스는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사랑하는 로마 시민 여러분! 잠깐 동안 저의 말을 차분하게 경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의 인격을 믿으시고 저의 명예를 존중하신다면, 지혜로운 여러분께서는 저의 말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드리는 말의 진위를 보다 냉철하게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 중에서 카이사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저는 그분에게 이 브루투스도 그에 못지않게 카이사르를 사랑했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자마자, 그렇다면 왜 카이사르를 죽였냐고 그분은 저를 비난하실 겁니다. 제 답변은 이렇습니다. 제가 카이사르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로마를 훨씬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카이사르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모든 로마인이 노예로 살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카이사르가 죽고 나서 모든 로마인이 자유시민으로 살길 원하십니까? 카이사르가 저를 사랑했기에, 저는 그분을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그분이 행운을 얻었을 때 저는 기뻐했고, 그분이 용감한 행동을 보였을 때 저는 그분을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야심을 품고 있었던 까닭에, 저는 눈물을 머금고 그분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 앞에서 감동의 눈물이 흘러나왔고, 그분의 행운 앞에서 기쁨이 넘쳐났고, 그분의 용기 앞에서 존경심이 우러나왔지만, 그분의 야심 앞에서 그분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비천한 노예로 살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야만적인 로마인으로 살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또한 제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비열한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그런 분이 계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대답을 기다리겠습니다. 한 분도 없으시군요!

 

그렇다면 여러분 중에서 아무도 제가 했던 행동에 대해 탓하시지 않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제가 카이사르에게 했던 행동은 바로 여러분을 대표해서 이 브루투스가 감행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카이사르의 죽음에 관한 전말은 카피톨에 기록으로서 보관될 예정입니다. 그분은 어떤 측면에서는 훌륭했기 때문에, 그분의 명예가 더 이상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이미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죄과에 대해서도 이제 더 이상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 로마시민들은 부르투스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고 외쳤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은 예수가 나귀를 타고 입성하니 호산나 다윗의 왕이라고 외쳤다. 아무도 그가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에는 안토니우스가 로마시민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친애하는 로마 시민 여러분!

자, 조용히 진정해 주십시오. 제 말씀을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카이사르가 위대한 분이라고 치켜세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그분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따름입니다. 나쁜 일은 당사자가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뭇사람 입에 회자되지만, 좋은 일은 흔히 유골과 함께 묻혀 버린 채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법입니다.

 

카이사르의 경우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브루투스는 훌륭한 분이신데, 그분께서는 카이사르가 야심을 품었던 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중대한 과실입니다. 또한 카이사르가 그 점에 대해 답변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브루투스를 포함하여 이번 일에 가담한 분들은 모두 다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분들은 제가 카이사르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추도사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카이사르는 저의 친구로서 언제나 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고 무슨 일이든 정의롭게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브루투스의 말씀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브루투스는 훌륭한 분입니다. 카이사르는 어떻습니까? 그분은 수많은 포로를 로마로 데려와 속전으로 받은 엄청난 돈을 단 한 푼도 사사로이 쓰지 않은 채 고스란히 국고에 헌납했습니다. 그러한 행동은 과연 야심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카이사르는 가난한 자들이 굶주림에 지쳐 우는 소리를 듣고서 함께 울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과연 야심에서 비롯되었을까요?

 

하지만 브루투스는 그분이 야심가라고 말합니다. 브루투스는 훌륭한 분입니다. 여러분은 루퍼칼 축제일에 직접 목격하셨을 것입니다. 제가 로마제국의 왕관을 세 번씩이나 카이사르에게 바쳤지만, 그분은 그 때마다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그분에게 야심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분이 야심가라고 말씀하신 브루투스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의심할 바 없이 훌륭한 분이십니다.

 

저는 브루투스가 하신 말씀에 대해 반박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께 진심으로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예전에 카이사르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러한 사랑에는 어떤 연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신 마당에 여러분의 눈에서 어떤 까닭으로 눈물이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는단 말입니까? 참으로 이처럼 해괴한 일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 카이사르를 그리워하는 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이제 잠깐 동안 애도의 마음을 표하고 나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 연설을 듣자, 브루투스가 무죄라고 하던 시민들은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듣고 "카이사르(시이저)를 죽인 반역도를 한 놈도 살려두지 말자"라고 복수를 외치게 된다. 로마사람들은 브루투스의 연설을 듣고는 무죄를,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듣고서는 브루투스의 유죄를 단정하였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서 시시비비가 갈리게 된다. 예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기까지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 왕이었는데 입성한 후 졸지에 죄인으로서 바뀐다. 결국 로마시민과 유대시민의 추리는 부당한 것이 되었다.

 

대중들의 오류

 

논리학에서 특히 이러한 종류의 부당한 논증을 '대중에의 호소'라는 이름의 오류라고 지적하고 있다. 로마제국은 사라지고, 유대는 2000년동안 사라졌지만 인간의 죄악과 당시 잘못 판단한 오류는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 자리에 들 때까지 가짜뉴스와 오류에 시달리고 있다. 오늘은 광화문, 내일은 서초 검찰청 앞에서 외치는 소리가 각각 다르다.

 

브루르투스의 연설과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듣는 대중들의 오류에 대한 판단이 달리 나타나듯이, 예루살렘 성 입성 전과 입성 후의 예수에 대한 판단이 달리 나타나듯이, 광화문과 서초동의 군중의 판단이 달리 나타나고, 광화문사건 전과 광화문 사건 이후의 전광훈목사의 판단이 달리 나타나고, 명성교회건과 관련 98차 총대들의 판단과 104회 총대들의 판단이 달리 나타나고있다.

 

2013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98회 총회가 명성교회에서 개최되어 세습방지법을 통과시켰을 때 2013년 예장통합은 제98회 총회에서 ‘세습 금지’를 1,033명 참석자 중 870명이 가결하여 84%의 찬성으로 결의했지만 6년후 104회 총대들은 재석 총대 1,142명 중 1,011명의 압도적 지지로 82%의 지지를 얻었고, 수습안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1204명 가운데 920명이 수습안에 찬성을 했다.

 
대중은 누가 호소하느냐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여론의 향방이 바뀐다. 몇 달 전만 해도 전광훈목사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진보, 보수 언론이 모두 합쳐 떠들어 댔다. 그러나 몇달이 지난 후 홍준표, 오세훈, 김무성, 차명진, 송영선, 김문수 등이 모두 전광훈목사 집회에 가담했고, 200만명 이상이 광화문을 메웠다.

 

명성교회사건


명성교회 사건으로 지난 1년 동안 장신대를 비롯한 세반연은 명성교회의 세습을 반대하기 위하여 신사참배 결의, 공교회성훼손, 맘모니즘을 외쳐, 103회 총회를 장악하였고 명성교회에 대해 유리하게 판단한 모든 법리부서의 결정에 대해서 보고조차도 받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1년 동안 헌법위와 법리부서와 필자를 비롯, 최경구,이정환 목사 등은 꾸준히 교회의 기본권, 교회의 자유, 장로교회의 개교회 정체성, 단체의 결정 등을 연설하여 104회 총회에서는 압도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었다.

 

103회시 총회결의를 존중하라는 장신대 교수들, 세반연 등은 104회 이후에는 총회결의가 불법이라고 외치고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대중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유죄를 무죄로 무죄를 유죄로 선동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유리하면 총회결의를 준수하자고 외치고, 불리한 결정이 나오면 총회결의가 불법이고 무효라고 외치고 있다.

 

그동안 법을 조금 안다는 실체가 없는 기독교법률가회, 일부 변호사들, 법을 전공했던 목사들, 교수들은 재판국원과 총대들을 선동하였고 브루투스처럼 명성교회를 죽인 것을 당연시 하고 연설하였지만 그러나 교회의 기본권, 교회의 자유를 외치는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브루투스가 유죄라고 판단했다.

 

총회총대들, 총회재판국원들, 총회 규칙부, 총회 헌법위, 총회장들은 누구의 연설을 들으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였다. 누가 대중에 호소하느냐에 따라 대중들의 반응이 달리 나타났다. 교단의 자유, 윤리, 도덕, 가이사법, 공교회성, 신사참배, 맘모니즘, 입법취지를 외칠 때 대중들은 "그들이 옳다"라고 반응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자유, 교인의 기본권, 교회법, 영성, 문언적 해석을 연설할 때도 "이것이 맞다"라고 외치는 대중들이 있었다. 그러한 대중들이 이번에 압도적으로 98회의 총회결의를 뒤집었던 것이다.   

 

브루투스가 외칠 때는 브루투스가 무죄였지만 안토니우스가 외칠 때는 부르투스가 유죄였다. 대중들은 연설가들이 누구나에 따라 유죄, 무죄, 오류, 진리가 달리 나타났다. 카이사르(시저)는 죽었지만 연설가들의 논리성에 따라 유무죄가 판가름 났던 것이다.

 

98차는 브루투스가 승리했지만 104회는 안토니우스가 승리했다. 장로교 정체성에 대한 98회의 브루투스 오류를 104회시에는 안토니우스가 개교회의 자유와 교인들의 기본권을 강조하여 시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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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적인 허위 보고의 반복
   

해마다 총회에서 벌어지는 각부, 위원회의 허위보고와 불법적 결의가 반복되고 있다. 104회 총회도 역대총회와 마찬가지이다. 여러 가지 불법적인 결의와 허위보고들이 있었다. 때로는 보고를 받는 내용에 대하여 관심 있는 총대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보고 대로 채택이 된다. 그 보고가 적법한 것인지, 사실인지 소수의 총대들을 제외하고 총대 대부분은 알 길이 없다.

 

그러니 교묘하게 허위보고를 하고 또 보고를 채택하게 되는 것이다. 총회가 개회되기 전 최소 1 개월 전에 총회회의안과 보고서를 총대들에게 보내는 이유는 총회 전에 학습을 하고 총회에 참석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각 보고를 미리 숙지하고 위법성은 없는지, 사업의 타당성이나 적절성 등을 살피고 총회에서 고쳐야 할 문제들을 미리 알아보고 오라는 뜻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총대 자신들이 속해 있는 부, 위원회의 보고내용 조차 제대로 살펴보고 총회에 참석하는 총대들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그러니 특별히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는 중요하다는 안건 외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들 보다 더 중요한, 그리고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부은 사업들에 대한 적정성 논의나 토론은 형식적 보고로 지나간다. 왜 총회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104회 총회도 역대 총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허위보고와 불법적인 결정들이 이루어졌다. 특별히 총회가 헌법과 규칙이 정하고 있는 절차를 무시하고 해마다 반복하는 불법이 이번 총회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103회 총회는 헌법위원회 보고 중 목회대물림과 관련된 유권해석을 삭제해 버리는 결정을 했다.

 

그리고 규칙부 보고 중에서 헌의위원회의 청원건과 헌의건 심리 권한에 대한 규칙유권해석을 역시 삭제하였다. 이런 결정이 위법임을 이미 지적했지만 다시 언급하면 헌법유권해석과 규칙유권해석 삭제는 명백히 헌법시행규정을 위반한 불법이다. 이런 불법은 한걸음 더 나아가 총회재판국 판결을 취소하는 결정까지 하게 되었다. 이 결정 역시 헌법(권징)을 위반한 불법적 결의였다.

 

104회 총회 여전도회관 보고 삭제

 

그런데 104회 총회는 감사위원회 보고 중 여전도회관련 보고를 삭제하는 결정을 하였다. 먼저 언급할 일은 총회 각, 부서가 보고하는 보고내용은 총회에서 삭제할 수도 없고 삭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부서의 보고는 이미 이루어진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고를 삭제한다고 이미 결행한 사실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고를 삭제해서는 안 된다. 보고 내용이 미진하거나 부족하면 추가 감사를 실시하면 된다. 헌법해석이나 규칙해석도, 그래서 재심의 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다.

 

총회가 보고를 삭제하는 것은 한 마디로 하면 증거인멸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보고내용이 그대로 보고서에 남아있게 되면 혹 그 문제로 인해 발생할 소송 등 송사의 중요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며, 송사가 제기되었을 경우 총회가 그 보고를 받지 않고 삭제했다라는 증거자료로 제출하기 위함이다.

 

총회가 결정한 안건들이 정당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면 헌법과 헌법시행규정과 규칙이 정하고 있는 법을 위반해 가면서 불법적 결의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총회가 보고를 삭제하는 일에 모든 총대들이 증거인멸의 공동정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104회 총회가 감사위원회 보고 중 여전도회 관련 보고를 삭제한 것은 대표적인 증거인멸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전 총회장 림형석 목사는 감사위원회 보고가 상반기 감사결과와 하반기 감사결과가 다르게 보고되었고 또 감사보고서가 누출되었기 때문에 삭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삭제를 유도했다. 마치 감사위원회가 엄청난 불법을 한 것처럼 매도하고 보고삭제를 합리화한 것이다. 과연 감사보고 삭제 명분이 타당하고 적법하였는지 보자.

 

여전도회 연합회의 문제

 

감사위원회의 상반기 감사보고와 하반기 감사보고가 내용이 다르다?”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러면 상반기 감사결과와 하반기 감사결과가 같으면 잘된 감사고, 내용이 다르면 잘못된 감사인가? 상반기 감사에서 지적한 내용을 시정하고 바르게 하였으면 하반기 감사결과는 당연히 달라야 한다. 다른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상반기 감사에서 여전도회 회관 관리운영이사회 이사장의 나이가 고령으로 이사장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니 조속히 이사장을 다시 선임하는 것과 여전도회 회관관리 결재라인에 여전연 회장을 넣는 것이 회관관리에 효율적으로 판단된다는 것이었다. 회관관리이사회가 이에 대한 시정보고를 총회장에게 올렸으나 총회장은 반려했다. 왜 반려했을까?

 

총회장은 여전연의 보고를 듣고 회관관리처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반기 감사결과가 마치 여전도회 회관관리처가 부정과 불법의 복마전이라고 생각했던 림형석 총회장의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오자 총회장을 부추겼던 여전연 회장의 특별감사요청을 빌미로 감사위원회를 투입하여 감사토록 하였다. 그러나 감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오자 왜 전반기와 하반기 감사결과가 다르냐. 보고서가 누출되었다는 말도 되지 않는 이유를 붙여서 결국 104회 총회에서 감사보고를 삭제하는 불법을 자행한 것이다. 왜 직전 총회장 림형석 목사와 104회 총회장 김태영 목사는 여전도회의 진실을 은폐하고 감사보고를 삭제하는 불법을 저질렀을까?

 

이것은 총회가 특별감사를 임명하고 조사를 하든지 아니면 검찰에 수사의뢰를 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그래서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명명백백 밝혀야 한다.

 

총회가 왜 이렇게 진실을 숨기고 불법적인 결의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총회가 끝나면 아무도 대부분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나가면 그만이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잘못된 결정이라도 총회만 지나가면 책임질 일도 없고 책임질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총회의 불법적 결정을 바로잡으려 하면 많은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특별심판을 통해서 바로 잡을 수 있지만 그것마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특별심판을 청구하려고 하면 당장 150만원이라는 큰 금액의 재판비용을 납부해야 한다. 자기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문제에 대해서 그 많은 돈을 재판비용으로 납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총대들이 과연 있을까?

 

뿐만 아니라 특별심판을 청구하더라도 특별심판위원회가 과연 올바른 재판을 할 것인가도 문제이다. 지금까지 총회장을 상대로 특별심판이 여러 차례 청구된 적이 있지만 그 많은 소송 중 단 한차례만 총회장에게 패소결정을 하였을 뿐이다. 특별심판위원회의 고민은 총회를 대표하는 현 총회장이 비록 불법을 했지만 그러나 어떻게 총회장에게 불리한 판결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이 또한 장애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특별심판위원회가 내린 부당한 판결이 사회법정으로 비화되어 결국 총회장이 패소한 것이 한두 건이 아니다. 최근에 이루어진 특별심판의 부당함을 법원에 송사하여 승소하였다고 이에 대한 배상금으로 돈의 출처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2,300만원이라는 큰 금액을 변제하는 일을 총회가 겪어야 했다, 103회 총회 세계선교부 보고서에 이 내용이 그대로 게재되어 있으나 1,500명 총대 중 한 사람도 이 문제를 지적하거나 해명을 요청한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도 총대들의 의식이 가장 큰 문제다. 총대로 참석해서 총회를 법과 원칙에 따라 바르게 해야 한다는 의지가 미안하지만 총대들에게 없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임원이 되고, 부장이 되고, 하다못해 실행위원 자리라도 하나 얻기 위한 일에는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총회의 현안들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중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총회가 매번 불법의 악순환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명성교회 수습안에 대한 문제

 

차제에 총대들의 문제를 한 가지 더 지적하고자 한다. 기분이 나쁘겠지만 이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총회의 문제는 모두 교단을 위한 것이고 교회를 위한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총회의 모든 의사결정이 적법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모든 문제들을 같은 비중을 두고 다루어야 한다.

 

104회 총회가 폐회 된 후 이어지는 주일 예배 설교에서 총회가 채택한 소위 명성교회 수습안에 대해서 비판과 비난을 말씀 선포시간에 외친 목사들에 대한 소식이 여러 매체를 통해서 보도되었다. 설교(?)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모두 총회가 불법을 했다고 비난하고 또 명성교회를 비난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어느 목사는 25분 설교 시간에 무려 20여분을 이 수습안을 결의한 총회와 명성교회를 비난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설교는 사상풀이를 하는 자리?  

 

 

다른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목사들에게 경고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에서, 말씀에 갈급해서 주일을 기다리고 은혜를 받으러 나온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독초를 먹이는 일을 그만하기 바란다. 강단이 당신들의 사상풀이를 하는 자리인가? 누가 그런 권한을 부여했는가? 당신들이 선포하는 그 말이 복음인가? 예수께서 그렇게 설교하라고 하셨는가? “시대의 선지자라고?” 웃기는 소리들을 그만 하라. 성경을 그대로 인용한다.“공갈을 그치라”(에베소서 6: 9 중반)

 

한국교회, 특히 여러 교단들 중에 우리 교단이 지난 수년간 수십만 교인들이 감소한 이유가 명성교회 때문이라고? 수십만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는 목사인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 일은 있는가? 잘난 우리 목사들 때문임을 정녕 모르는가? 나라가 온통 조 국이라는 사람 때문에 시끄럽다. 목사, 당신들 중에는 조 국이를 편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가 왜 절반이 넘는 국민들에게 불신을 당하고 있는지 아는가?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 때문이다.말은 그럴 듯하게 하는데 생활은 말과 다르다는 뜻이다. 교회가, 특별히 필자를 포함한 목사의 언행불일치가 교세감소라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은 김삼환목사 부자를 향해서 말 바꾸기를 했다고 비난해 왔다. 그래서 전도가 되지 않고 교세가 감소한 것이라고 .... 그런데 귀한 목사님들은 어떠신지요, 당신들이 강단에서 내 뱉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소리로 바꾼 무서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거짓 평화를 외치던 유다 말기의 선지자들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당신들은 기득권을 추구하지 않는가?

 

당신들은 목사로서의 언행일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번에 총회를 비난하고 나선 교회 목사치고 법인카드 쓰지 않는 목사들이 몇이나 되는가? 풍족한 사례에 고급 승용차, 넓은 주택, 모든 편의시설, 휴가도 해외로 다니시는 귀한 분들, 모르기는 하지만 자녀들은 외국유학을 갔거나 혹은 외국에 거주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고, 그 유학비용도 교회의 지원을 받고, 그리고 은퇴 후에는 수억씩 은퇴비가 보장되어 있는 목사들, 그래서 그런 교회들만 찾아다니는 부나비 같은 사람들을 교인들과 이 사회가 어떻게 볼까 생각이라도 해 본적이 있는가? 교인들은 말만 잘하는 목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바르게(正言)하는 목사를 원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104회 총회의 명성교회 수습안은 잘못되었다.

 

모두 불법적인 내용들이다. 필자가 앞서 쓴 글에서 밝혔으므로 구체적인 언급은 생략한다. 필자가 말하는 불법은 당신들이 주장하는 불법이 아니다. , 그런데 불법이라고 당신들이 주장하는 그 안건을 결정하는 그 자리에 지금 명성교회와 총회를 비난하는 당신들이 총대라는 이름으로 참석하여 결정한 것이 아닌가?

 

만약 그 수습안이 불법이고, 교세를 감소시키고 당신들이 주장하는 공교회성을 해치고, 성경을 위반한 것이라면 몸을 던져서라도 막았어야 하지 않는가? 총회에서 온 힘을 다해서 막으려 했는데 막지 못했다면 총회가 끝난 후에 머리라도 깎고 총회의 부당한 결정에 항의를 했어야 옳은 것이 아닌가? 그것도 못하겠으면 재판비용을 지불하고 소송을 통해서 총회의 부당한 결정을 바로 잡으려는 일말의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애꿎은 교인들 앞에 설교라는 미명하에 불평과 비난을 하고 있으니 애꿎은 교인들을 선동해 무엇을 해 보려는 것인가?

 

왜 당신들은 명성교회가 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면서 당신들은 불법을 묵인하고 동조하는 것인가? 아들이 목회를 대물림하면 헌법위반이고 헌법을 위반하면서 결의한 위법한 총회결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당신들이야 말로 불법의 사람들이다. 법은 잣대(canon)지 이언령비언령[耳懸鈴鼻懸鈴]이 아니다.

 

 

필자는 장로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들도 총대로서 실수하고 잘못한 것이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목사가 아니다. 필자가 목사로서 장로 총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불법과 불의에 동조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 눈치 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러나 목사는 다르다. 목사는 야고보의 지적처럼 더 큰 심판을 받을 자이기 때문이다.

 

해 마다 반복되는 총회의 불법도 지긋지긋하지만 불법을 행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바르게 하려 하지 않는 총대들에게 이제는 피로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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