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비판과 논리학적인 오류에 대해

명성교회를 비판하려면 적어도 형식의 오류, 비형식의 오류에서 자유로와야

편집인 | 입력 : 2019/10/08 [18:58] | 조회수: 97

 

▲     © 편집인

 

조국 사건을 보면서 여전히 한국사회는 사회정의 실현이 요구되는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광화문과 서초동 양측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개혁과 정의를 부르짖는데 누가 올바른 정의인지 이를 판단할 주체가 없다.

 

그러다 보니 성문법 대신 다수의 주장이 정의요, 진리가 되고, 소수의 목소리는 오류로서 끝나게 된다. 102회, 103회, 104회 총회도 마찬가지 이다. 총회장들은 각부서 보고를 보고로 받지 않고, 총회 수습위는 성문법을 잠재우고 명성교회를 일방적으로 수습하고 있다.

 

사회와 교계에서는 어떤 종류의 오류가 미덕으로 존중받는가 하면, 또 어떤 종류의 오류는 출세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류를 이용하여 치부를 하고 권력을 잡기도 한다. 판사들은 오판인줄 알면서도 정치적인 판결을 하기가 일쑤이다.

 

진실은 없다

 

판사들은 30% 사건은 증거가 미약하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판단한다고 하며, 선고당일에도 판단이 안서는 사건이 많이 있다고 한다. 결국 오판이 판사의 이름으로 진리로 둔갑하는 것이다. 명성교회 관련 총회재판국의 판결도 마찬가지 이다.

 

회기마다 지지하는 성향에 따라서 한 끝 차이로 오판이 진리로 둔갑한다. 다수에 의하여 성문법적인 실체는 사라지게 된다. 103회는 총회재판국의 이름으로 오류가 진리로 둔갑하고 온 여론은 오판이고 불법적인 재판인 줄 알면서도 이 오류를 이용하여 대중의 삶을 호도한다.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은 오류로 타인의 삶을 훼손하는 것이다. 교단의 총대와 대중들은 오류에 오염되어 삶을 기만당하고 있다. 결국 103회 불법재판은 104회 총회에서 뒤집혔다.

 

장신대 교수들의 오류

 

재판국에서 법을 전공하였든지, 변호사의 직책을 갖고 있는 사람이 큰 소리 치고 목소리로 우겨대면 오류를 식별할 수 없는 국원들은 질질 끌려가게 된다. 특히 신학대학교 교수들의 발언이나 대형교회 목사들의 연설은 오류를 식별할 수 없는 대중들을 기만하기에 딱 좋다.  

 

장신대 교수들이 명성교회사건이 신사참배 사건이라고 말을 하면 일반군중들이 이를 믿게 된다. 이럴 때 장신대 교수들은 1) 권위의 오류(교수의 권위를갖고서 실체를 왜곡함), 2) 유추의 오류(교리의 문제와 윤리의 문제를 구분하지 못함), 3)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처음부터 전제를 잘못 선택함) , 4)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오류론


일반적으로 오류라는 것은 상식적인 궤도를 일탈하는 것으로 어떤 진술이나 행동이 거짓되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오류는 논리학에서 오류추리로서 부당한 논증에 해당한다. 이러한 부당한 논증은 교묘하게 겉보기에는 진리로 비쳐지지만 이면은 부당성을 위장하고 있다.

 

위장용으로 사용된 가면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오류'라는 함정에 빠지도록 우리를 유도하고 있다. 어떤 논증 A는 오류라고 할 때 1) A는 부당한 논증이다. 2) A는 일반성이 있다, 3) A는 A를 타당하다고 착각할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논리적 오류와 모순, 부당한 논증을 구분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만일 속임수마다 어떤 짧고 적당한 이름을 붙여서 사람들이 속임수를 사용할 때 즉시 꾸짖어 줄 수 있으면 대단히 좋을 것이다"고 했다. 

 

최근 들어 언론은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고 학자들은 부당한 추리를 만들어 내도 일반인들이 이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이단감별사들은 이제서야 그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대중들은 그들이 이단이라는 것을 알게 뒬 때까지 20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그 때까지는 이단감별사들의 천국이었다. 뉴스앤조이, CBS, 한국기독공보 모두 그들을 지지했다. 그들에게 반대하면 이단옹호언론이었다. 

 

브루투스가 연설할 때 로마시민들은 그가 무죄라고 판단했다. 빌라도가 예수를 죄없다고 말해도 군중들은 유죄라고 판단했다. 바울은 죽어서야 그가 무죄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가 전한 복음이 300년 후에 로마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화성사건도 사람들이 많이 죽고 누명자가 출옥한 이후에 진실이 드러났다. 오판의 연속이다.   

 

군중들의 오류

 

브루투수는 충분히 무죄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군중들은 정서가 자극되어 무죄라고 판단했다. 이 경우 브루투스의 논증 자체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오류를 범했다고는 할 수 없다. 브루투스는 자신의 무죄에 대하여 충분히 입증을 할 수 없음을 알고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군중들이 자신의 무죄를 잘못 믿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오류를 범한 것은 브루투스가 아니라 로마시민들이다. 빌라도는 분명히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하였으나 군중들이 정서적으로 유죄라고 판단하여 바라바를 요구하였다. 군중들이 오류를 범한 것이다. 군중들은 지도자에게 오류를 진리로 착각하여 기만당하기도 하지만 유대인들처럼 스스로 지도자가 오류를 범하게끔 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브루투스의 유죄에 대한 안토니우스의 논증도 오류이지만 안토니우스는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라 로마 시민들이 오류를 범하도록 군중심리를 자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진리가 정서에 의존할 때 진리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춤을 출수가 있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군중들이 비판했던 전광훈목사에 대해서 지금은 800만명이나 대통령 하야에 서명 하였고, 광화문 광장에 수백만이 모였다. 대중들은 오판의 연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박근혜를 탄핵하고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하였지만 대중들은 문재인대통령을 선출한 것에 대해 오판을 했다고 판단, 광화문 거리로 나섰다. 대중들은 끊임없이 오류와 오판에 매여 있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와 성서의 역사, 교회의 역사, 교단의 역사, 정치와 사회의 역사, 일반 뉴스는 오류행전 이다. 이춘재로 인해서 화성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었다. 경찰과 판사의 오판이다. 검증되지도 않은 방사능 동위원소의 측정이 정확하다는 잘못된 전제로 억울한 사람을 옥살이하게 만들었다. 논리학적으로는 이러한 것들이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이다.

 

오류의 분석


오류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1) 논증의 구조확인이 있어야 한다.

 

결론이 무엇인지 먼저 확인하고, 그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어떤 전제들이 제시되었는지 확인한다. 라이프찌는 <진리성립 충족이유율>에 의하면 어떤 진술이든지 만일 참이라면 참이 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2) 논증의 타당성 검사가 있다.

 

A의 타당성 조사결과 A가타당한 것으로 드러나면 오류분석은 이 단계에서 끝나고 A는 오류가 아닌 것으로 판정될 수 있다.

 

3) 오류여부진단 이다.

 

만일 A가 어떤 오류의 형식과도 일치하지 않으면 A는 오류가 아니라 단순히 부당한 논증이다.

 

4) 오류의 평가가 있어야 한다. A가 오류라고 단순히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A가 오류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논리학의 오류론


논리학의 오류론 중에는 1) 형식의 오류, 2) 비정합성의 오류, 3) 비형식의 오류가 있다.

 

1) 형식의 오류는 논리적 오류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선결문제요구의 오류(begging the question)가 있다. 이는 없는 전제를 갖고 결론을 도출하려는 오류이다. 이를테면 "세습은 신사참배이다. 그러므로 명성교회는 교단을 떠나야 한다"이다. 처음부터 세습이 비헌법적이라고 가정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잘못된 전제를 가정하고 결론을 도출하려고 하니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론을 도출하려하다 보니 계속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교회의 자유는 교단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개교회는 교단의 자유에 따라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명성교회는 대형교회 이기 때문에 맘모니즘 교회이다. 그러므로 명성교회는 교단을 떠나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전제가 잘못되었다. 전문인들은 이런식으로 해서 명성교회를 매도했다.


2) 비형식적인 오류는 형식외적인 특징으로 일반화될 수 있는 오류를 말한다. 


여기는 동정에의 호소, 공포에의 호소, 증오에의 호소, 대중에의 호소, 유추의 오류,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있다.


동정에의 호소는 주로 재판정에서 변호인이 정서적으로 판사에게 호소할 때 잘 쓰인다. "피고는 일할 능력이 없는 부모와 어린 8남매의 자식을 거느리고 있는 가난한 막벌이 노동자입니다."

 

대중에의 호소는 대중의 편견, 감정, 군중심리, 열광에 호소하여 대중의 동의를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것은 해당분야의 전문인들이나 권위자들이 권위를 갖고 말할 때 오류를 범할수 있다는 것이다.  "장신대 교수들이 명성교회세습을 반대하는 것은 진실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 이외도 유추의 오류, 논점 이탈의 오류가 있다. 신사참배는 교리적인 문제 이고, 세습은 윤리적인 문제인데 이를 비교하는 것은 유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명성교회를 비판하려면 적어도 형식의 오류, 비형식의 오류에서 자유로와야 한다. 특히 선결문제요구의 오류, 유추의 오류, 권위의 오류, 대중에 호소의 오류를 갖고서 계속 명성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논리학적으로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명성교회를 허물기 위해서는 도덕, 윤리, 신학적 주장보다는 법적으로는 교회법적인 논리, 철학적으로는 오류론에 해당하지 않는 논리학적인 논리를 내세울 필요가 있다.   

 

 

http://kidogkongbo.com/1928

 

▲     © 편집인

 

  

http://kidogkongbo.com/1932

 

▲     © 편집인



http://kidogkongbo.com/1930

 

▲     © 편집인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