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사교를, 김구는 기독교를 선택

박대통령은 사익을 위한 종교적 삶, 김구는 공익을 위한 종교적 삶

기독공보 | 입력 : 2016/12/10 [06:20] | 조회수: 804

 사익을 위하여 사교교주를 선택한 박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노무현 전대통령에 이어 한국 대통령으로서 두번째 탄핵을 당했다. 한국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가운데 백범김구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갑작스런 부모의 죽음으로인한 공허함을 메꾸기 위하여 신접한 사술가 최태민을 끌어들여, 사교를 선택하여 결국 오늘의 사태를 빚고 말았다. 즉 최태민을 끌어들인 것은 개인적인 공허함을 달래기 위함이었고, 최순실을 끌어들인 것은 최태민과의 연관성속에서 최순실을 통하여 최태민의 종교적 카리스마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교적 삶이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 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머니의 혼을 불러들여 어머니의 음성을 듣게하는 최태민의 사기적 종교행각에 속아 굿판을 벌이는 등 비상식적이고 사교적인 종교적 행위를 하였고, 최순실 역시 자신의 아버지의 영향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사익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게끔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공익을 위한다고 호언장담을 하여 청와대의 주인이 되지만 대통령이후 점점 사익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사교의 선택은 사익의 추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유는 공익과 사익을 구분하지 못하고 국민을 위하는 공익을 추구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최순실이라는 특정인에 대한 특혜와 더불어 그를 통한 사익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국민들이 반발을 하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최순실멋대로 하는 최순실공화국이었다. 박대통령의 사교적 교주모녀의 선택은 국정농단과 탄핵으로 이어졌다.

 

왕조시대에도 이처럼 특정인이 혜택을 누린 적은 없었을 것이다. 사익을 토대로 하는 사교적 선택을 한 박근혜 대통령과 공익을 추구한 백범김구의 종교적 선택이 현격하게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지금도 가장 위대한 정치인의 반열에 백범 김구를 올려놓는데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첫째도 독립, 둘째도 독립, 셋째도 독립이라고 말을 할 정도로 그의 삶은 오직 국가였다. 이봉창, 윤봉길이라는 독립투사의 배후에는 백범 김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족보다도 국가를 위해 봉사한 사람이다. 그는 종교도 국가를 위해 선택했다.

 

공익을 위하여 동학과 기독교를 선택한 백범 김구

 

1893년 백범은 과거시험을 낙방하고 동학도인 오응선을 통하여 동학을 만나게 된다. 오응선은 동학에 대하여 "양놈과 상놈의 구별없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사악한 인간들로 하여금 개과천선하여 새 백성이 되어 천주를 모시고 신국가를 건설하는게 동학"이라고 말하자 동학에 귀의하게된다.  그가 동학에 귀의하게 된 이유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열심동학교도가 되어 동학의 중간간부인 접주가 되고, 동학의 교주인 최시형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는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이 동학혁명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황해도에서 척왜양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해주성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여 동학혁명에 동참하게된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동학을 선택했고, 동학을 통하여 외세를 몰아내고 국가의 공익을 위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백범은 1899년 마곡사에 피신하면서 중이 되었다가 1903년 황해도 지역에 기독교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애국사상을 갖고 신교육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보면서 기독교에 귀의하게된다. 백범은 교육이야 말로 나라를 구하는 애국의 길로 여겼고, 기독교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1903년 기독교에 귀의하여 미국선교사 헌트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게 된다. 그는 사경회에서 은혜를 받고 열심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쳤고, 포교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그의 열심으로 교회가 크게 부흥했고 학교도 발달하였다.

 

사교를 선택한 리더의 국정농단과 기독교를 선택한 리더의 정치 위상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사익을 위해 종교적 교주를 선택하다가 결국 국정농단까지 가게 되는 비극을 맞고 헌정역사상 두번째 탄핵을 당하는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다. 노무현전대통령의 탄핵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전혀 달랐다. 노무현대통령의 탄핵은 반대세력이 만만치 않았고 탄핵의 후폭풍이 엄청나게 컸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거의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없는 탄핵이었다. 결국 사익을 위해 선택한 종교적 요구는 국정농단으로 가서 대통령 탄핵이 되었지만 새로운 세상과 국가를 위하여 공익적으로 종교를 선택한 백범은 한국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서 자리잡았다. 숙명여대 옆에가면 백범기념관도 있을 정도이다. 

 

오늘 기독교가 주변으로 몰리는 것도 국가와 사회를 위한 공익적 행동보다 목사개인을 위한 사익적 행동이 범람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의 리더에게 있어서 종교적 선택이 누구를 위하느냐에 따라서 국가의 행방이 천지차를 이루고 있다. 박근헤 대통령은 자신과 측근을 위한 종교적 선택이 아니라 김구처럼 국민과 국가를 위한 종교적 선택을 해야 했다. 박근혜대통령은 사교를 선택했지만 김구는 기독교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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