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유산 답사기3 (호남편), 조선의 개혁자들

정도전, 조광조, 정약용

편집인 | 입력 : 2020/01/04 [11:00] | 조회수: 302

유배지의 개혁자들

 

조선시대 개혁자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호남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정도전은 고려시대 때 나주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조광조는 화순에서,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조광조는 경기도 용인출신으로서  호남땅 화순에서 1년도 못되어 유배생활을 마감하고 중종으로부터 사약을 받아 유배지에서 명을 다하였다. 

 

정도전

 

정도전은 유배후 얼마되지 않아 복귀되어 이성계와 역성혁명의 주역이 된다. 그는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는데 일조함으로 조선 500여년사를 유교로 민족의 정신적 점령을 하게 하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유교의 윤리적, 도덕적인 면들은 기독교의 검약, 절제와 공통점이 많아서 기독교의 포교활동에 많은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유교의 부정적인 면들도 있었지만 효도, 충효 등의 긍정적인 면들은 기독교와 공통점이 많이 있었다. 즉 유교의 실천적인 면들은 기독교의 실천적인 면들을 현실화는데 많은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실천적인 면들은 호남인들이 항일운동, 반외세투쟁, 반독재투쟁을 하는데 정신적 영향을 주었다.        

 

공교롭게도 조선왕조 500년사에서 개혁으로 대표할만한 사람은 조선초기의 삼봉 정도전(1337-1398)과 조선중기의 정암 조광조(1482-1519), 조선후기의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모두 호남땅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호남에 유배되었고 조선의 개혁을 추구한 사람들이었다. 개혁을 주도하다가 조광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목숨을 잃었고 모두 실천을 중시하는 학자였다. 호남은 실천의 땅이었다. 

 

이러한 유배지 학자들의 개혁의 씨앗과 훗날 기독교의 씨앗이 호남의 정신사조를 형성하고 반외세와 반독재투쟁의 실천운동을 이끌에 내는데 일조를 했다.   

 

유교를 통하여 조선시대를 실험적으로 개혁하려고 했던 정도전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정도전은 충청도 사람으로서 호남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정도전은 1337년 고려시대 충청도 단양 삼봉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호가 삼봉이 되었던 것이다. 충청도와 전라도는 백제문화권이었다. 그는 호남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미래의 새로운 왕국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도전의 개혁사상은 나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학문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정도전은 고려의 공민왕이 재직하고 있는 동안에는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었지만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들어서면서 그의 인생은 타격을 받게 된다. 그는 이미 세력을 잃은 원보다는 명과 화친해야 하다는 주장을 갖고  공민왕이 시해당한 사실을 명나라에 알려야 하고 북원사신을 밎이하는 문제로 맞서다가 전라도 나주 관하의 거평부곡에 유배되었던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호남은 유배지였던 것이다.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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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여기서  "예부터 한번 죽음이 있을 뿐, 목숨을 붙여 안락하게 살고 싶지 않다"라는 시를 쓰기도 했을 정도로 그의 신념은 분명했다. 

 

나주에서 유배생활을 한 정도전은 불씨잡변을 기술하여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유교를 국교로 옹립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고려시대때는 지방에서 유학만 전공하고 가르친 학자였지마 이성계 왕조 시절에는 종교제도, 토지제도 등 다양한 개혁을 시도한 실천적 개혁가 였다. 그는 나주에 유배생활을 하면서 미래의 왕국을 꿈꾸어 나갔던 것이다. 정도전과 같은 걸출한 학자들이 호남에서 유배생황을 함으로 거기서 터득했던 정신사조로  조선왕조를 확립하고 고려시대의 폐단을 과감하게 개혁해 나갔다.

 

개혁과 혁명정신이 오래전부터 호남땅에 잠재적으로 스며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개혁정신은 구한말 기독교의 유입으로 실천운동으로 이어져 항일정신으로 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정도전은 토지와 노예, 양반과 상민의 신분제도까지 개혁하려고 했었다. 

 

그는 유배지에서 학문을 정립한 후, 물고기가 물을 만난듯, 이성계를 만나 조선을 개국하면서 관원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토지혜택을 대폭 축소시키고, 소작인 보다는 지주로부터 세금을 받아내고, 노비제도를 개편하고, 노비가 경제력이 있을 경우 군대처럼 부역을 하고 양인신분으로 승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개혁시도를 한 바 있다.

 

그런데다가 개혁초기에는 '계민수전'이라고 하여 양인과 천민을 가리지 않고 인구를 헤아려 토지를 나눠주고 자 하였다. 노비개혁은 지배층의 반발이 거세 실패하고 말았다. 정도전은 잘 짜여진 중앙집권적 통치제제를 갖추고, 양인내부의 계층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자 했다.

 

고려시대는 양인농민이라도 거주하는 고을의 격에 따라 정치적 권리와 국가에 대한 의무 부담 내용이 달랐기 때문에 농민항쟁의 주요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의 500년 유교적인 삶은 모두 정도전이 불교를 배격하고 유교를 국교로 채택한데서 온 것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을 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조선초기에 이성계와 함께 한 훈구세력들은 정권을 장악하고 고위직에 등용되었고 당시의 학풍을 주도해 나갔다. 

 

조광조

 

정암 조광조는 대표적인 사림파로서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 반정이후 등용되어 당시 정권을 장악했던 부패한 훈구세력에 맞서 개혁을 추진하다가 화순 유배지에서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 조광조 유배지(화순)

 

1506년 폭정과 학정을 일삼던 연산군이 폐위뒤면서 중종반정으로 조선 사회는 새로운 분위기를 맞이하였다. 이때 훈구세력들이 약화되면서 사림파들이 정치에 재진출하며 조정에 개혁의 기회가 찾아왔다. 조광조는 사림세력을 인도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15세기 후반 이후 훈구 세력에 의한 권력형 비리가 여러 곳에서 문제화되면서 적폐청산을 부르짔었던 사림세력은 이러한 훈구 세력의 잘못된 정치 관행과 권력형 비리를 문제시하면서 새로운 조선 사회를 창조하려고 하였다. 특히 호남의 사람들은 개혁에 적극적이었다.

 

조광조는 1510년(중종 5년) 소과인 생원시에 입격한 후, 1515년 알성시 별시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을 시작으로 사간원 정언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벼슬이 높아갈수록 자신과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마음먹고 있는 이상정치, 즉 도학정치를 실현해 보려 하였다. 도학정치란 공자와 맹자가 정립한 정치로서 요순시대를 구현하려는 이상적인 정치사상이었다. 

 

새롭게 조정에 들어온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세력은 민본정치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정치 개혁에 착수하였다.  조광조는 당대 시행되던 과거제가 주로 기예만 시험을 본다고 하면서 그 대안으로 덕성에 바탕한 관인 선발제도인 현량과(賢良科)를 시행하는데도 일조를 하였고, 조광조는 이상정치의 실현화로서 성리학적 사회윤리의 정착을 위해 성리학적 생활규범을 규정하고 있는 [소학]의 보급이나 향약의 보급 운동 등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조선을 도학정치로서 성리학적 이상사회로 만들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광조의 개혁은 훈구세력의 견제를 받았고, 중종의 그를 토사구팽함으로 실패하고 만다.

 

조광조는 처음에는 중종의 절대신임을 얻고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훈구세력들은 조왕조일파가 당파를 조직하고 조정을 문란케 한다는 상소를 올리자 중종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조광조일파를 제거하였다. 개혁에 실패한 것이다. 당시 탄핵을 받은 사람들은 조광조, 김정, 김구, 윤자임, 박세희, 박훈등 개혁세력의 핵심인사들이었다. 

 

정약용

 

남인 가문출신으로 정약용은 정조때 문신으로 조정에 진출했고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정조가 죽은 이후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심서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     © 편집인

 

그는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의 실학의 학풍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천재적인 능력으로 법,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역사 현상의 전반에 걸쳐 사상을 전개했고, 수원성을 축조하기 위해 기중기까지 고안하는 등 하여 파탄에 이른 당시의 조선사회를 개량하여 조선왕조의 질서를 새롭게 강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약용은 조선에 왕조적 질서를 확립하고 유교적 사회에서 중시해 오던 왕도정치()의 이념을 실학과 서학의 힘을 통하여 실천구현함으로써 ‘국태민안()’이라는 이상적 상황을 도출해 내고자 하였다.

 

성리학으로 도학정치를 실현하려고 했던 조광조와 유사한 면이 있었다. 그는 유교의 정신을 실학과 서학을 통하여 구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미 개신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정약용은 천주교를 통하여 기독교의 주춧돌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유교파, 사림파, 실학파, 서학파 사람들이 호남에 유배를 했고 그들의 개혁의 씨앗이 호남 땅에 뿌려져 유교와 천주교 동학, 개신교를 통하여 근현대까지 이어져 호남에서 실천적 개혁의 열매를 맺게 했다. 호남은 실학, 실천의 땅이었다. 

 

유교의 실천정신, 사림파의 학문성, 유배자들의 실학과 서학, 동학이 기독교의 정신이 가세하면서 호남인들이 3.1운동, 광주학생 의거, 광주민주 항쟁 등으로 실천적 혁명을 이끌어 내게 했다. 안방에만 머물렀던 유교의 정신을 마당까지 끌어내었던 것이다. 

 

양반들의 안방종교가 아닌 서민들의 마당종교인 기독교는 호남이 실천적 땅이 되게하는데 큰 일조를 하였다. 기독교는 양반들을 위주로 하는 안방의 종교가 아니라 서민들을 위주로 하는 마당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마당의 종교가 서민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와같이 조선의 개혁자 세 사람 모두 호남 유배지 머물렀고 그들의 개혁정신은 호남땅에 뿌려져 후세대에서 기독교를 통하여 꽃을 피우게 되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정도전은 불교에 토대를 둔 부패한 고려말기왕조를 개혁하고자 이성계의 1388년 위하도 회군 이후 역성혁명에 편승하여 1392년 조선왕조를 개청하면서 4년 동안 개혁정치가로서 면모를 뚜렷이 나타내기 시작했고, 조광조는 사림의 정신을 통하여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고, 정약용은 실사구시의 실학과 서학으로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만드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서학에 일찌감치 입교함으로 천주교도라는 이유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되어 개혁에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호남땅에 씨앗이 되어 후세들을 통하여 개혁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조선초기는 유학으로 시작했고, 조선중기는 사림파가 득세하여 유교의 정신을 구현하려고 했고, 조선후기는 이러한 정신을 이어 실학과 서학, 동학으로 탐관오리와 반외세 투쟁을 하고, 구한말초기에는 기독교를 수용하여 부국강병과 일제에 투쟁하였다. 

 

특히 기독교는 3.1운동을 이끌어 내는데 앞장섰고, 반부패와 반독재 투쟁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의 개혁자들의 정신이 근대학교와 근대병원을 세운 기독교를 통하여 열매를 맺게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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