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신앙유산답사기(14), 선교사들의 호남행전(전북)

레이놀즈, 전킨, 드류

편집인 | 입력 : 2020/03/21 [01:21] | 조회수: 29

▲     ©편집인

  

 

윌리암 데이빗 레이놀즈((William Davis Reynolds, 이눌서)

 

테이트와 잉골드부부 이외에 호남선교에 영향력을 강력하게 행사한 사람은 고전어 능력과 번역이 뛰어난 평양신학교 교수이며, 1906년 3월부터 1907년 8월까지 게일목사가 안식년으로 강단을 비우게 됨에 따라 대신 연동교회 강단을 맡은 레이놀즈였다.  

 

  © 편집인

 

그는 연동교회에서 임지 재임기간동안 교인들 가슴에 이름표를 붙이도록 해 600여명 교인들의 이름을 모두 외울 정도로 천재적인 사람이었다. 

 

레이놀즈 선교사는 1887년 버지니아 햄펀 시드니 대학을 졸업을 하였고 라틴어, 헬라어의 고전어 실력과 프랑스, 독일어, 영어실력까지 뛰어나 하나님이 번역선교사역을 위해 미리 예비한 사람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교장을 하다가 리치몬드의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하고,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안식년으로 귀국한 북장로교 소속 언더우드의 강의를 듣고 한국선교에 소명을 받아 7인의 개척자들과 함께 1892년 11월 3일 한국에 도착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번역사업에 충실하여 1910년에 출판된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의 번역작업을 주도하였다.

 

당시 레이놀즈와 함께 왔던 7인의 개척자들은 전킨(William McCleery Junkin, 전위렴), 테이트(Lewis Boyd Tate, 최의덕), 마티 테이트(Mattie S. Tate, 최마태), 린니 데이비스(Linnie Davis), 팻시 볼링(Patsy Bolling), 메어리 레이번(Mary Leyburn) 였다. 

 

7인의 개척자들은 동학난으로 코로나 이상으로 콜레라 전염병이 창궐하고, 전쟁후유증으로 가난하고 헐벗고 꿂주렸고 수탈과 착취에 만연된 광야보다 더 황폐한 전북의 황량한 땅을 가나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     ©편집인

  

 이와같이 레이놀즈는 동학의 후유증과 외세의 수탈로 전북을 가나안으로 만들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는 예수대신 예수의 사절로서 울퉁불퉁한 호남의 땅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서 왔다. 즉 예수의 씨앗을 뿌려 싹을 내고 열매를 맺게하기 위하여 동방박사들처럼 별을 보고 별이 머문 호남에 온 것이다.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라 예수가 아직 이 땅에서 못다한 사역을 완성하기 위하여 예수의 부름을 받고 온 것이다. 즉 예수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하여 척박한 전주에 왔던 것이다.  

 

그는 호남을 가나안 땅으로 만들기 위하여 1892년 말에는 호남선교를 위해 충남지역을 답사했고, 1894년 3월에 의료선교사인 드류(A.Damer, Drew)와 함께 군산에 도착해서 말을 타고 전주, 김제, 영광, 함평, 무안, 우수영, 순천, 좌수용 등지를 순방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당시 동학이 발생하여 동학농민들이 척이양이 구호를 외쳤기 때문에 서구선교사로서 생명의 위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처럼 복음을 전했다.

 

그는 1897년 3월 27일에 뒤늦게 도착한 드류(A.D. Drew) 의사와 함께 전라도 일대를 탐험하면서 [전라도 여행기]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낮에는 발로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고, 밤에는 성경을 번역하고 책을 썼다. 그는 7인의 개척자중에 학문적 소양이 가장 뛰어났고, 한국에 실력이 제일 좋아서 북장로교와 감리교가 공동으로 수행하는 성서 번역사업에 공헌하여 1910년에 출판된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의 번역작업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가르침 활동으로는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에서 1917년부터 1937년까지 어학교사 및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기독교 최초의 저널인  '신학지남'의 편집인 등으로도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론과 실천에 뛰어난 호남의 사도바울이었던 것이다.

 

1937년 신사참배로 평양신학교가 폐쇄되자 한국에서 그의 사역도 막을 내렸다. 미국에 머물면서 한국에 1950년 6.25 전쟁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해 1951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선교사 휴양지인 몬트릿(Montreat)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소천되었다. 한국선교에 이론과 실천으로 전도목사로서,교수로서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천재 선교사였던 것이다.  

  

전킨과 드류

 

  © 편집인

 

호남이 다른 지역에 비해 가장 복음화률이 높았던 것은 의료선교와 학원선교였다. 동학 이후 피와 질병으로 물든 척박한 호남땅에 복음의 씨앗이 잘 먹혔던 것은 동학혁명 이후 희망이 없었던 백성들에게 질병을 치료해 주고 동시에 복음을 전하고 학교를 세웠기 때문이다.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없었다면 복음화율은 저조하였을 것이다. 특히 전쟁이 쓸고 간 상흔은 너무나도 컸다. 마침 동학혁명 이후 선교사들이 호남땅에 내려와 치유하면서 선교를 한 것이 민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초대교회에 바울과 바나바가 있었다면 군산선교에는 전킨과 드류가 있었다.

 

전킨은 1865년 버지니아 크리스천벅에서 판사의 아들로 태어나 워싱톤대학과 리치몬드 유니온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레이놀즈와 함께 1891년 전국신학교 해외선교연합회의 내쉬빌집회에서 언더우드의 강연을 듣고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국 남장로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아 한국파송 7인의 선발대로서 1892년 11월월 3일 테이트 레이놀즈와 함께 한국에 상륙했다.

 

동료선교사 테이트는 전주에서 선교를 하고, 전킨은 1896년 2월에 군산에 선교지부를 설치하고 전도한 교인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예배를 시작하여 군산구암교회와 개복교회를 개척하였던 것이다. 전킨이 설교하고 드류는 의술을 베풀었다.

 

[전라도 선교 25주년 예배록]을 보면 "동학혁명으로 인하여 그 해 이사하지 못하고 1896년 2월에 전목사의 온 가족이 경성에서 이사하야 오고 유대모(드류)씨의 가족은 두 달 후에 와서 자기 사랑(舍廊)에 진료소를 열고 환자를 진찰함으로 인심을 얻었으며 진찰시에 기다리는 환자에게 전목사가 전도하며 자기집 사랑에 오는 손님을 대접하며 주일이면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라고 되어있다.        

 

당시 드류의사의 진료소에 환자들이 몰려들면 전킨선교사는 이들에게 쪽복음을 전했다. 

 

해리슨은 당시 군산의 사람들에 대하여 "사람들은 무식하고 미신적이었으며 남자들은 술고래였고 노름을 했다. 여자들은 잘 싸우고 샤머니즘을 숭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환영을 했다. 외국인 부인은 공적인 장소에 나타날 때마다 큰 구경거리였고 많은 군중들이 몰려왔다"고 했다.

 

전킨과 드류가 군산에 내려갔을 때, 군산은 집이 100가구밖에 되지를 않았으나 주일날마다 약 40여명의 신도들이 모였다.

 

전킨이 개척한 개복교회에서 전킨은 최초로 김봉래와 송영도 형제에게 세례를 주었고, 차일선형제는 당시 믿음의 결단을 하고 자신의 집을 예배처소로 헌납하기도 하였다.

 

  © 편집인


전킨의 새로운 집은 1899년 12월 21일에 완성되면서 군산교회는 없어지게 되고 전킨 사랑에서 예배를 드리는 궁말교회(구암교회)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 편집인

 

1899년 가을에 불(W.F.Bull)목사가 부임해 오면서 구암교회는 1900년 봄에 95명이 세례를 받을 정도로 급성장해 갔다. 전킨은 1894년에 장남을 잃고, 그 뒤에 세째를 잃었다. 1900년에 그는 몸이 쇠약해지면서 안식년을 얻어 귀국하였고 그 이후 불목사와 드류의사가 사역을 함께 해 나갔다.

 

드류도 건강상의 이유로 1901년에 귀국을 하자, 1902년에는 드류를 대신할 알렉산더(A.J.Alexander)가 군산에 부임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군산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소천하는 바람에 다시 귀국했고, 대신 불목사의 어학선생이었던 오긍선을 미국으로 데려다 루이빌 대학에서 의학공부를 시켜서 한국인 최초의 피부과 의학박사가 되게했다.

 

 

 

오긍선은 궁말의 예수병원 원장과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사와 교수를 하면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이처럼 예수의 씨앗을 부여받은 선교사들의 힘으로 인해 한국인 의학박사가 태어났던 것이다.  

 

오긍선은 1878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출생했고,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여 1892년부터 1895년부터 과거를 준비하기 위해 이후()서당에서 본격적으로 한학에 열중했고,1900년에 배제학당을 졸업했다. 

 

그는 처음에는 배재학당 재학중인 1897년에 독립협회에 가입했고, 1902년 미국인 선교사 알렉산더의 주선으로 1904년에 루이빌의과대학으로 편입하여 1907년 졸업한 후, 1907년 10월 미국 남장로회의 의사 선교사로 귀국하였다.

 

귀국 직후인 1907년 11월부터 전북 군산 예수병원장이 되었고, 1909년에는 군산에 영명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에 취임했다.

 

훗날 세브란스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알렉산더 선교사가 없었더라면 한국인 의학박사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잉골드로 시작한 보건진료소, 드류를 통한 의술활동이 결국 한인 의학박사를 태동시켰던 것이다. 선교사들의 힘으로 인해 서양의술을 전공한 한인 의학박사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의사는 1892년 조지워싱턴 의대를 졸업한 서재필(1864~1951)이다. 두 번째 의사는 1900년 볼티모어 여자의대를 졸업한 김점동(미국식 이름 박에스터·1879~1910)으로 그는 최초의 여의사이기도 하다.

 

김점동은 미국선교사 스크랜튼이 세운 이화학당을 다니면서 유학을 가게되어 여의사가 되었다. 선교사들은 한인들이 서양의술을 배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김점동

 

세 번째가 1907년 루이빌 의대를 나온 오긍선(吳兢善·1878~1963)인데 그는 조선인 최초의 피부과 의사이며 최초의 세브란스의전 교장이었다.

 

근대 의학의 선구자인 지석영과, 조선 의학계의 대부로 불린 오긍선이 망우리공원에 함께 묻혀 있다. 결국 서울에서는 스크랜튼여사의 힘으로 전북에서는 전킨과 드류의 선교열정으로 미국 남장로교 파송 서양의사를 길러냈던 것이다.     

 

전킨은 교회설립이외에도 1902년부터 자신의 舍廊에서 학생을 모집하여 신교육을 펼쳤다. 이것이 훗날 영명학교로 발전하였고, 전킨 부인은 여학생들을 교육시켰는데 이것이 멜볼딘 여학교의 효시가 되었다. 

 

그 이후 전킨 부인은 전주로 와서 전주 기전여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다. 

 

  © 편집인

 

불목사의 부인은 미국에서 여학생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펼친 나머지 미국 버지니아 렉싱톤 장로교회 부인들이 학교신축금을 보내어 멜볼딘 여학교를 건립하게 되었다.

 

전킨부인과 불부인이 메리볼드윈 스쿨(Mary Baldwin School)을 졸업하였기 때문에 학교이름을 멜볼딘 여학교라 하였던 것이다. 

 

  © 편집인

 

이처럼 부름받은 선교사들은 시간 나면 전도해서 교회를 세우고, 교회에 온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진료소를 세운 것이 오늘날 대형병원으로 발전하였고, 나아가 근대학교를 설립하여 많은 학자들과 항일운동가들을 배출시켰던 것이다. 

 

동학난이 발생한 이후 척박한 호남땅에 정착한 선교사들은 교회와 병원, 학교를 세워 호남땅을 옥토로 바꾸고 있었다. 피와 한의 땅을 그리스도 사랑의 땅으로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신앙유산 답사기1(호남편)

http://kidogkongbo.com/2013

 

  

나의 신앙유산 답사기2(호남편), 차별의 한

http://kidogkongbo.com/2020

 

 

나의 신앙유산 답사기3 (호남편), 조선의 개혁자들

http://kidogkongbo.com/2025 

 

  

나의 신앙유산 답사기4 (호남편), 기묘사화와 기축옥사 

http://kidogkongbo.com/2034

  

나의 신앙유산 답사기5(호남편), 사림과 붕당정치

http://kidogkongbo.com/2038

 

 

나의 신앙유산답사기 6(호남편)

http://kidogkongbo.com/2045

 

 

나의 신앙유산답사기 7(호남편), 실학과 서학(1)

http://kidogkongbo.com/2049

 

 

나의 신앙유산답사기 8( 호남편), 실학과 서학 (2) 

http://kidogkongbo.com/2051

 

 

 나의 신앙유산답사기 9(호남편), 실학과 임진왜란을 통한 서학

 http://kidogkongbo.com/2052

 

 

나의 신앙유산답사기 10(호남편), 해외로 간 동학

http://kidogkongbo.com/2057

 

 

나의 신앙유산답사기 11 ( 호남편), 선교사들이 본 동학

http://kidogkongbo.com/2069

 

  

나의신앙유산답사기 12,  호남을 사랑한 하나님

http://www.kidogkongbo.com/2112

 

  

 나의 신앙유산답사기(13), 호남으로 간 선교사들   

 http://www.kidogkongbo.com/2130

                                                                                                                                                                                                                                                                                                                                                                                                                                                                                                                                                                                                                                                                                                                                                                                                                                                                                                                                                                                                                                                                                                                                                                                                                                                                                                                                                                                                                                                                                                                                                                                                                                                                                                       

 

※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 글을 게시하고자 할 경우에는 실명인증 후 등록하셔야 합니다.
실명확인 된 게시물은 실명인증확인 여부가 표시되며, 실명확인 되지 않은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게시물은 선관위의 요청 또는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본 실명확인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2020.04.02~2020.04.14) 동안에만 제공됩니다.
  • 실명인증
  • ※ 일반 의견은 실명인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 ※ 이 댓글에 대한 법적 책임은 작성자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