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목사] 총회장의 주일성수 중단에 대한 견해

예배문제는 총회장 개인이 결정할 것이 아니라 공론화 했어야

이정환 | 입력 : 2020/03/23 [10:44] | 조회수: 199

 

   

 

중국에서 발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온 세계가 긴장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두려움의 원인은 아직도 코로나19에 대한 치료제와 치료방법, 치료기간 등에 대한 확실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런 것처럼 인간은 필요에 의해서 문명을 발전시켜 왔으며 질병도 예방적 차원에서 차료법이나 치료제를 발명하기 보다는 한 번 병 치례를 한 다음에야 비로소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신종 바이러스도 곤욕을 치른 다음에야 비로소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하루 속히 치료제가 만들어져서 이 질병이 퇴치되기를 바라며 그 때까지 인명과 재산에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발병은 우리 사회의 일상생활을 모두 바꾸어 놓았다. 그중에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에 대한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 신앙에 가장 중요한 주일 성수에 대하여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독교에서 예배는 절대적

 

기독교에서 예배는 절대적이다. 예배를 떠난 기독교 신앙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 출애급기에 보면 모세가 애급의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해방을 요구할 때 그 이유가 야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물론 바로는 초기에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지만 결국 예배에 대한 타협안을 내놓고 모세와 협상을 시도한다. “좋다. 너희 하나님께 예배하게 해 주겠다. 그러니 이 땅을 떠나지 말고 여기서(애급 땅에서)예배하고고 한다. 그러나 모세는 예배의 장소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서 예배해야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너희가 이 산에서 내게 예배하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곳(애굽)을 떠나야 한다고 바로의 타협안을 거절한다.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설명하실 때 이 백성은 제사로 나와 언약을 맺은 백성이다라고 하셨다. 제사(예배)는 이렇듯 하나님을 신앙하는데 대하여 절대적인 요소이다.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구약의 제사가 완성되었다고 그 뿌리를 유대교에 두고 있기에 비록 과거 피를 흘리는 제사를 드리지 않지만 제사의 정신을 그대로 승계하였다. 로마서 12장에 바울이 말 한 대로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영적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독교 예배는 구약의 제사처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핵심이다. 형식과 형태와 예배처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나 예배가 없는 기독교는 상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초대교회 시절부터 교회에 미친 박해를 피해서 흩어진 교회는 은밀한 장소에서 서로 모여 예배의 생명을 이어 왔다. 로마의 카타곰이나 터키의 데린구유, 갑바도기아 지역의 동굴교회 등은 기독교 신앙공동체가 예배를 얼마나 소중이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셨습니다(3:4; 6:9). 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 행위는 안식일의 거룩성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12:10). 그래서 예수님처럼 주일에도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주일성수입니다.

 

문자적이고 형식적인 규정에 치우쳐 생명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이는 바리새인의 자세와 다를 바 없습니다(12:14).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은 결코 용납될 수 없지만(10:25), 생명을 살리고 치유하기 위해 교회와 성도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위의 글은 한국기독공보에 실린 설교문 중 일부이다. 예배는 형식과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이 중요하며 그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생명존중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 설교는 주일예배를 꼭 예배당에서 드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틀린 주장이다. 성경의 구절을 자의적으로 인용한 것뿐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리스도의 육체적 죽음을 통해서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의 지성소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 안식일 논쟁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는 안식일 논쟁에서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예배를 폄하하거나 가볍게 여기신 적이 없다.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하나님의 인애를 실천하라는 뜻이다. 십일조 논쟁에서도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서슬퍼런 로마시대에 그리스도께서 그 사역을 유대인의 회당을 중심으로 하실 수 있었던 것이나 바울의 선교 역시 이방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안식일 논쟁의 본질을 왜곡하면 안 된다.

 

주일 성수는 신학적, 교리적 논쟁을 떠나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이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안식일에 예배를 폐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지금 코로나 19로 예배당 예배, 특히 주일예배를 폐하고 SNS 나 다른 것으로 대체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안식일 논쟁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주일 예배당 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 예배가 주일예배이기 때문에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예배가 다 중요하다. 그러나 주일 낮에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는 다른 예배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 이유는 주일예배이기 때문이다.

 

일예배의 중요성은 주일성수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 주일예배에 대한 논쟁도 유대인의 안식일 성수와 맞물려 오랜 동안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안식 후 첫 날’, 그리스도께서 부할 하신 날을 주의 날로 교회는 받아들였고 이 날을 다른 날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안식일에 예배하던 모든 관습이 주일로 옮겨져 주일성수가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으로 토착화되어 지금에 까지 이르고 있다.

 

예배문제는 총회장 개인이 결정할 것이 아니라 공론화 했어야 

 

주일예배가 정착되기까지 초기 기독교는 많은 희생과 노력과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주일예배가 정착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단의 지도자들이나 교단을 이끄는 총회장이 선진들의 순교와 희생을 통해서 얻어진 주일예배를 공론화 한 번 없이 자기 멋대로 주일에 현장예배를 폐하고 대신하여 다른 방법을 통해서 예배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감염병을 막는 길이며 이웃사랑이고 나라사랑이고, 예수의 정신이며 예수가 바라는 영적예배라고 떠드니 정신 바로 박힌 목사나 교인이라면 쉽게 그 말을 용납하겠는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기독교는 어느 종교나 집단보다 앞장서서 국난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나서야 한다. 그러나 어떤 위기 앞에서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기도)하는 일이다. 구약의 영적 지도자들은 모두 그렇게 했다.

 

심지어 우상을 숭배하던 자들도 자기들의 신에게 동일하게 예배하고 제사하였다. 구약은 기독교와 관계가 없는 책인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솔로몬의 성전봉헌 기도를 보라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시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옵소서”(왕상8:38절 이하)

 

주일성수는 거룩한 습관

 

다른 예배는 우리가 다른 방향으로 얼마든지 전환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주일예배를 드리는 이 거룩한 습관이 무너지면 오랜 기독교 신앙전통이 무너지게 되고 예배에 대한 교인들의 신앙과 관심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주일예배를 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정말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통일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가 같은 목소리로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우리가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 여러분은 양해하고 따르라는 것은 독선이다. 장로교회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김현정뉴스쇼에 출연한 총회장

 

예장통합 총회장 김태영 목사는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 자격으로 20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의 인터뷰에서 최근 수도권 몇몇 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한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너무 죄송하다” “교회도 사회 공동체 일원이고 목사도 시민의 한 사람이라며 “(코로나19) 온 나라가 지금 신경 쓰고 있는데 일부 교회는 우리는 6.25 때도 예배드렸다는 식으로 (주장하며) 이웃을 무시하고 예배를 강행하면 교회는 고립 된다고 본다면서 집단 예배가 계속되면 교회는 고립무원(고립되어 구원을 받을 데가 없음)’이 될 것 이라고 강조하였다.

 

김 공동대표회장은 이어 다른 것도 아니고 전염병이기 때문에 교인들과 주민들의 건강을 생각해야 된다“(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기 위해서 기도만 할 뿐 아니라 우리 행동으로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주일예배 대안으로 온라인 예배를 또 다시 제시했다. 과거에서는 기술부족으로 온라인 예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IT기술 발전으로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다만 교회 사정상 온라인 예배가 어려울 경우 대형 교회가 설이나 추석 명절 교인들에게 발송하는 예배문 발송 등으로 예배를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마저도 어려울 경우 기독교 방송을 통해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그는 “TV를 통해 예배 실황이 생중계 되고 있다당분간 (교인들에게) 영상 예배를 드리시라고 안내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서 다른 여러 교회 목사들도 영상 예배로 전환하는 것에 있어서는 크게 불만을 가진 이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그래서 대부분의 교회가 예배당 예배를 영상예배로 대신하고 있다.“(사회와) 교회가 경각심을 가지고 한마음이 되면 머지않아 (코로나19종식되리라 본다고 강조했다.

 

김태영목사는 생명처럼 느끼는 주일성수를 무너뜨린 사람 

 

김태영 목사의 인터뷰 내용을 대충 짐작은 했다. 왜냐하면 그는 정부의 공식적인 협조요청이 있기 전, 신천지가 감염의 매개지로 지목받기 시작할 무렵, 자진하여 주일성수를 반납하고 대체예배를 발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론화 과정 절차 한 번 없이 (예장 통합 총회장 김태영목사는 225, 산하 교회들이 향후 2주간 주일 예배를 드리지 말 것을 공식적으로 권고했다.

 

이렇게 해 놓고 선제적 조치운운하며 자신이 한 일을 스스로 자화자찬하였다. 김태영목사는 한국교회가 생명처럼 여기는 성수주일을 무너뜨린 사람이다. 이 뿐 아니다. CBS 와의 인터뷰 이틀 전인 18일 서울시청 인근 한 음식점에서 한교총 공동대표 2인과 KNCC 이홍정 총무와 청와대 관계자들과의 오찬 모임에서 정부의 종교집회 자제 등에 대해서 행정조치를 하지 말고 (기독교계에) 협조요청을 하라, 그러면 기꺼이 교계도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의 협조에 감사하는 한편 다음 달 초까지 공예배 등의 모임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이에 부응하여 한교총은 22일로 예정된 코로나19 사태를 위한 특별기도회도 모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대통령은 왜 기도와 협조를 요청하지 않는가?

 

필자는 이런 모임에 응한 김태영목사 등에 대해서 화가 난다. 왜 국가의 중요사를 일개관리에게 요청을 받아야 하는가? 현 정부나 서울시나 경기도 등 어느 지자체도 기독교 지도자들을 청하여 코로나19 질병 퇴치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한 사실이 없다. 모두 행정 권력을 내비치며 공공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위압적인 자세만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은 왜 이토록 중요한 국가위난의 상황에서 직접 나서서 교계지도자들에게 기도와 협조를 요청하지 않는 것인가?

 

교회의 능동적인 협조와 국가권력의 강제는 다르다

 

칼빈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세상의 질서를 위하여 두 가지 기관을 세우셨는데 하나는 교회요, 하나는 국가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로마서15장에 기록된 대로 세상의 질서와 권선징악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치리권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국가가 위난에 처할 때 교회는 앞장서서 위기 극복을 위해서 협조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근세사에 교회가 한국사회에 끼친 공로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교회의 능동적인 협조와 국가권력의 강제로 이루어지는 결과는 전혀 다르다.

 

교회는 정부의 허락을 받고 예배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장들이 언론을 등에 업고 교회 예배도 좌지우지하려는 오만을 보이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자유 민주사회에서 누가 교인들의 예배를 허용한다는 것인가? 기독교 신앙에서 기본권은 천부인권이다. 이 권리는 기독교인 스스로가 유보하거나 제한하는 것이지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들이나 정치권력이 교회를 이렇게 보도록 만든 것은 총회장이 자처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권력에 무릎끓은 교단

 

코로나 19 환자가 국내에서 발생하고 이 질병이 갖는 감염속도가 과거에 발생했던 감염병들 보다 무섭도록 빠르고 그 폐해가 심각함을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서 보도되기 시작할 때 교회는 무엇을 했느냐, 교단은 무엇을 했는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예배에 대한 견해는 조금씩 다를 수가 있다. 앞서 지적한대로 모두가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주일성수를 주장하며 예배당 예배를 드릴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극단적인 생각으로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예배당 예배의 소중함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예배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이다.

 

극단화 주장, 서로대립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 교단 내에서 이렇게 양 극단화 된 주장들이 서로 대립하게 만든 상황이다. 일반인들은 천주교는 일사불란하게 통일된 행동을 취하는데 기독교는 그렇게 못하느냐?” 하는 물음을 한다. 천주교와 기독교는 정치제도가 다르고 교회에 대한 신학적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수직적인 정치제도와 교권을 행사하는 감독교회와 개교회의 자유와 대의제도라는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는 두 교단이 동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인식이나 혹은 대처하는 방법까지 서로 다를 필요는 없다. 장로교회인 우리 통합 교단은 대의제도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코로나 19에 대한 교회의 합의된 입장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런 절차를 통해서 결의된 사항이라도 그래도 반대할 교회나 목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마련된 안에 대해서 교단은 사회를 향해서, 안으로는 모든 교회를 향해서 권위 있는 주장과 조치를 취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일반인이 의아해 하는 일관성이나 통일성의 문제도 자연히 이해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절차가 없이 총회장이나 총회장 주변 몇몇 사람들의 견해와 주장을 총회가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회가 4차에 걸쳐 발표한 코로나 19 대응지침 중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발표한 것은 네 번째 대응지침이 유일하다.

 

필자는 앞선 글에서 코로나 19대응지침을 총회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었는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난 후 총회는 부랴부랴 코로나대응을 위한 특위를 구성하고 또 코로나 19대응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고 기관, 단체 대표들을 청해서 의견을 개진하였다. 힘들게 쓴 글로 얻은 것이 겨우 간담회를 연 것이라고 생각하니 맥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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