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유산답사기(전북편), 책 출판

보편사속에서 구속사 찾아내는 작업

편집인 | 입력 : 2020/04/09 [10:30] | 조회수: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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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필자는 기독공보를 통해 2019.12.27부터 2020.4.6. 까지 쓴 '나의 신앙유산 답사기'에 대해서 책으로 출판하기로 했다. 다행히 크리스천 언론인협회장 고정양목사가 출판하기로 했다. 고정양목사는 이 책은 선교사적으로도 적극 필요하다며 인쇄출판을 담당하기로 했다.

 

 이책의 제목은 나의 신앙유산답사기(전북)이고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서 문

  2. 풍요의 땅, 호남

  3. 차별의 땅, 호남

  4. 유배자들의 땅, 호남

  5. 사색당파와 호남

  6. 전쟁과 서학

  7. 실학의 땅, 호남

  8. 실학과 서학

  9. 호남과 동학

10. 선교사들과 동학

11. 해외로 간 동학

12. 치유의 땅 호남(전북)

13. 신앙유산 답사 (전주, 군산, 김제)

 

내용은 호남은 원래는 풍요의 땅이었는데 삼국시대부터 전쟁에 패배함으로 차별지역으로 전락했고, 이러한 차별은 고려시대, 조선시대, 최근까지 이어져 왔지만 구한말 선교사들의 입국으로 인해 병원, 학교, 교회가 세워지면서 호남은 서서히 치유되어가고 있었고, 그러한 증거로서 호남(전북)의 각 지역을 답사하면서 하나님이 호남과 함께 했다는 것을 증거하고자 했다.

 

호남인의 절개와 정신, 호국정신, 반외세, 반독재 정신등을 언급하였고 이러한 정신은 결국 유배자들의 학문성, 기독교 선교사들의 실천성, 자체적인 호국 정신성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었다.  

 

책의 전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구한말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한민족의 보편 역사에 개입하였는지, 특히 호남지역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이라는 구속사를 끄집어내려고 하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글을 맺었다.

 

결론

 

나의신앙유산답사기(전북편)의 결론을 맺자면 신라삼국통일, 임진왜란, 병자호란, 갑신정변, 동학혁명은 모두 보편적 역사였다. 그러나 통일신라시 돌십자가가 들어오고, 임진란 때 세스베데스 신부가 동행하고, 병자호란 후에 천주실의와 서학이 전해지고, 갑신정변이 발생한 해에 미국의료선교사 알렌이 입국하고, 동학혁명이 발생할 때 미국 남장로교회 7인의 선발대가 호남에 도착한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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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보편역사 이면에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한민족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구속의 역사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외침과 전쟁 속에서도 한민족과 호남인들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보편사 이면에 대한민국을 사랑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선교사를 통한 구속의 역사가 가장 한이 많은 호남 땅에 병원, 학교, 교회를 통하여 치유하는 쪽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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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코로나19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의술을 자랑하게 된 것은 선교사들의 힘이 컸다. 선교사들이 일찍이 130년 전부터 이 땅에 오자마자 병원을 세우고, 양의사를 양산하게 되어 한국의 의료기술이 상당히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고자 한 선교사들의 열정 때문이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을 벗어나 G20개국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선교사들이 가르쳐준 교육의 힘 때문이었다. 서구 근대 교육의 힘 때문에 한국은 세계적인 IT 강국, 문화강국, 스포츠강국, 의료강국이 되었다.

 

따라서 선교사들이 호남에서 세운 예수병원, 신흥학교, 군산제일고등학교,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 전주 기전대학교, 전주 서문교회, 군산 구암교회 등을 통하여 오늘도 호남행전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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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의 호남의 목회자들과 병원, 교육 관계자들은 130년 전 선교사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계속 호남행전을 써가는 주역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신앙유산답사기는 전남편으로 이어갈 것이다.                


서문은 다음과 같다.  

 

 서 문

    

이 책은 1885년 서양의 기독교가 구한말에 이 땅에 들어와 전국에 걸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한민족의 파란만장한 역사에 하나님의 손길은 언제부터 호남에 개입하였는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추적해보고자 한다. 특히 역사의 보편사와 특정지역의 사건을 통하여 구속사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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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구한말까지 1,200년의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은 수많은 외세의 역사적 침략이 있었더라도 이 민족의 구원을 계획하셨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말기까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부족간의 싸움, 조선시대의 사색당파, 임진왜란, 병자호란, 동학농민항쟁,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 등에서도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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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느새 코로나 19 전염병을 가장 잘 극복하는 세계의 의학 일등국이 되어 온 세계가 한국의 의술을 부러워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이 땅에 근대 의학과 교육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과연 한국이 코로나 전염병에도 세계 최저의 사망률을 자랑할정도로 의학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 전주 예수병원은 매일 3,500여 명(1년에 100만명)의 환자가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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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세브란스병원은 매년 수 백만명이 찾는 수도권 최고의 일류병원이 되었다. 예수의 정신을 가진 선교사들이 심은 작은 의료 씨앗으로 한민족이 아프리카에까지 가서 병원을 세우게 되었다. 명성교회는 이디오피아에 아프리카 최고의 일류병원을 설립하여 매년 수 십만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모두 예수의 정신을 가진 선교사들이 심은 복음의 씨앗 때문이다.

 

로마가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이후 기독교를 공인한 후 신라지방(680년경)에 십자가가 들어오기까지 약 350년이 걸렸다. 돌 십자가가 들어온 이후 서구의 세스베데스 신부가 임진왜란(1592) 때 종군신부로 오면서 십자가를 들고 올 때까지 약 90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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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가 중국에서 기독교 교리서인 천주실의를 가져올 때까지 다시 40(1646년경)이 필요했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십자가와 복음을 들고 올 때까지 다시 240년이 필요했다. 한반도에 돌십자가가 들어온 이후 선교사들이 복음을 갖고 들어올 때까지 약 1,200여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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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예수의 그림자는 동학이후 예수의 실체로 확연히 드러났다. 특히 미국 남장로선교사들은 가슴에 분명한 예수의 정신과 신앙을 갖고 들어와 호남 땅을 교육과 치유와 영적인 강물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근대문명을 갖고 들어왔다. 특히 호남에 복음이 들어올 때는 동학혁명이 발생했을 때였다. 선교사들은 예수의 정신을 갖고서 피투성이가 된 호남을 버리지 않고 하나씩 복음과 사랑으로 교회와 학교, 병원을 통하여 가나안 땅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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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필자는 한 많았고 피눈물나는 호남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일찌감치 이민족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이 조금씩 비쳐지는 모습을 그리고자 하였다. 신학적으로 보편사속에 구속사의 흔적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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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의미에서 나의 신앙유산답사기라 함은 선교사들과 앞서간 신앙인들의 유산을 찾고,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손예수그리스도의 현현(顯顯)하심을 보여주는 선조들의 실체적인 신앙유산 찾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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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책은 한민족의 역사와 사건을 통하여 선교사와 신앙인들을 통한 예수의 행전을 추적하고자 한다. 특히 호남을 시작으로 하는 것은 호남은 피와 한의 땅으로서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예수행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것이다. 호남은 여전히 차별의 땅이지만 선교사들을 통하여 많은 부분들이 치유되었고 변한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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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역사는 끊임없이 대화한다. 선교사들이 1885년 한국에 오기 전의 역사와 그들이 온 1885년 이후의 역사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신앙인들의 숨결을 현재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다시 선교사들의 정신을 갖고 현재와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이 전해준 예수의 정신은 한민족에게 계속 이어졌다.

  

호남 땅 신안에 가면 문준경 전도사의 눈물의 삶이 있고, 여수에 가면 손양원목사의 사랑의 삶이 있고, 영광에 가면 신도들의 순교적 삶이 있다. 이들은 모두 선교사들이 전해준 예수의 행전에 동참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신앙의 숨결과 시공을 초월하는 예수의 복음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한반도의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은 이들의 숨결을 잇고 있다. 특히 호남의 많은 교회와 병원, 학교는 선교사들의 신앙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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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교단에서 100회 총회장을 지낸 채영남목사는 화해의 사도로서 그의 어머니는 문준경 전도사가 목회하던 교회의 신도였다. 채목사는 교단 총회장을 그만 둔 이후에도 노회의 갈등, 교회의 갈등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가서 화해 전도사로서 역할을 하면서 문준경전도사의 숨결을 잇고 있다. 한국대학생 선교회 CCC 총재를 지낸 김준곤목사의 엄청난 선교사역도 문준경 전도사의 영향을 받았다. 성령을 통하여 예수의 정신이 그의 후손들을 통하여 계속 이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호남출신 중 남원의 평범한 시골청년이 선교사들이 가져단 준 예수의 씨앗 때문에 현재 1만명 이상 되는 교회를 사역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의 부총회장(2020)이 되었고, 예장통합교단에서는 금산교회 이자익목사처럼 머슴의 아들이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수도권에서 5,000여명 이상 되는 대형교회를 이끌고 있다. 이자익의 신화는 계속 되고 있다.

 

전주에서도 초라한 신학생이 개척을 하여 2,000여명이상 되는 대형교회를 이루면서 통합교단의 부총회장(2020)이 되었다. 함열의 한 시골청년도 예수의 씨앗 때문에 예수병원의 이사장이 되어 병원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교단신문사의 사장이 되기도 했다. 선교사들이 가져단 준 예수의 능력은 위대해서 호남과 한국사회를 이끌고 가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이외에도 호남출신 중 예수를 가슴에 안은 한 정치인은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대통령에 되어서도 보복정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세운 신흥학교에서 공부한 사람이 현재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가 되었다. 이자익목사를 섬긴 조덕삼 장로의 아들은 최고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모두 선교사들이 전해준 예수의 정신 때문에 그들은 선교사들의 정신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호남땅에 예수의 씨앗이 선교사들을 통하여 뿌려지지 않았더라면 신화는 없었을 것이고, 근대문명은 뒤쳐지고, 반외세 반독재에 대한 투쟁은 발생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학교를 통하여 근대화의식과 권리, 주권에 대한 의식이 싹트게 되었고 병원을 통하여 전염병을 퇴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일찌기 호남은 동학혁명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저항의 문명이 발생했던 것은 근대교육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호남에서 선교사들의 행적과 선조들의 신앙유산을 통하여 예수의 행전을 찾아내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일 것이다. 나의 신앙유산답사기는 선교사들의 행적이 아니라 그들을 통한 예수의 행전을 답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80회 총회장을 지낸 정복량목사는 다음과 같이 추천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100회기 80회 총회장 정복량

 

전문가의 저서를 문외한이 추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필자는 지난 10년 동안 계간지 <전북교회 이야기>를 발행하며 많은 고충을 겪었습니다. 이 방면의 자료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사계의 전문가이신 황규학 목사님의 <나의 신앙유산 답사기(전북편)>를 접하고 보니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 기쁨은 귀중한 보화를 얻은 심정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섭리해 가시는지 성서를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구속사의 영역과 일반역사의 영역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가 필자에게는 큰 숙제였습니다. 그런데 황 목사님의 글에 나타난 역사관을 통하여 좋은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서의 역사와 일반역사가 그 방향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변화무쌍한 역사의 근저에는 알파에서 오메가를 향한 거대한 정신적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불의에서 공의로, 갈등에서 평화로 한 걸음씩 개선되어가는 역사의 과정에서 기독교 복음은 커다란 동력이 되었습니다. 황 목사님의 <나의 신앙유산답사기>는 이러한 진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로 인한 억압에 눌려 부르짖는 인류의 한을 푸는 열쇠는 재화나 무력이나 쾌락이 아닙니다. 맘몬의 허상에서 벗어나 생명을 살리는 사랑과 평화와 자유가 가장 바랍직한 열쇠입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희망적은 결론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가 되기에 기쁘게 추천합니다.

 

   

책은 4월 중반에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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