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장신대학생들, 장신대에 손해배상 청구 기자회견

편집인 | 입력 : 2020/05/15 [11:12] | 조회수: 130

동성애 무지개깃발로 인해 학교로 부터 징계를 당한 학생들이 법원으로 부터 징계 무효판결을 받고 동성애 옹호내지는 지지자들의 단체와 함께 '장신대학교 위법 징계등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기자회견'을 했다.   

 

  

 

 

 

 

 

 

 오세찬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희의 친구들은 졸업을 하고 목사가 되지만 저희는 학교도 교회도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내린 징계 때문이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척이 갈수록 심해지던 2018년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학교 공동체 안 퀴어들을 향한 작은 위로와 연대의 움직임이 그 이유였습니다. 빨, 주, 노, 초, 파, 보 각각 옷을 입고 예배를 드렸다는 이유로, 학교 당국은 수업 방해, 불법 집회 개최, 교수 지도 불응, 명예훼손의 죄목을 저희에게 부과했습니다.

 

장신대는 저희의 20대의 많은 시간을 보낸 곳입니다. 선생님이라 불렀던 분들이 사건 직후 저희에게 책임을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일삼던 한 언론의 기사가 그 이유였습니다. ‘이제 어떻게 책임질 거냐?’는 추궁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저희를 보호해주고 방패막이 되어줄 분들이 없었습니다.

 

학교는 이미 저희를 ‘총회 및 학교규칙 위반’자로 공표했으며 저희는 조사 대상자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이라 믿었기에, 학교에서 요구하는 절차와 단계를 밟아갔습니다. 하지만 학교 당국은 적합한 절차를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 저희는 학칙에 존재하지도 않는 이유로 고발되었고,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는 방어권을 충분히 갖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행동의 동기와 진심을 이야기하며, 교단 내에서 퀴어이슈를 정치적 목적으로 소비되고있는 모습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함과 동시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징계였고, 이 사실은 제가 직접 전달하지 않은 교회 담임 목사님 그리고 교계에 모두 알려졌습니다. 학교는 더 나아가 저희 개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신상정보 포함하여, 저희를 징계했다는 사실을 ‘동성애 문제 관련 입장 및 대·내외 대처 현황’이란 책자에 담아, 각 노회에 배포하려 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저희의 징계 사실 공문이 노회를 통해 저희 각 소속 교회로 전달되었습니다.

 

재심 신청은 단칼에 거부되었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교단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단을 떠나라’는 말을 듣게 된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인 소송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막달은 길에 내몰린 저희가 학교로 다시 돌아가 공부하기 위해, 신 앞에서 솔직하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였습니다. 저희가 받은 징계는 그 자체로 너무나 부당했기에 소송 이후 변화될 학교를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티며 결국 소송을 시작하였습니다. 소송이 진행되자, 학교는 회유와 협박을 시작했고, 공적, 사적인 자리 가리지 않고 저희에 대한 음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교계 목회자들과 학교 구성원들로부터 스승과 모교를 고소한 무뢰한, 돈을 목적으로 소란을 피우는 협잡꾼, 성소수자 이슈를 소비하는 사람들이란 시선을 받으며, 승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법원의 징계 무효 판결을 즉각 이행하지도 않았고, 복학신청 마지막 날까지도 복학을 받지 않아 저희를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다시 장신대의 구성원이 되어 수업에 참석하고 함께 예배하였지만, 그뿐이었습니다.

 

학교 당국은 ‘위반자’로 낙인 찍힌 저희의 명예 회복의 의무가 있었음에도 무관심했습니다. 오히려 현 신대원장은 동문들이 모인 페이스북에 ‘저희의 징계는 당연한 것이었다.’는 글을 쓰는 등 계속해서 저희의 명예를 훼손하였습니다. 또한 패소의 이유를 학교 교칙의 허술한 문구에 있다고 판단하였는지 규칙을 바꿔 학생에게 더욱 쉽게 징계를 줄 수 있게끔 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동성애 옹호’란 이유로 목사고시에서 불합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저 뿐만 아니라 저희 모두에게 닥칠 미래였습니다. 목사후보생으로서 공부하고 사역하던 저희는 미래가 불확실해졌고, 가족과의 관계가 망가졌고,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자책하며 교육 과정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극복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에게 돌려졌습니다. 저희에게 징계를 내린 전 신대원장은 ‘이렇게 될 줄 몰랐냐며, 다 각오 했어야지’라며 무책임하게 말을 했습니다.

 

저희는 소송에서 이겼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뇨. 더 나쁘게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학교 내의 교육권은 교계의 입김에 침해 받고 있으며, 힘 없고 잃을 것 없는 이들의 마지막 남은 처절한 양심은 짓밟히고 있습니다. 학교는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떠난 예수의 모습 없이, 남은 것을 지키기 위해 약한 존재를 희생양 삼고 있습니다. 동성애 옹호란 이유로 저희의 친구들이 교회 지원 면접에서, 신대원 추천 면접에서 불합격되고 있지만, 학교 당국은 제자이자 학생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는 다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자리에 섰습니다.

 

저희는 괴로운 기억을 보듬으며, 학생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밖으로 내친 학교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외칩니다. 이 자리는 저희의 아프고 아팠던 경험들로 일상을 축제로 만들고 있음을 알리는 자리이며, 죽음의 손을 잡고 생명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존재들을 초대하고 환대하는 자리입니다. 저희는 학교, 교계 내외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예수 정신으로 따로 또 같이 걸어가려 합니다. 예수 처럼 철저하게 약해짐으로 저희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학교 당국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받은 부당한 징계와 상처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에 힘써주십시오. 저희에 대한 명예회복에 성실히 임하십시오. 부당한 징계를 내린 책임자를 징계하십시오.  반동성애 입학서약서, 반동성애 처벌규정 등 시대착오적인 규정을 없애십시오.

 

교수님 더 이상 학생들의 교육권과 교수들의 교수권이 유린당하는 것을 묵과하지 말고 지식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양심에 비추어 행동하십시오. 교계 정치로부터 자유로이 신학함을 추구할 수 있는 안전한 교육 공동체를 회복하십시오.

 

재판부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종교의 특수성은 구조 안에서 개인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선 안됩니다. 아무 힘 없는 개인들의 양심의 자유를 무참히 짓밟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이것은 신앙과 교리의 문제가 아닌 명백히 교계 정치적 문제입니다. 저희가 정치의 희생양으로 남겨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저희가 잃어버린 건강과 학습권을 다시 회복하게 도와주십시오.

 

서총명은 다음과 같이 썼다 (페이스 북) 

 

“피고가 2018. 7. 27. 원고 OOO에게 한 유기정학 6개월 및 사회봉사 100시간, 지도교수 2회 이상 면담, 반성문제출의 징계처분과 원고 OOO, OOO, OOO에게 한 각 근신 및 사회봉사 100시간, 지도교수 2회 이상 면담, 반성문제출의 징계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작년 7월, 징계 무효 소송에서 승소했다.
승소해서 다행이지만 법정 안에서 판결을 기다리며 느꼈던 감정은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징계의 부당함이 판사의 결정에 좌우된다니…
여기서 지면 많은 것을 잃고, 이기면 본전이었다.

무지개, 정학, 소송
1년 넘게 진행되었던 사건의 끝은 건조했다.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재판부의 확인이었다. 나는 확인 받았다.
확인 받아서 기쁘고, 확인 받아야함에 슬펐다.

법정에서 나오자마자 복학 신청서를 제출하러 학교로 향했다.
정학 당하고 1년만에 가는 학교였다.
소송까지 하게 되었지만 학교는 내게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고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나는 학교로 돌아가야만 했다.
돌아간다는 것은 지난 1년간 빼앗겼던 일상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일시정지 되었던 삶을 다시 재생하는 버튼이었다.
여기서 내가 놓쳤던 것이 뭐냐면, 내 선택지에 되감기 버튼이 없었다는거다.
재생 버튼을 누르니 건조했던 '무효 확인'이 차갑게 현실화 되었다.

반성문 같은 입장문을 내야지 복학 승인이 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복학 승인을 마지막 날까지 결정 안해줘서 애타게 만들었고
학교에 들어가니 경건교육처 규정은 학생을 더 쉽게 징계할 수 있게 개정되었고
세찬이는 목사고시 합격이 취소되었고
교수는 학생이 쓰러진 상황에서 '너네가 자초한 일이니 견뎌라'라는 말을 했다.

법원의 확인이 내 일상을 회복 시키지 못했다.
학교는 건너 뛰기 버튼을 눌렀다.
징계무효 판결이 학교의 반성과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고, 법원의 판결을 거스르는 조치를 취하는 학교의 행정을 보며 그 속도와 정교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돌아가고 싶던 학교는 무엇이었을까?
건물도 그대로, 교수도 그대로, 학생도 그대로인데 학교가 낯설었다.
학교로 돌아왔는데,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 나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나는 일상이라 생각했던 그때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길로 휴학계를 제출했다.

여기까지가 작년 2학기 정리였고,
뭐 이게 중요한건 아니고 내일?? 아니 이제 오늘(5월 14일) 11시에 장신대
앞에서 '장신대학교 위법 징계 등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기자회견을 한다.

징계무효소송에 이어 손해배상소송까지 하게되었다.
손배소 결정은 쉽지 않았다.
내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고(물론 패소의 부담도 크다), 한동안 어쩌면 꽤 긴 시간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나는 어떤 피해를 입었지? 이걸 어떻게 증멸할 수 있지?'
매일 이 생각을 하니 진술서 작성부터 며칠간 잠을 못이뤘고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미련이 계속 나를 붙잡았다.

이렇게 힘든데 왜 해야하는거지??
나는 마주하고 싶다.
덮어버리고 싶지 않다.
학교를 흔드는 것이 아니다.
부당함을 바로 잡는 것이다.
과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부당한 징계로 인한 피해를 사과 받고 싶은 것이다.

'학교에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야겠다.'
'교수님 이자 목사님인 그들의 먼지쌓인 회개 버튼을 눌러야겠다.' 는 분노도 있고
'피해는 우리로 족하다. 일상을 잃는 상실감을 친구들이 겪게하고 싶지 않다.'는 애정도 있다.

그리고 가장 큰  것은 끝맺음이다.
하나의 사건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다.
이것은 상실한 일상과의 끝맺음이기도 하다.

물론 이 끝맺음이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건조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지만 선언 자체의 의미를 두고 싶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야함을...
아쉽지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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