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k dance vs. Jerk theology

서구의 틀을 토대로 세계의 신학으로

기독공보 | 입력 : 2017/06/24 [19:09] | 조회수: 813

Jerk dance 

 

2016년 세계 body rock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한국인 댄스그룹 ‘저스트 저크(Just Jerk)’가 미국TV 오디션프로그램 ‘아메리카 갓 탤런트’ 에 출연해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서구에서 들어온 힙합댄스를 한국적 무술과 춤으로 승화해서 세계가 놀랄만한 춤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Best dance 였다.  

 

댄스를 시작하기 전에  오디션 심사위원과 대화한 내용도 best 였다. "그룹의 이름이 무어냐"는 질문에 그룹의 한 멤버는 "한국에서 온 Just Jerk"라고 했다. "왜 마지막이냐"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군대 다녀온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이것이 우리가 한 그룹으로서 추는 마지막 큰 무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군입대는 조국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라고 말해 미국인 관객들의 열띤 환호를 받기도 했다. 다시 심사위원이 어떤 종류의 춤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당신들이 본 적 없는 춤을 보여주겠다”는 호언과 함께 동서양의 춤을 섞은 듯한 칼군무를 보여주었다. 

 

 

 

2016년의 춤은 다음과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p6filTvPb3U

 

이 춤으로 인해 이들은 한일문화교류로 일본에 초청을 받아 일본 열도를 놀라게 했다. 이들은 화랑도복을 입고 나와서 국위선양을 하였다. 

 

 

 

이처럼 이들은 서구의 춤을 받아들이면서 서구의 것과 우리의 문화를 잘 믹서해서 서구가 놀랄만한 것을 보여주었다. 네티즌은 Jerk가 동계올림픽 무대에 서기를 바란다고 했다.

 

안병무와 조용기

 

미국 도서관에 가면 신학부분에서 한국인이 영어로 쓴 두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안병무교수가 영어로 쓴 민중신학책이과 다른 하나는 조용기 목사가 쓴 4 차원의 세계이다. 한 명은 민중신학이라는 상황신학을 써서 한국신학을 세계에 알린 사람과 다른 한 명은 서구의 신학을 한국적 상황에 잘 믹서해서 실천신학으로 연결하여 세계 최대의 교회로 만든 사람이다. 한국의 신학을 세계에 알린 사람은 기독교장로교 한신대학교 교수 안병무이고, 한국의 교회를 세계에 알린 사람은 순복음교단의 조용기 목사 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상황은 어떠한가? 서구의 것을 한국적으로 이식해서 아이돌그룹은 새로운 한류를 만들어 내어 전 세계에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있는데 한국의 신학은 민중신학이후 이렇다 할 신학이 나오지 않고 있으며, 한국의 교회도 점점 무너져가고 있고 사회중심부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 한신대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으로 몰트만을 초청했다. 몰트만은 세계 최대의 학자로서 한국에 여러번 와서 강연을 하였다. 루터, 칼빈은 종교개혁을 시작한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고, 20세기에는 자유주의 물결에서 복음주의 물결로 인도한 칼바르트가 최고의 학자였고, 복음주의 교단에서는 벌콥, 바빙크, 반틸, 메이쳔등이 최고의 학자였다. 한국에서는 기장에서는 김재준, 통합은 이종성, 합동은 박형룡 박사가 조직신학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교회로서는 순복음의 조용기 목사, 장로교에서는 한경직 목사, 감리교에서는 김홍도, 김선도 목사, 침례교에서는 김장환 목사 등이 목회에 성공하였다. 부흥강사로서는 이성봉, 신현균, 이천석 목사 등이 활동을 하였다.

 

서구신학에의 종속

 

문제는 오늘날 신학이 서구신학만 이식하고 한국적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하여 서구종속신학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신학이라는 것은 루터나 칼빈, 칼바르트, 몰트만, 구티에레츠 처럼 그 나라의 혼과 정신, 문화, 상황을 담아서 그 나라의 것으로 만들어 그 나라 신학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사망한 이후 5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들의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방신학이 정치신학이었지만 남미의 정치적 상황을 잘 반영했다. 송천성 같은 이는 아시아 상황을 잘 반영해서 아시아신학이라는 새로운 신학의 장르를 형성했다. 

 

그러나 한국은 민중신학 이후 한국신학이 없다. 예장통합도 마찬가지 이다. 최근에 김명용교수가 온신학을 발표해서 예장통합신학을 대변하고자 했을 뿐 이다. 그러나  온신학은 이종성박사의 통전적 신학을 다른 말로 부른 것 뿐이고, 한국의 정서와 상황, 문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한국신학을 표방하는 출발점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문장목사가 아시아적 성서해석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였지만 한국적 성서해석을 추구하는데는 학문적 한계가 있었다. 조직신학적 토대가 너무 약한 나머지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다. 그는 영어는 잘했지만 신학적 내용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의 명성 만큼 책내용은 깊이가 없었고 일천하였다.  

 

미리 언급한 바 있지만 예장통합 교수들의 대부분은 독일신학, 미국 감리교신학, 천주교 신학, 초교파신학에서 공부를 하고 장로교신학으로 새롭게 태어나지 못한 채 서구의 신학만 이식하는데만 그쳤다. 그러다 보니 모방신학, 관행신학, 전통신학, 이식신학, 따라신학, 사대주의 신학, 종속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의 정서와 얼을 담은 창조적 신학이 실종한 것이다.

 

더군다나 세계에 내놓을만한 신학 하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학대학에 교수자리만 하나 맡으면 교단의 눈치보기 일쑤이고, 서구의 신학만 이식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한국의 상황을 반영한 창조적인 신앙고백 하나 없고, 영국의 신앙고백을 우리 것으로 채택해야 하는 창조적인 한국신학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다. 모두 독일과 미국, 영국의 상황만 반영한 신학을 들고와서 한국에 이식하느라고 안간 힘을 썼다. 독일의 신학이 한국신학이었고 미국과 영국의 신학이 한국의 정통신학이었다. 사대주의 신학을 정통신학으로 착각하였다. 그러다 보니 산 신학의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신학의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신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를 변혁하지 못하고 교회도 성장시키지 못한다면 그 신학은 죽은 것이다. 모두 죽은 신학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더 슬픈 것은 죽은 신학의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 산 신학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 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이제 신학자들이 깨어나서 죽은 서구신학에서 벗어나 사회성과 역사성, 현실성, 한국적 영성이 있는 산 신학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제 예장통합교단은 순교신학, 사랑신학, 불기둥신학, 삼박자신학, 부흥신학, 두레신학, 머슴신학, 기도원신학, 한국적 영성신학, 반독재신학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천주교나 감리교의 것이 아니라 나아가 독일신학이나 미국신학, 영국신학적 산물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산물로서 새로온 한국적 상황이 반영된 살아있는 신학을 만들 필요가 있다. 

 

루터, 칼빈, 쯔빙글리, 위글리프, 후즈, 칼바르트, 몰트만 신학은 원칙과 틀로서만 받아들이고 이러한 틀과 형식, 내용을 통하여 새로온 한국신학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으로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예장통합교단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으로서 한 일은 한국기독공보가 주도되어 종교개혁지에 여행하는 것 밖에 없다. 죽은 신학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예장통합교단의 죽은 신학의 사회

 

예장통합교단은 언제까지 칼빈과 칼바르트, 몰트만, 천주교영성, 감리교신학, 근본주의 신학, 이단정죄신학에 머물러 벗어나지 못할까? 지금 예장통합 교단의 총회와 신학교육부는 교수들이 신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교회도 성장시키지 못하는 죽은 형이상학의 신학을 강단에서 되뇌이고 있지 않은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설교학을 배운 사람이 설교를 하지 못하고, 교회성장학을 배웠는데 교회성장이 되지 못하고, 성서학을 배웠는데 성경공부를 인도하지 못하고, 예배학을 배웠는데 살아있는 예배를 주도하지 못하고, 기독교교육을 배웠는데 주일학교 학생들이 점점 떠나면 이러한 신학은 죽은 신학이 아닐까? 

 

한국적 정서와 얼, 상황과 동떨어진 이억만리 떨어진 서구의 신학만 이식해서 그러 것은 아닌지 교수들 신학에 대해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동도서기이다. 동양은 도를 추구하고 서구는 기술을 추구한다. 동양은 서구의 학문의 틀과 기술을 받아들여 거기에 동양의 도를 담아야 한다. 즉 서구의 틀에 한국적 혼과 정신, 얼, 도를 담아 동도서기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계를 울린 Just Jerk의 춤을 보자.

 

 

교회가 침체하고 신학교가 미달되는 것은 사회적 정황의 영향도 있지만 한국적 정신과 얼을 담지 못한 서구의 신학으로 이를 타개해 나가고 있지 못한다면 이는 죽은 신학의 사회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일단 총회는 직영신학대학교가 죽은 신학의 사회에 머물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다. 학위는 있는데 장로교정신과 얼이 빠져있다면 죽은 신학의 사회에 있는 것이다.

 

 Jerk theology

 

교단역사가 100년이 넘었는데도 교단신학 하나 없고, 나아가 한국을 대표할만한 신학하나 없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한국기독교를 신학교가 주도해 나가야 하는데 대형교회가 주도해 나가다 보니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위대한 한국신학이 한국교회를 끌고 나가야 하는데 신학교는 서구신학 이식하기에 바쁘고 교단눈치보기에 바쁘다. Just Jerk 는 한국의 춤을 세계에 알리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한국의 신학을 세계에 알리는 Jerk theology가 필요할 때가 아닐까? 

 

서구의 틀갖고서 한국교회의 내용을 담은 한국의 Jerk 신학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우리가 죽은 신학의 사회에 살고 있지 않고 산 신학의 사회에 살고 있다면 Jerk theology를 만들 필요가 있다.  총회와 신학교육부는 우리가 죽은 신학의 사회에 살고 있는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천주교, 감리교대학, 초교파신학대학, 진보신학대학에서 배운 신학이 장로교단에서 산신학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을까? 혹시 장로교의 정체성이 실종한 죽은 신학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가 주변으로 밀려나고, 신도들이 떠나고, 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개신교단에 통일교홍보논문이 판을 치고, 기독교가 연합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신학사상이나 내용이 아니라 설교한마디나 비본질적인 것을 갖고서 이단을 정죄하는 것은 '죽은 신학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죽은 신학의 사회에서 벗어나 우리의 신학을 세계에 알리는 그야말로 산 신학의 Jerk 신학은 만들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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