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영성을 선택한 통합교단 직영신학교

장신대와 호신대를 중심으로

기독공보 | 입력 : 2017/07/01 [13:05] | 조회수: 2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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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신학대학교

 

장신대의 슬로건은 칼빈의 모토인 '경건과 학문'이지만 학과목에서는 카톨릭 영성과 신학을 배운 학자들에 의해서 개신교영성보다 카톨릭의 영성이 가르쳐지고 있다. 교단직영신학대학교가 개신교영성보다 카톨릭영성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영성교수들은 카톨릭영성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신학대학 최광선교수는 카톨릭대학교의 저널지에 글을 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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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의 설립목적은 "장로회신조와 헌법에 기준하여 교회의 지도자와 교역자 양성을 위한 고등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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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신학대 

 

호신대의 교육의 이념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산하에서 국가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교단의 교육목적에 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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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교수들의 학문은 개신교적 경건이 아니라 천주교적 경건과 학문이 가르쳐지고 있었다. 교단신학은 장로교의 정체성을 확실히 한다고 되어 있다.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면서 다른 장로교회들과의 일치 운동은 물론, 다른 교회들과도 일치 연합하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정진해야 할 것이다."(21세기 신앙고백서)

 

먼저 장로회신학대학교 영성교수들의 연구업적을 통하여 교수들의 신학성을 보자. 모두 교단의 신학과 다른 신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단의 신학이 신학교에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신학이 펼쳐지고 있다. 교단의 신학은 장로교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우선 교수들의 연구논문을 보면 장로교신학보다 카톨릭 신학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연구논문은 예장통합교단의 정체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카톨릭의 영성과 신학이 주를 이룬다.

 

 A 교수

 

A 교수는 캐나다 낙스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하였지만 그의 논문은 중세의 토마스머튼의 신비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천주교 수사를 다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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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교수

 

S교수의 박사학위논문은 토마스아퀴나스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아퀴나스에 대한 것이 장신대에서 가르쳐지는 것이다. 물론 필요하지만 그의 논문은 대부분 카톨릭대학이나 일반대학에서 필요한 논문이지 직영신학교에서 필요한 논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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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교수의 책번역도 토마스아귀나스가 쓴 신학대전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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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장신대라는 직영신학대학원에서 주로 개신교 영성보다 천주교 영성과 신학이 일부 교수들에 의해서 가르쳐 장신대는 카톨릭영성을 선택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호신대학교 C 교수

 

호신대에도 C교수가 영성을 가르친다. C교수는 탁지일과 같은 카나다 카톨릭대학인 미카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다분히 카톨릭적이다.

 

개신교대학교 교수의 논문이 광주 카톨릭대학교의 논문에 실렸다. 그것도 2015년 교황이 발표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신학적 성찰 방법론에 따라 연구하는 것이다. 이는 카톨릭대학에 맞는 논문이기 때문에 카톨릭저널에 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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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카나다 카톨릭의 정체성을 띠고있는 미카엘 대학교 출신의 박사학위논문이 장로교단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것이 드러났다. 이미 상술했지만 탁지일교수의 논문도 장로교단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카톨릭의 정체성을 띠는 카톨릭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통합교단의 헌법과 신조에 일치하지 않는 논문을 쓴 것이다. 월급은 통합교단에서 받고 논문은 일반대학이나 카톨릭대학에 기고 한다.

 

교단의 헌법을 영어로 Book of order이라고 한다. 질서의 책이다. 교리의 질서, 정치의 질서, 권징의 질서, 예배의 질서를 규정한 것을 말한다. 통합교단 직영신학대의 교수들의 논문은 교리의 질서에 벗어난 것이다.

 

교황의 회칙에 대해서 쓴 논문은 장로교헌법의 질서에 벗어난다. 장로교에  벗어난 무질서한 학문을 교수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 카톨릭대학인 미카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통합교단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부산장신대 탁지일 교수와 호남신학대학교 최광선 교수이다. 한 명은 문선명을 홍보했고 다른 한 명은 천주교의 교황을 홍보했다. 교단 신학교육부는 캐나다 미카엘 대학 출신자들의 논문을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     

 

이와 같이 장신대와 호신대 교수들 중에 교단의 신학이 아니라 카톨릭 신학이 연구되거나 가르쳐지고 있다. 교단의 신학을 배제한 교수의 신학은 장로교의 영성과 신학이 아니라 천주교의 영성과 신학이었다. 칼빈의 영성과 신학이 아니라 카톨릭 수사들의 영성과  신학이었다.

 

이외에도 호신대의 H교수는 교단의 직영신학대학원을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탁지일교수처럼 샌브란시스코대학원과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외국에서만 공부를 했기 때문에 교단의 신학과 상관없는 폴틸리히와 나인홀드 니버만 연구하고 있다. 교단신학 정체성의 상실이다.

 

조직신학교수 H교수는 모두 교단신학과 상관없는 폴틸리히와 니이버에 대한 것을 연구했다. http://gstheo.htus.ac.kr/contents.php?mc=575 에 들어가면 교수들의 연구물도 볼 수 있다. 장로교헌법과 신조와 상관이 없는 논문이 대다수 이다.

 

물론 영성이나 신학 자체는 교파성을 초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로교에서 교단신학에 토대를 두지않고 천주교 영성과 신학이 여과 없이 가르쳐지는 것은 일단 고려해 보아야 한다. 

  

부산장신대  

 

상술한 바와 같이 교단의 천주교대학 출신 학자들은 카톨릭영성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외에도 직영신학대학교 교수들은  교단의 헌법과 신조와 상관없이 교역자를 양성하고 있었다. 

 

학교의 설립목적은 사문화 되었다. 이는 호신대나 장신대만도 아니라 부산장신대도 그랬다. 부산장신대 역시 교단 헌법의 정체성에서 벗어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교단의 신학이 아니라 교수들의 신학이 난무하다.  교육의 이념 조차가 교단 장로교의 정체성과 상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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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pu.ac.kr/Pages.aspx?id=34 에 들어가서 장로교단의 헌법과 신조에 맞는 학위논문이 얼마나 되는가 찾아가 보라. 대부분 교단신학의 정체성과 상관없는 초교파 대학에서나 가능한 논문쓴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탁교수는 이단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

 

한일장신대

 

한일장신대의 교육이념은 "장로회 신조와 헌법에 기준하여 한국 교회와 사회의 교역자 및 지도자 양성을 위한 고등학교을 실시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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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http://www.hanil.ac.kr/bbs/board.php?wr_table=uni400&sca=%EC%8B%A0%ED%95%99%EB%B6%80 에 들어가 교수들의 논문을 점검해보면 대부분 교수들의 논문이 장로회신조와 헌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단의 신학이 아니라 교수의 신학이다. 총장부터 민중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저서도 교단신학의 정체성과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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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교단신학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이다. 구춘서 교수가 박사학위를 받은 곳은 초혼제 정현경이 교수로 있는 진보신학대학  뉴욕신학대학교 였다. 이처럼 교수들의 신학이 비장로교단신학교에서 학위를 하다보니 교단헌법과 신조를 초월한 신학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교단신학보다 교수의 신학이 앞선 것이다.

 

특히 성서학이나 조직신학교수들의 논문을 보면 장로교헌법을 초월하여 하버드나 예일, 연세대와 같이 일반대학교에서나 가능한 논문을 쓰고 있다. 학교가 일반학문에 젖다보니 직영신학대학교의 정체성을 상실하여 교단이 요구하는 신학과 영성을 학교에서 찾기 어렵게 되고 교단이 요구하는 목회자양성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교수들의 신학과 교단의 신학이 너무 괴리되어 있다. 신학교의 커리큘럼을 수정하지 않으면 학교는 모두 망하게 된다. 

 

직영신학대학교의 모토는 경건과 학문인데 학문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현실적으로 교수들의 논문이 장로교단의 헌법과 신조에 일치하지 않는데, 학생들을 장로교신조와 헌법에 입각하여 교육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면 학교는 드라이하게 되어 학생들은 장로교의 정체성도 알지 못한 채 졸업을 하게 되고, 영성은 식고, 설교는 못하고, 성경공부는 관심이 없어지고, 대형교회 목사들의 설교만 흉내내게 되어 신학교는 점점 미달로 치닫게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영성이 출중하여 목회 잘하는 목회자를 양성하기 어렵게 된다. 

 

명성교회나 양곡교회 등은 서구의 신학과 상관없이, 오직 한국의 영성만을 갖고 기도하여 성공한 사례이다. 신학은 살아서 생동감있게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신학교의 서구신학은 한국인의 영성을 드라이하게 만든다. 서구의 교수신학이 한국의 교단신학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불행하게도 장신대 이하 교단의 직영신학대학교는 비장로교대학에서 학위받은 교수들로 인해서 장로회신조와 헌법에 기준하여 교단의 신학이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카톨릭과 감리교, 근본주의, 진보주의, 초교파주의, 자유주의 신학에 의해서 가르쳐지는 것이 드러났다. 

 

장로교의 정체성이 있는 교단신학에 의해서가 아니라 장로교의 정체성이 없는 교수신학에 의해서 가르쳐지고 있다.     

  

교수들은 아카데믹한 차원에서 얼마든지 번역하고 연구할 수 있지만 교단의 정체성에 맞게 교수들은 학문적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교단의 신학을 벗어나려면 직영신학대학교 밖에서 교편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길선주목사는 카톨릭영성을 배우지 않았어도 자신이 쌓은 한국적 도의 영성을 새벽기도를 만드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김삼환목사 역시 카톨릭영성을 공부하지 않았아도 새벽기도영성을 실천하였다.  

 

교수들은 한국적 장로교 영성이나 신학을 창출해야 했다. 서구의 종속신학, 서구 사대주의 신학, 서구 이식신학, 서구 앵무새 신학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개신교와 장로교단과 상관없는 토마스아퀴나스 신학이 장신대학에서 왜 필요한가?  부수적이고 종속적이고 주변적이어야 할 학문이 메인스트림 학문이 되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카톨릭의 정체성을 가진 미카엘 대학 출신 탁지일교수의 논문도 장로교의 정체성에 벗어난 글을 계속 쓴 것을 알 수 있다. 교회사 교수가 대부분 이단에 대해서 논문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교리사 교수가 써야 하는 것이고, 교단의 이단기준에 맞게 해야하는 것이지, 교수의 신학만 갖고서 이단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처럼 에장통합교단은 교단의 신학은 사라지고 교수들의 신학만 신학의 기준이  되어 교단과 학교에 남아있는 것이다. 교수들의 신학이 교단의 신학을 대변하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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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카톨릭대학에서 공부했거나 카톨릭신학자들에 대해서 연구한 사람들은 교단의 신학과는 다른 교수들의 신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수들의 연구는 교단의 신학과는 다른 교수들의 신학에 불과했다.

 

교단직영신학대학교 교수들은 교수의 신학이 아니라 교단의 신학 정체성을 갖고 교단신학에 부합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비단 카톨릭대학출신이나 카톨릭의 학문을 전공한 교수들만이 아니라 감리교대학출신 교수들의 논문도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다. 클레아몽, 드류, 에모리 대학 출신자들의 논문을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다.

 

그러면 대부분 교단신학의 정체성과 벗어난 교수들의 신학만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수들의 신학만 있다면 교단은 신학적 질서가 사라지고 장로교신학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껍데기는 장로교인데 내용은 천주교, 감리교, 초교파, 비개혁신학, 근본주의 등이다.  교수들의 신학은 교단신학에 일치해야 한다. 아니면 장로교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감리교출신, 초교파출신, 천주교출신 교수들의 연구논문을 조사하여 이들의 논문이 교단의 신학정체성과 연관이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예장통합교단은 21세기 신앙고백에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면서다른 장로교회들과의 일치 운동은 물론, 다른 교회들과도 일치 연합하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정진해야 할 것이다." 고 한 바 있다.

 

제6부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신앙고백서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공산 동구권의 붕괴와 구 소비엩 연방체제의 해체 이후, 인류 공동체는 급격한 지구화(globalization)의 과정 속에 말려들고 있으며, 남북한은 화해와 교류의 급류를 타고 있다. 시장경제 원리(신자유주의)의 지구화와 기술과학의 지구화, 특히 지식정보화와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혁명 및 인간복제를 포함한 생명공학의 발달과 사이버세계의 확산으로, 북반구와 남반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삶의 질에 있어서 괴리와 소외와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나아가서 우리는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고, 여기에 더하여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개인주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도적 신앙내용을 거부하는 상대주의와 다원주의, 그리고 사유화되고 감성적 경험을 중요시하는 다원화 종교와 같은 “후기 근대주의”(post-modernism)의 부정적인 가치들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상과 같은 세계사적 도전과 이 시대의 징조들을 바로 읽고, 우리의 신앙과 신학의 방향을 가늠해야 할 것이다. 선교 제2세기에 돌입하고 있으며, 한국 장로교 회가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하나를 지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면서 다른 장로교회들과의 일치 운동은 물론, 다른 교회들과도 일치 연합하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정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사도신경 이외에 이미 12신조(1907),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및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을 사용해 오고 있고, 1986년엔 우리 나름대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를 손수 만들었다. 그러나 새 술은 새 가죽 부대를 요구한다. 1997년 제82차 총회는 헌법(1. 교리와 신앙고백, 2. 정치, 3. 권징, 4. 예배와 예식)개정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이미 “정치”와 “권징”의 개정은 노회들의 수의과정을 거쳐 확정되었다. 그리고 헌법개정위원회는 “교리와 신앙고백” 및 “예배와 예식”의 개정을 위하여 각각 전문 위원들을 위촉하여 연구케 하였다. 하지만 교리와 신앙고백 분과 위원회는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에 앞서 그것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먼저 “21세기 한국장로교의 신앙과 신학의 방향”이라고 하는 문서를 내놓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과정을 거처서 나오게 된,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와, 예배를 위해서 6항목으로 축약된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는, 이미 우리가 사용해 오고 있는 기존의 신조와 신앙고백서들에 하나 더 첨가된 것이다.

 

현재 신학교육부는 지금까지  직무유기와 '자리차지하기'만을 해왔다. 교수들의 신학성향을 점검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각 신학대학교 총장들과 감리교대학 출신교수들의 연구논문이 장로교교단의 정체성과 부합하는지 알아본다.   

 

 

필자(황규학)는 서울대에서 종교학, 장로교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캐나다 맥매스터대학원에서 성서학(수학), 미국 낙스칼리지와 플로리다신학교(FCTS)에서 장로교단헌법, 한국 강원대법대에서 미국교회재산분쟁(Ph.D)을 전공했다. 교회개척은 캐나다, 미국, 핀란드에서 한 바 있다. 저서에 '교회법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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