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유산답사기 (전남편)

편집인 | 입력 : 2020/08/24 [17:31] | 조회수: 151

 

  © 편집인

  

필자는 나의 신앙유산답사기 전북편을 썼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하였고, 일부 사람들이 전남편을 언제 쓰냐고 해서 다시 펜을 들게 되었다.

 

 

 

전라남도의 지리적 위치

 

전라남도는 우리나라의 서남부에 위치한 도이다. 북으로는 노령산맥을 경계로 전라북도와 접하며 동으로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경상남도와 접해 있다. 경상도와 접해있는 곳이 그 유명한 화개장터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https://vibe.naver.com/today?playTrackItems=13111

 

  © 편집인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 구례군과 마주보고 있는 지역적 특성 덕분에 경상도와 전라도의 교류지점이 되었던 곳이다. 하동군이나 구례군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가면 나오며, 주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로 15. 하동군에 있지만, 하동읍내보다는 구례읍내와 좀 더 가깝다.

 

화개장터는 조영남의 노래로 유명해 진 곳으로 영남과 호남간 화합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장터이다. 실제로 이곳 상인들과 소비자들은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섞여 있으며 지역감정 없이 정답게 사투리를 나누는 곳으로 유명하다. 영호남의 차별이 없는 곳이다.

 

예를 들어 "아따 고구마가 좋은 놈이 나왔네잉, 요거시 얼마나 한데요?" 라고 전라도 소비자가 물어보면, "원래 10000원인데, 5000원만 주이소~" 라고 경상도 상인이 대답하는 곳. 실제로 관광지가 되어서 볼 것도 많고 영호남 화합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전라남도 서쪽은 서해안, 남쪽은 남해안으로서 풍요로운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이다. 전라도의 서쪽과 남쪽은 바다를 끼고 있으며대표적인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다. 바다한가운데 있는 전라남도의  신안군 홍도에서 여수시 돌산면에 이르는 지역 일대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호남은 아름다운 바다를 갖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해상국립공원

 

전라남도는 바다이외에 많은 강도 흐르고 있는 비옥한 옥토지역이다. 임진란 때 이순신장군이 횟가루를 뿌려 풍부한 쌀이 많은 것처럼 위장하여 왜구를 놀라게 했던 영산강은 전라도의 담양군 용면 용추봉(龍湫峯, 560m)에서 발원하여 광주광역시와 나주시 영암군 등지를 흐르면서 황룡강, 지석천 등을 합류하며 서해로 흘러든다

 

영산강은 일명 4대강 중 하나로 호남권의 대표적인 강이기도 하다. 강 이름은 나주시에 있는 포구마을인 영산포(榮山浦)에서 유래하였다.

 

사실 강 길이 자체는 섬진강이 영산강보다 훨씬 길지만 섬진강 유역이 산골인 데다 수량도 매우 적은 편이라 주로 영산강을 4대강으로 꼽는다.

  

 

  영산강

 

 

전라도의 동쪽에는 섬진강이 있다. 섬진강은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곡성군 오곡면 일대에서 보성강과 합류하여 흐르다가 구례군 간전면 운천리 일대부터 경상남도와 도 경계를 이루며 광양만으로 유입한다.

 

이외에 보성강은 동쪽의 고을을 발달시킨 중심 하천이다. 순천시와 해남 · 무안 · 영광군 등 해안에 위치한 시군에서는 인근산지에서 발원한 하천들이 바다로 흘러 유입한다. 이러한  많은 강덕분으로 호남은 기름진 땅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한반도의 가나안땅이었다. 전라도는 에덴동산에서 발원하는 강보다 더 많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섬진강

 

전라남도 지명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07(태종 7)8도제가 실시되면서 다른 지역은 지명이 대부분 바뀌었으나 전라도와 경상도는 지금까지 그 지명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행정 편의상 전라도를 좌 ·우도로 나누어 동부 산악지대는 좌도로, 서쪽의 평야지대는 우도로 일컬었다. 인조 때 전남도(全南道) · 광남도(光南道), 1728(영조 4)에 전광도(全光道)라고 하기도 하였으나 일시적이었다.

 

전라남도는 1896(고종 33) 전국이 13도로 개편되면서 이전의 전라도를 노령산맥을 기준으로 하여 남북으로 분리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는 현재의 광주광역시와 제주도가 전라남도 관할에 속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133군현은 122군으로 바뀌고, 이 과정에서 해안에 설치되었던 돌산군은 여수군에, 지도군은 신안군에 폐합되었다.

 

광복 이후 1949년에는 제주군이 도()로 승격하였고, 1986년에는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다. 1986년에는 금성시(錦城市)를 나주시(羅州市)로 변경하였다. 1895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가 실시되면서 행정지명으로서 '전라도'는 없어지게 되었다.

 

이 제도는 불과 12개월 만에 폐지되고, 189613도제가 실시되면서 이전의 전라도를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나누면서 지명이 생겨났다. 그러니까 오늘의 전남과 전북의 지명은 13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한과 차별의 지역, 전남

 

우리나라 서남부에 위치한 전라남도는 민주, 인권, 평화의 지역으로서 백제시데 이후로 차별된 지역으로서 한도 많고 탈도 많은 지역이다. 지금까지 경제적, 지역적 차별을 받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남이 없었다면 민족도, 국가도 없었을 것이다. 말씨도 구수하고 조금 시골스러운 모습이 없지않으나 이들이 정치적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도시로 진출하면서 중앙정치권의 한 가운데 서게 되었다.

 

일반 정치계도 그렇지만 종교계도 호남 사람들이 도시에 진출하여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총회(조경대목사 시절)는 서울에서 호남으로서 구성된 성직자등이 중심으로 형성된 교단이다.

  

호남인들이 대거 서울도 진출하면서 정치적인 중심의 한가운에 서게 되었고 지금은 집권세력으로서 많은 호남인들이 정치계에 입문한 것이다.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냑연의원과  현재 집권당 총리인 정세균의원 모두 호남출신이다. 호남인들은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진출하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전남은 전북과 달리 눈물과 피, 한의 땅이었다. 전북에 동학혁명이 있었다면 전남에는 삼별초 대항쟁, 임진란, 광주민주항쟁이 있었다. 이러한 항쟁이 쓸고간 자리는 그야말로 광야보다 더 한 초토화지역이 되었다. 남자들은 전쟁에서 죽고, 과부와 고아만 남고, 전염병이 창궐하고, 굶주림과 빈곤의 연속이고, 탐관오리들과 일제의 수탈과 착취만이 남았고, 조국은 거의 풍화등전의 상태에서, 아무런 희망이 없었던 지역이었다. 정신적, 물질적 초토화였다.  

  

고려시대이후부터 호남은 한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호남을 답사하면 호남평야만 덩그렇게 남아있고, 공장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경상도와 비교할 때 지역적으로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다. 광양과 여천지역이외에 중화학공업이 발전된 곳이 없을 정도이다. 대부분 2차 중화학 공업도시라기 보다는 1차 산업이 중심된 농경의 도시이다. 

 

 

 

 

그러다 보니 경상도에 비해 경제적 한도  서려있다.  이전의 역사도 한의 연속이며 최근까지도 전남지역은 한이 서려져 있었다.  때에 따라 제국주의에 희생되기도 하고, 좌우이념에 희생되기도 하고, 독재정권의 칼날에 희생되기도 하고,  정쟁에 희생되기도 하였다.   

    

광주에 가면 518 광주 민중항쟁과 일제 시대 광주학생 의거의 한이 있고, 완도에 가면 임진란이 한이 있고, 진도에 가면 삼별초이 한이 있고, 목포에 가면 일제로 부터 착취와 수탈의 한이 있고, 여수와 순천에 가면 좌우이념대립으로 인한 여수반란사건의 한이 있다. 

 

영광에 가면 좌우이념대립으로 인해 염산교회와 야월교회를 통한 기독교순교자의 한이 있고,

 

 

 



신안 증도에 가면 좌우 이념의 희생자인 문준경전도사의 순교의 한이 있고, 김대중대통령의 고향인 하위도에 가면 땅을 일제에 빼앗긴 농민들의 제국의 한이 있고,

 

 

  © 송삼용, 황규학


강진, 보길도를 가면 유배자들의 한이 있다.

 

 

  © 송삼용, 황규학


눈물과 피와 한의 중심지가 전라도이고, 그 중에서도 전남은 전북의 수십배에 달할 정도로 피와 눈물과 한으로 가득찬 지역이다.   

 

특히 전남지역에 들어온 해외 선교사들은 이러한 한을 어떻게 치유하였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심장한 일일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