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세습은 이단”이라는 이상학 목사의 궤변에 대하여

-공교회성의 회복이란 분리주의를 극복하고 사랑으로 포용하는 것-

정영호 | 입력 : 2020/09/14 [12:26] | 조회수: 156

  © 편집인


    

 

 

 

지난 9월 6일 주일예배에서 새문안교회 이상학 목사는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목회지 대물림은 “교회의 거룩성과 교회의 공교회성을 훼손하여서 교회의 능력을 밑으로부터 갉아 먹는 죄악된 시도”라고 말하면서, 세습은 공교회를 벗어난 이단이라는 도발적 주장을 펼쳤다.

 

이목사의 주장은 보편적 교회로서의 공교회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며, 교회와 교회 사이의 분리와 갈등을 조장하는 분리주의적인 매우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미국장로교(PCUSA)에서 목사고시를 치르고 안수를 받은 목사로서 미국장로교의 신앙고백의 전통과 에큐메니컬 관점에서 이상학 목사의 궤변의 오류와 위험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

 

‘공교회’란 무엇인가


우리는 주일예배에서 사도신경을 고백한다. 사도신경은 “나는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우리말로 번역된 이 구절을 라틴어와 그리스어 원문으로 이해하면,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회를 믿으며,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이다.

 

새로운 사도신경은 “거룩한 공회”를 “거룩한 공교회”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스 원어로 “카톨리켄 에클레시안”(καθολικὴν ἐκκλησίαν)이다. 영어로는 “the holy catholic church”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면 ‘공교회’란 무엇인가? ‘공교회’의 영어 표현은 ‘catholic church’이다. ‘catholic’이란 표현은 성경에 없다. 

 

catholic은 두 개의 그리스어 “kata”(throught out)와 “holos”(whole, complete) 두 단어의 합성어에서 파생된 ‘카톨리코스(καθολικός katholikos)에서 나온 말로서 ’카톨리코스‘는 ’throughtout all‘(모든 지역을 포괄하는)이라는 의미로 이 단어는 새미국표준성경(NASB) 사도행전 9장 31절, “So the church throughout all Judea and Galilee and Samaria”(“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서 발견된다. ‘카톨리코스’는 여기서 ‘전 지역’을 포괄하는 ‘전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보편성의 의미

 

또한 초기 교회의 교부들은 기독교 교회를 ‘catholic’이라 불렀다. 사도들은 이것을 일반적인(in general)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katholou’를 사용했다. 새미국표준성경(NASB)는 히브리서 12장 23절에서 이것을  “the general assembly”라고 번역했는데, 우리말로는 “장자들의 모임”(개역개정)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신약성경에서 ‘catholic’의 의미로 사용된 그리스어 카톨리코스(katholikos)는 일반적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포괄적 용어로서 일반적인 모든 것을 내포하는 것으로서 ‘보편적’(universal) 의미를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공교회는 지역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교회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이나 문화, 그리고 인종의 구분 없이 전 세계와 우주에 대해 개방되어 있는 ‘보편성’을 강조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역시 교회의 보편성(공교회)

 

장로교 신앙고백 전통의 중심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역시 교회의 보편성(공교회)에 대해 고백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1, 2)  

 

“1.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교회는 불가시적이다. 이 교회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있어서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모이는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부요, 그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시다(엡 1:10, 22,­23, 5:23, 27, 32, 골 1:18).”

 

“2. 가시적인 교회도 복음 아래 있는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교회이다. 이 교회는 율법시대와 같이 한 민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통하여 참 신앙을 고백하는(고전 1:2, 12:12­-13, 시 2:8, 계 7:9, 롬 15:9­-12)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자손들로 구성된다(고전 7:14, 행 2:39, 겔 16:20-­21, 롬 11:16, 창 3:15, 17:7, 갈 3:7, 9, 14, 롬4장). 이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요(마 13:47, 사 9:7), 하나님의 집이요, 권속이다(엡 2:19, 3:15, 마 12:50, 잠 29:18). 이곳을 떠나서는 구원의 정상적 가능성은 없다(행 2:47).”

 

보편적 교회의 속성


교회는 성령에 의해 창조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백성 혹은 선택된 백성의 언약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지역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와 우주의 영역을 포괄하는 우주적 공통체로서 보편적 교회(universal church)이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교회를 믿으며”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교회는 우주적 공동체로서의 보편적 교회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교회의 보편성은 기독교의 보편성을 전제로 하여 세워진 개념이다. 기독교는 보편적인 종교이다. 보편성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 강림 때부터다(행 2:11, 17, 21, 39; 10:11).

 

하나님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성령에 의해 창조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축복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따라 성령의 보편적 선물이 지역과 인종, 그리고 문화의 차별 없이 내려주신 보편적 축복이다. 그런 이유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와 사마리아의 경계를 넘어 땅 끝까지(행1:8), 그리고 열방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마28:19).

 

그러면 교회의 보편성은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

 

첫째, 지역의 보편성이다.

 

교회는 유대와 사마리아의 제한된 지역의 경계를 넘어 땅끝까지 포용하는 보편성을 지닌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온 천하와 만민에게 전파된다(막 16:15).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율법시대와 한 민족을 넘어 전 세계를 통해 참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보편성을 고백한다(25-1).

 

둘째, 시간의 영속성으로서의 보편성이다.

 

교회는 특정 시대에 국한되어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말씀하시면서 교회의 영원성을 강조하셨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역시 교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성의 관점에서 교회의 보편성을 고백한다(25-1).

 

셋째, 교회 구성원의 보편성이다.

 

교회는 앞서 강조했듯이 성령에 의해 창조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에 모인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하나님과 구원의 관계에서의 보편성이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에는 인종이나 재산이나 학벌이나 사회적 지위나 문화적 차별의 공간 없이 모두가 동일하게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보편적 공동체이다.

 

이런 보편성 안에는 차별이 없고 갈등이 없고 화해와 일치의 삶만이 존재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엡 2:14,15).

 

넷째, 보편적 교회는 하나이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엡2:20) 고 강조함으로써 교회가 하나되는 근거가 사도와 선지자들의 믿음의 전통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굳건한 기초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세상의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의 몸에 연결된 지체들이다. 그리고 세상의 교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을 이루는 에큐메니컬 공동체이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나누어지지 않는 한 교회도 나누어질 수 없으며, 교회의 보편성이 교회의 연합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칼빈은 보편성과 연합이 교회의 본질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헤르만 바빙크도 교회의 보편성을 교회의 공통체성에서 찾음으로 교회도 하나의 교회임을 강조했다.

 

개체 교회가 종파와 교단 그리고 총회와 노회 안에서 서로 연합하고 또한 그것을 넘어 서로 다른 교단과 총회의 차이를 넘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하는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보편적 교회로서 하나됨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교회를 믿으며”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 교회의 속성들에 가장 적합한 개체 교회가 되기 위해 그 사명에 헌신하며 연합과 일치를 위한 사역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체 교회가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것은 이러한 속성들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그것은 개체 교회의 목회 세습과 시스템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공교회성 회복이란 무엇인가


공교회성 회복이란 개체 교회가 보편적 교회의 본질과 의미를 되찾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목회적 선교적 노력을 다양하게 펼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공교회성을 회복할 수 있는가?

 

첫째, 개체 교회는 공교회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교회의 본질은 거룩성, 통일성, 사도성, 그리고 보편성이란 네 가지 특성을 지닌다. 여기서 보편성이 공교회성이다. 따라서 공교회성의 본질은 교회의 보편성이며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 공교회성의 회복이다.

 

교회의 보편성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네 가지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개체 교회는 지역공동체와 연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교회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품고 사명에 헌신해야 하며, 교회 공동체 구성원이 동일한 신앙고백의 토대 위에 굳게 설 수 있도록 양육하고 훈련해야 하며, 그리고 교회내 갈등과 분열의 극복을 위해 화해와 일치를 위해 헌신하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교회의 보편성 회복을 통한 공교회성의 본질의 회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교회의 공교회성 회복은 오직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의 머리가 되신다.”(25-6)라고 고백한다. 교회는 매 주일 예배에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해야 한다. 교회가 펼치는 모든 복음의 사역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존재하며 모든 사역은 그분의 이름으로 펼쳐져야 한다.

 

셋째, 교회는 어려운 개체 교회를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공교회성을 회복해야 한다.

 

칼빈은 교회의 형제애를 강조했다. 어려운 교회를 형제의 사랑으로 돕는 일이 공교회의 역할이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고린도 교회를 비롯해 여러 교회로부터 연보를 거두었다. 하나의 믿음 위에 세워진 보편적 교회로서 교회의 연합과 하나됨을 실천함으로서 공교회성을 실천하는 것이다.

 

오늘날 코로나 위기로 수많은 교회, 특히 미자립교회들이 무너지고 있다. 이런 가슴 아픈 현실을 바라보면서 교회는 형제 사랑의 마음으로 무너지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역을 펼쳐야 한다.

 

이것이 공교회성 회복을 위한 운동이다. 그러나 이런 비참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여러 교회들과 연합하여 구제 사역을 전개하기보다 다른 교회를 공격하고 교단 내 교회들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교회 연합과 일치의 공교회성에 해를 입히는 일이다.
 
넷째, 교회는 공교회성 회복을 위해 연합과 일치 그리고 화해를 위한 사역에 헌신해야 한다.

 

보편적 교회는 연합과 일치를, 그리고 화해를 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사역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이루셨다. 교회는 십자가 신앙으로 교회 안의 일치와 화해, 교회와 교회 사이의 연합과 화해, 그리고 노회와 교단 총회 안에서 연합과 일치를 위한 사역에 헌신해야 한다.

 

이런 사역에 교회가 소극적이거나 노회와 총회가 관심이 없이 지낸다면 보편적 교회로서의 공교회성 회복은 불가능하다. 노회는 개체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총회는 노회간 연합을 위해 노력하고, 모든 개체 교회와 노회는 총회의 의결을 거쳐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개인적 불만을 넘어 총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순종해야 한다.

 

총회의 의결이 개인의 의견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결정 사항이 특정 세력의 헤게모니에 의해 영향을 받음으로 총회의 연합을 방해하는 의도와 행태를 드러내는 분리주의는 공교회성 회복을 위해 반드시 배척해야만 한다.

 

우리는 기독교의 보편적 교회가 본질적 의미를 잃어버린 것은 바로 우리가 자신의 주장과 자신의 교회만 사랑했을 뿐, 함께 연합하여 선을 이루어야 이웃 교회와 타인을 포용하고 사랑하지 않고 이분법적으로 배제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분리주의의 노예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본질을 잊어 버렸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한다.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 공교회성 회복의 본질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상학 목사와 새문안 교회


새문안 교회는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의 어머니 교회이다. 새문안 교회는 한국교회의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이다. 어머니 교회는 과거의 아픔과 영광, 현재의 고난, 그리고 새로운 미래의 잉태를 위해 모든 것을 가슴에 품어야 한다. 어머니는 가족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헌신적으로 섬김의 삶을 산다.

 

어머니의 사랑과 섬김이 자녀의 미래를 만드는 힘이다. 어머니는 가족의 화목을 위해 모든 의견의 차이와 가족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조차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가슴 속에 품고 사신다. 모든 것이 가족의 평화를 위함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이것이 보편적 교회로서 공교회가 추구해아는 정신이며 가치이다.

 

예장통합 104회 총회는 명성교회의 목회 승계(pastoral succession)를 대의 민주주의의 절차와 투표로 승인했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총회의 의결은 개인적 견해의 차이를 떠나 총회 내적으로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권위를 존중 받아야 한다.

 

대의 민주주의는 절차의 공정과 의결의 순복이 생명이다. 104회 총회가 절차의 공정과 목회 승계 허용을 다수결로 결정했으면 그 결정에 조건 없이 순복하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의 정신과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상학 목사는 어머니 교회의 담임 목사이다.

 

이상학 목사의 견해는 어머니 교회의 견해를 대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학 목사는 모든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 명의 목회자로서 이상학이 아니라 어머니를 대리하는 목사로서 이상학이 되어야 한다.

 

명성교회의 목회 승계에 대한 총회의 결정에 개인 이상학 목사로서 불만이 있다거나 다른 의견이 있다면 총회 의결 직전에 발언권을 행사해서 자신의 의사를 밝혔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총회 의결에 반대 안건을 제시하고 다른 목회자들과 연대하여 조직적 대응을 하는 것은 연합을 해치는 분리주의 행태로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성도의 양심의 자유라는 장로교 헌법 정신과 절차의 공정과 민주적 의결에 따라 목회 승계를 합법적으로 은혜롭게 마친 명성교회의 결정에 대해 주일 설교에서 공개적으로 세습 운운하며 그것이 공교회성에 반하는 것으로서 이단이라는 비신학적 반교리적 주장을 서슴치 않고 성도들을 향해 발언하는 것은 분리주의를 조장하는 위험한 일이다.

 

명성교회는 보편적 교회로서 오직 주님만 섬기며 그리스도를 교회의 주인이자 머리로 모시며 지역교회의 연합을 넘어 에큐메니컬 운동의 중심에서 세계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어려운 미자립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면서 공교회성의 본질 회복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보편적 교회로서 헌신하는 명성교회의 목회 승계를 공교회성에 위반되는 이단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 교회의 담임목사도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이상학 목사는 자신의 발언이 내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비신학적 반교리적 발언이 새문안 교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어머니 교회의 담임목사도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이상학 목사는 자신이 새문안 교회의 담임 목사로서 한국교회의 어머니의 성숙함과 인격 그리고 영적 통찰력을 균형있게 지니고 있는지 십자가 사역으로 화해와 일치의 삶을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상학 목사는 아직 젊다. 그리고 새문안 교회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끌 훌륭한 지도자로서 역할이 기대되는 분이다. 어머니 교회의 담임 목사로서 총회의 결정에 순종하고 포스트 팬데믹(post-pandemic) 시대를 준비하여 한국교회의 새 시대를 이끌어 가는 좋은 리더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비판하지 말고, 자기 생각과 의지를 내려놓고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고 분리주의가 아니라 보편적 교회의 본질 회복을 위한 연합과 일치 그리고 화해를 향한 포용으로서의 사랑을 실천하는 좋은 리더가 되길 권면한다.

 

▶글쓴이는 기독교 시사평론가이자 크리스천 리더십 전문가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목회자가 되기 전에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정당의 부대변인과 당대표 공보특보를 역임했다. 4년 전 미국에서 귀국한 이후 TV조선과 연합뉴스TV에서 패널로 활동하고, 내외뉴스통신의 편집인겸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STEP으로 리드하라>, <팔복으로 리드하라>와 <비전 21 한국정치: 개혁·세대교체·통일>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학부(신과), 대학원(정외과, 석박사과정)을 졸업하고, 언두우드가 졸업한 미국 뉴브론스윅신학교에서 신학석사과정을 공부했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