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영성을 선택한 한일장신대

교수의 영성 vs. 교단의 영성

기독공보 | 입력 : 2017/07/08 [21:43] | 조회수: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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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백상훈교수의 영성


한일장신대 백상훈교수가 그림 영성으로 세월호 영성까지 승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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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영신학대학원에서 영성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대부분이 교단의 신학과 신앙고백이 반영된 장로교 영성과 상관없이 대부분 카톨릭이나 현대신학자의 영성을 가르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은 카톨릭으로부터 엑소도스한 것을 기념하는 것인데, 예장통합교단은 카톨릭으로 가고 있다. 반종교개혁 이다. 한국기독공보에 "신학교육 개혁, 다시 점검한다(6) 영성 교육"에 글을 쓴 백상훈 교수는 한일장신대 영성학 교수이다.  

 

그는 카톨릭대학인 포담대학에서 카톨릭영성을 전공했고, 캐나다로 건너가 낙스신학교에서 현대 실존주의 신학자 폴 틸리히의 신비주의 세례에 대해서 논문을 썼다. "폴 틸리히의 신비주의 신학과 영적인 신학함축에 대한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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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틸리히는 세계 제2차대전과 나찌즘으로부터 인간의 실존을 경험하고 실존주의 신학자가 된다. 틸리히의 실존적인 신학방법은 신학이 기본적으로 신에 대해서 말할 때 신자체가 아니라 우리와의 실존적인 관계속에서 그리스도의 의미를 진술한다는 점에서 그의 신학방법론은 실존적인 방법론이라 볼 수 있다.

 

폴 틸리히는 인간의 실존적인 자기소외와 이런 상황속에 포함되어 있는 물음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틸리히의 신학방법은 위로부터나 아래로부터의 방법이 아니라 위와 아래사이를 중재한 '사이'의 신학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즉 상관관계의 신학함을 추구하고 있다.

 

폴 틸리히는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의 아래로부터의 신학의 문제점과 20세기 정통주의신학의 위로부터의 신학의 문제점을 극복하여 제 3의 방법으로의 신학함으로 나아갔다. 틸리히는 실존적인 소외의 물음에서 시작해서 신학적인 대답의 궁극인 예수그리스도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의 묘사로 나아간다.

 

백교수는 캐나다 낙스칼리지에서 실존주의 신학자 폴 틸리히의 신비주의와 영성에 대해서 탐구했다. 토론토 대학에는 탁지일(미카엘, 부산장신), 최광선(미카엘, 호신), 최승기(낙스, 호신), 오방식(낙스, 장신), 백상훈(낙스, 한일장신) 등이 학위를 받았다.  탁지일은 통일교 홍보논문을 썼고 다른 사람들은 천주교 영성에 대해서 논문을 썼다.  

 

백교수의 논문내용은 '폴 틸리히의 기도신학에 관한 소고'에 잘 나타나 있다. 폴 틸리히의 신비주의는 카톨릭교회에 잘 보존된 성사적 수직적 요소라고 판단하여 폴 틸리히의 신비주의는 카톨릭교의 신비주의 였다.  

 

▲ 신학과 실천 41호      © 기독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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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백교수는 개신교 현재 실존주의 신학자를 연구했지만 폴 틸리히의 카톨릭적 영성을 연구한 것이다. 백교수는 이미 포담대학에서 카톨릭적 영성을 연구하였기 때문에 그의 영성은 카톨릭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기독공보에 쓴 글을 보면 그가 가르치는 영성과 목회, 영성의 이론과 실제는 모두 카톨릭대학교에서 배운 영성에 기반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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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교수가 최근에 '선교와 신학'(2017, 2, 367-398 p.) 에 기고한 "그림묵상의 영성학적인 이해"는 장로교영성이 아닌 카톨릭적인 영성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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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초록을 보면 그의 영성적 가르침이나 연구가 개신교적인지 카톨릭적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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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림 묵상의 교회사적인 배경을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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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교수는 성상과 기록된 복음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고 인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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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교수는 칼빈은 형상을 거부했지만 틸리히는 예술작품을 통한 하나님 체험의 가능성을 자신의 영성신학의 토대로 삼았다고 하면서 그림을 통한 영성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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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림을 통해 하나님의 실재체험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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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림묵상은 기독에 대한 영성학적인 이해까지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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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영성

 

결국 이 논문은 그림을 통한 세월호 영성으로 끝낸다. 그림 묵상은 일상생활속에서 영적 실천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그림영성이 장로교단의 영성이 될 수 있고, 이러한 학문이 학교에서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지 총회신학교육부(박웅섭목사)는 답을 해야 할 것이다. 개신교는 그림영성보다 말씀영성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관련 그림을 본다고 해서 학생들을 신앙적인 구원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결국 그림으로 시작된 영성은 세월호 영성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그림영성은 구원론적인 문제에 심각한 오류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위험한 이론일 수 있다. 구원론에 대한 문제는 말씀과 신앙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시각적인 그림이나 관상으로 대치할 수 없는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이 그림 영성인지 보자. 먼저 통합교단이 택하고 있는 사도신경을 보면 "믿습니다"로 시작해서 "믿습니다"라고 끝난다.  

 

B. 교단의 영성

 

1부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신앙은 보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요리문답을 보면 그림이 아니라 말씀이 구원에 이르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문 90. 말씀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효과있는 것이 되게 하려면 우리가 말씀을 어떻게 읽고 들어야 합니까?
답 말씀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효과있는 것이 되게 하려면 우리가 부지런함과 준비와 기도로써 거기에 열중하고 믿음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마음에 간직하며 우리 생활에서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잠 8:34, 눅 8:18, 벧전 2:1­2, 히 4:2) ­딤전 4:13, 시 119:18, 91, 사 66:2, 약 1:21­22 
 

교단헌법 교리편에 의하면 기도는 관상이 아니라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고,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그리스도이 이름으로 아뢰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문 98. 기도가 무엇입니까?
답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일입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자비를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뢰는 것입니다. ­요 6:38, 14:13­14, 16:23­24, 마 26:39­42, 요일 5:14, 눅 18:13, 빌 4:6, 마 21:22 

 

장로교단의 헌법 교리편은 기도에 대해 분명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영성신학교수들은 교단의 헌법을 따르지 않고, 즉 교단의 신학에 일치하지 않고 교수의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장로교의 기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장로교도에게 관상기도나 그림영성이 왜 필요한가?

 

문 100. 주님의 기도의 머리말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주님의 기도의 머리말, 곧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를 도울 수 있고, 또 언제나 도울 뜻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 거룩한 존경심과 확신을 가지고 가까이 가라는 것이며, 또 우리는 남들과 함께, 그리고 남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 57:15, 눅 11:13, 15:20, 10:12, 사 43:

문 101. 첫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첫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알게 하시는 데 방편으로 쓰시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와 또 남들에게 그를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하게 하시며, 또 모든 일을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처리하시라는 것입니다. ­롬 11:36, 마 5:16, 빌 2:11­20, 롬 11:33, 고후 3:5, 사 64:1­2, 시 67:1­3, 14
문 102. 둘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둘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사단의 왕국이 파괴되는 것과 은혜의 왕국이 발전되어 우리들과 또 남들이 그리로 인도되어 그 안에 있게 되는 것과 영광의 왕국이 하루속히 임하는 것입니다. ­ 시 68:1­2, 마 6:33, 슥 14:20, 계 22:20
문 103. 셋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셋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써 우리에게 능력과 기쁜 마음을 주셔서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는 것처럼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에 복종하도록 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 히 12:28, 시 119:35, 103:20­23, 단 7:10
문 104. 넷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하는 넷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 가운데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충분히 받고 그것들과 아울러 하나님의 축복을 즐기는 것입니다. ­ 잠 30:8­9, 10:22, 창 28:20­21, 딤전 4:4­5
문 105. 다섯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다섯째 간구에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거저 용서해 주시옵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은혜에 의해서 우리가 진심으로 남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기에 우리가 격려를 받아 이런 간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 눅 11:4, 마 18:35, 행 7:60, 롬 3:24­25
문 106. 여섯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여섯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유혹을 당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막아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시거나, 우리가 이미 유혹을 당할 때에는 우리를 붙들어 구출해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 마 26:41, 시 51:10­12, 살전 5:23, 고전 10:13
문 107. 주님의 기도의 맺는 말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주님의 기도의 맺는 말, 곧 “(대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기도의 용기를 얻을 것과 우리의 기도에 있어서 왕국과 능력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그를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을 아뢰며 그것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리라고 확신하면서 우리가 “아멘”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 신 32 : 43, 시 104 : 24, 대상 29 : 10-13, 롬 11 : 36, 고전 14 : 16, 계 22 : 20-21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381)


우리는 한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지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한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는다. 그분은 영원히 아버지로부터 나신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빛으로부터 오신 빛이시요, 참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피조된 것이 아니라 나셨기 때문에 아버지와 본질이 동일하십니다.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 인류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성육신 하셔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시사, 고난을 받으시며 장사지낸바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경대로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분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 가운데 재림하시고 그의 나라는 영원무궁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시고, 생명의 부여자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나오시고,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동일한 예배와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 성령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위한 하나의 세례만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장차 임할 세상에서의 영생을 바라봅니다. 본 신조는 서술형으로 번역되나 예배시에는 존칭어로 사용키로 하다.

 

 

백교수의 '폴 틸리히의 기도에 대한 소고'와 그림영성은 교단의 헌법의 정체성에서 벗어난다. 결국 틸리히의 영성은 세월호영성까지 가게 되었다. 이러한 그림영성이 가르쳐지고, 연구논문으로 발표된다면 장로교정체성에 벗어나는 것은 아닐까?

 

아이러니칼하게도 한일장신대학교 교육이념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직할 하에서 장로교신조와 헌법에 기준하여 한국교회와 사회의 요역자 및 지도자 양성을 위한 고등교육을 실시한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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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포담대학, 미카엘 대학, 토론토 대학(낙스)에서 연구한 학자들의 학문과 논문을 보았을 때 그들의 논문과 연구업적이 교단의 장로교정체성에 심각하게 벗어나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상태이다.

 

그림 영성은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이라는 실재와 조우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면 중개자 역할을 하는 예수 대신 그림이나 관상으로도 실재와 조우하는게 가능하게되어 심각한 구원론의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아이콘이 실재 하나님을 매개하는 예수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교단이 점점 예수대신 그림이라는 아이콘으로 실재와 만나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이교도의 방법은 아닐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직영 신학대학원에서 관상이나 아이콘을 매개로 하고 있는 이교도의 영성이 가르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천주교와 직제일치를 추구했던 한일장신대 이사장이었던김동엽목사의 선택도 우연이 아니었을까?  한일장신대는 교단의 영성보다 교수의 영성을 선택했던 것이다. 총회신학교육부는 직영 신학대학원에서 영성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영성신학  교수들의 강좌를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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