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목사, 90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젊어서는 넝마주의, 늙어서는 주석학자, 모세처럼 80부터 시작

편집인 | 입력 : 2021/02/27 [22:50] | 조회수: 144

 

금년들어 80세의 김진홍목사가 동두천 산골짜기에 들어온 지 10년 째이다. 그는 1971년에 청계천에서 활빈교회를 세웠다.

 

  1970년대의 청계천


김진홍목사는 당시 청계천에 들어가 넝마주이들과 함께 하면서 전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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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촌에는 빈민판자촌이 많이 있었다. 청계천 활빈교회도 판잣집이었다.

 

청계천 활빈교회

 

1970년대 중반 서울시는 청계천 판자촌 지역 철거를 시작하면서 김진홍목사는 철거민들을 데리고 농사짓고 세금도 내며 사람답게 살고자 활빈귀농개척단(活貧歸農開拓團)을 조직하여 경기도 화성군 소재의 남양만 간척지(南陽灣 干拓地)에 정착하였다. 남양만에 바다 갯벌을 막아 960만평의 농토가 조성되어 있었다. 

 

이곳에 15개 마을에 1200세대가 입주하게 되었다김목사는 여기에 7개의 개척교회를 세웠다. 남양만 주민회를 조직하고 교회가 센터가 되어 주민봉사와 지역사회를 통하여 두레선교운동을 실천하였다.

 

김목사는 공동체 마을을 세우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50세대를 한 마을에 입주하여 공동 소유하고, 공동 작업하고, 공동으로 누리는 마을을 건설하려 하였다. 그러나 중앙정보부가 개입하여 공동체 마을이 북한의 집단농장과 유사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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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만의 활빈교회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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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는 1997년 남양만 시대를 끝내고 1997.3.1 구리에서 구리활빈교회를 개척하였고 남양만 활빈교회는 1999년에 사임하였다. 구리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구리두레교회에서 2010년 교회를 떠 날때까지 약 3,000여명의 신도들이 집회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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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1년에 구리 두레교회 사임을 하고 동두천에 산 7만 5천평을 매입하여 동두천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받은 퇴직금으로 산 7만 5천여 평을 매입하여 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그는 동두천산 속에 금식 수도원을 세웠다. 구리 두레교회 이상의 신화를 쓰고 있었다.  

 

 두레수도원


주택도 30채 씩이나 지어 두레공동체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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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공동체는 양봉사업을 해서 매년 7억의 수입을 올리고 있고, 국제대안학교는 100 여명을 육박했고, 심지어 실내 체육관까지 확보했고, 남녀 기숙사까지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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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름에는 약초를 가꾸고 있는 농사꾼으로서 일을 하고 있다.

 

 

 

교회는 최근에 두레교회와 신광교회와 연합을 하여 신도들은 매 주일마다 600-700여명 참석을 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헌금은 보통 때보다 40% 인상 되어 코로나시대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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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목사는 요즈음은 지금부터 약 10년 동안(80-90세)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평신도를 위한 주석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은 모세처럼 80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의 사택 지하는 도서가 즐비하게 놓여있고, 주석을 쓸 준비를 마쳤다.

 

 

아침에 일어나면 냉수마찰을 하여 혈액순환을 하고, 산을 한바퀴 돌면서 체력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래야만 남은 인생 90세까지 10년 동안 창세기부터 게시록까지 50여권의 주석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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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주의 김진홍목사가 이제 평신도용 성서주석학자로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하고 있다. 김진홍목사는 모세처럼 자신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며 하나님나라 갈 때까지 은퇴는 없다고 했다. 

 

김진홍목사는 1971년 청계천 사역, 1974년부터는 유신정권반대로 감옥, 1970년대 중반에서 1996년까지는 남양만 사역, 1997년부터 2010년까지는 구리 사역, 2011년부터는 동두천 사역에 마지막 인생을 불태우고 있다. 그는 청계천 판자촌에서 동두천까지 늘 주변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

 

1941년생인 김진홍목사의 나이가 80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모세처럼 80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김진홍목사에게 90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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