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교회는 대부분 자생적 교회

대구와 인근지역에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교회 세워

편집인 | 입력 : 2021/03/02 [06:40] | 조회수: 65

호남선교를 한 사람들은 미국남장로교에서 파송한 전킨, 레이놀즈, 유진벨이나 오웬이었지만 영남선교의 효시는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한 윌리암 베어드와 그의 처남인 안의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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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드는 1862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출생하여 1885년 하노버 대학, 1888년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하노버 대학에서 1903년에 철학박사, 1913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어드는 1891년 한국에 들어와 1896년 경상도 지역을 순회하며 1896년 대구 선교지부를 개척하였다.

 

그는 대구를 개척하기 전에 1891년 부산진교회를 설립했고,  18982년에는 영선교회(초량교회)를 설립했고, 양산물금교회, 밀양 유천교회, 청도 화양교회, 영천 조곡교회(현 대창교회)를 세웠고, 이후 1896년 가족과 함께 대구로 진출하여 대구선교시대를 열었다.

 

그는 4월부터 대구에서 본격적인 전도활동을 벌였으나 11월에 서울선교지부 교육담당 고문으로 발령이 나서 대구선교를 처남 제임스 아담스(James E. Adams, 안의와) 에게 인계하고 대구를 떠났다. 그러므로 대구 선교위 주역은 제임스 아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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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스는 바로 대구로 부임하지 않고 1년동안 부산에서 한국어학 공부를 하고 1897년 11월 1일 대구에 부임했고, 12월에는 의사 존슨(Woodbridge Odlin Johnsonm 1869-1951, 장인차)부부가 도착했다, 2년 후 1899년 5월에 부루언(부해리) 선교사가 세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공식적으로 대구선교기지가 개설되었다. 

 

아담스(안의와) 선교사는 1897년 남문안교회(대구제일교회)를 창립하였다. 교인이 급증하여 1907년에는 800여명의 신자가 참석하였을 정도이다.  이처럼 신도들이 불어나자 인근지역으로 복음이 자연스럽게 전파되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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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복음의 열기가 자연스럽게 고령까지 퍼져나갔다. 고령은 합천 해인사에서 멀지 않은 경북의 가장 끝자락이다. 한 때 대가야가 번성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고령사람들은 신라가 아니라 가야의 후손들이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4국시대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가야는 서기 562년 신라 진흥왕의 공격으로 멸망당했지만 호남까지 영역이 퍼져있을 정도로 강력한 부족국가였다. 장성, 순천까지 대가야의 영역이었을 정도로 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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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통일신라보다 앞선 철기문와 고분문화가 발달했다.  온 산이 고분으로 뒤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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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화도 대구와 성주, 합천지방의 교인들이 이주하여 오거나 하여 자연스럽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특히 고령의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문제나 시장을 보러 대구에 가서 길거리에서 전도를 하는 선교사들이나 조사를 만나 복음을 듣게 되었고, "예수믿으면 복받는다"는 쪽복음지를 들고 친구나 일가친척등이 중심이 돼, 사랑방에서 자연스럽게 예배모임을 갖게 되면서 교회가 하나씩 설립되어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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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고령에는 선교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신앙모임을 설립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말씀을 통하여 복음진리를 깨달음으로 성례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교회가 설립된 이후에는 한국인 조사들이 예배를 담당하였고, 집사들을 임명하기도 하였다.

 

고령지역의 교회는 이처럼 신도들이 타지역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자생적으로 모임을 설립하였고, 미국선교사들 안희와, 부해리 등의 지원으로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고령지역에서 선교사들은 조사나 평신도 지도자들의 안내로 성례전을 집전하는 순회당회장의 역할을 하였다.

 

고령지역에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는 안화리 산골짜기의 안림교회이다. 1902년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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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교회는 1904년에 세워졌다(예장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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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읍교회는 1905년에 세워졌다(19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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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문명속에 100년전에 선교사들이 전해준 복음의 씨앗이 지금까지도 열매를 맺어 지역복음화의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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