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총장 서리 김운용교수, 도용총장 될 듯

연구윤리부정은 창작물에서만 가능, 남의 번역 거의 도용

편집인 | 입력 : 2021/06/06 [09:48] | 조회수: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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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투데이는  2021년 6월 1일자  '장신 총장 후보 김운용 교수, 연구윤리의혹' 으로 번역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김운용교수가 번역한  '거룩한 예배'와 황00목사의 초고를 비교하여 보았다.

 

277-278, 348, 349, 376, 396p를 비교하여 보았다.  김운용교수는 일부는 문장이 거의 동일하여 남의 초고를 그대로 표절했임이 드러났다.  

 

김운용교수의 번역은 검은색, H목사의 번역은 파란색으로 표현했고, 동일한 부분은 빨간색으로 표현했다.

   

277-278, 348, 349는 일부 문장이 동일하게 나타났고, 376, 380, 388, 396은 거의 동일함이 드러났다. 연구부정은 창작물에 대한 것이지만 남의 번역을 그대로 도용한 것은 학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예배학 교수로서 초고자에게 말도하지 않고 그대로 갖다가 쓴 것은 번역도용이다. 우연히 문장이 동일하게 같을 수는 없다. 동일한 영문을 번역할 때 사람에 따라 달리 나타나지만 동일하게 나타날 수는 없다.  

 

다음은 가스펠투데이가 거론한 부분을 갖고 비교하여 보았다. 이는 연구부정은 아니지만 학자로서 초고자에게 말도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표절한 것은 일종의 번역도용이다.    

 

 

A. 277-27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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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교수

모든 신학의 역사는 다양한 전통 가운데서 그 공간의 배치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중앙에 돌로 된 제단을 놓는 것은 견고한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성례전을 통한 중재하심을 예배의 중심에 둔다는 의미이며, 정교하게 준비된 설교단을 중심으로 강단 배치를 하는 것은 흔히 대부분의 개신교 예배의 특징인 설교가 예배의 중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예배당 입구나 그 근처에 있는 물을 담은 세례반을 설치하는 것은 세례신학과 물이라는 근본적인 상징의 중요성을 증거하는 것이며, 종종 그것을 감추거나, 심지어 설치조차 하지 않은 것은 그 공동체의 신학적 자기이해에 있어서 세례의 중요성이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함을 대하고 있다.

 

H목사

 

모든 신학의 역사들은 다양한 전통들안에서 공간이 배치되어 있는 방식안에서 독특하게 인식되고 있다. 정중앙에 홀로된 제단을 늘어놓은 것은 하나님을 성례전적으로 숙고하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설교단을 중심으로 배치하는 것은 흔히 많은 개신교의 예식의 특징인 설교가 예배의 중심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예배당의 입구나 그 근처에 흐르는 물을 담은 세례반을 실시하는 것은 세례신학이나 물이라는 근본적인 상징의 중요성을 증거하며 그것을 감추거나 심지어 설치하지 않는 것은 그 공동체의 신학적 자기 이해에 있어서 세례의  중요성이 그리 역할을 발휘하지 못함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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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교수

 

소리와 침묵


세 번째 상징언어는 예배행위의 음성적 형태와 관련된다. 우리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들을 들을 뿐만 아니라 정렬된 소리(ordered sound)로 예배 언어(spituraical utterance)를 이해한다. 요약하면 예배는 본질적으로 음악적 (musical)이다. 음악은 인간 언어의 확대된 형태이다. 그래서 예배 공동체는 예배 가운데서 말하고 읽는 부분도 보통은 음악과 연관된 리듬, 가락, 세기, 음조 등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H 목사

 

소리와 침묵(Sdund and Silence)


세 번째 상징적 언어는 예배적 행위의 음성적 형태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단지 단어들의 의미를 들을 뿐만 아니라, 예배적 언어를 정렬된 소리(ordered sound)로서 이해하고 있다. 간단히 말한다면, 예배는 본질적으로 음악적이다. 음악은 인간의 말의 연장이기에 예배 가운데 말해지고, 읽혀지는 부분들도 예배적 공동체들에게는 보통 음악과 밀접하게 연관된 리듬이나 가락, 세기, 음조 등과 같은 특성들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 지고 있다.

 

B.34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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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교수

기독교 예배는 언제나 일련의 사용 가능한 문화적 언어를 사용하여 특정 문화 가운데서 말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발견되는 진리에 대한 주장은 그러한 문화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음악, 언어, 상징, 의식, 몸짓과 같은 모든 의사소통의 수단을 공유하고 있을지라도 세상은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의 이유와 목적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H 목사

 

기독교의 예배는 언제나 일련의 사용 가능한 문화적 언어들을 이용하여, 그 특수한 문화 속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발견되는 진리적 주장들은 결코 그러한 문화에 얽매여 있지는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음악, 언어, 상징, 의식, 그리고 몸짓과 같은 모든 의사소통의 수단들을 공유하고 있을 지라도 세상은 교회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이유와 목적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349 번역에서는 일부만 동일한 문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C. 3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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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교수

 

이것은 시대 정신과 결합된 교회는 결국 다음 세대에서 과부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윌리엄 잉(William Inge)의 주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우리의 공적 예배는 문화적 언어를 수용하면서도 시대 정신에 사로잡혀 가는 것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H 목사


이러한 내용은 시대의 정신과 결합된 교회는 결국 다음 세대에서 과부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윌리엄 인지(William Inge)의 경고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공적인 예배(public whorship)는 문화적 언어를 수용하면서도 시대 정신에 사로잡혀 가는 것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376p 에서 김운용교수는 황(H)목사의 초고와 거의 같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번역초고를 그대로 가져가 썼음을 알 수 있다. 파란색의 글자만 약간 다르다.

 

D. 3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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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교수

 

성만찬 시작기도' (proper preface)라는 것은 성찬 기도문의 서두 부분에서 짧게 삽입된 부분으로서 교회력의 특정 축일이나 절기에 걸맞은 특별한 신학적 주제를 강조하게 된다.

 

[공동기도서]에서는 네 가지 기도문 중에서 두 가지(즉, 전문 A와 B)가 시작기도를 수용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C와 D는 성만찬 기도의 또 다른 역사적 유형에 속하였기에 그 자체로서 완전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성찬 기도문의 두 가지 유형 모두가 거의 모든 20세기 예배 회복 운동의 영향으로 형성된 개신교 예배 가운데서 발견되고 있다.


H목사

 

“가변적 시작 기도" (proper preface)라는 것은 성찬 기도문의 서두 부분에 짧게 삽입된 부분으로서 교회력의 특정한 축일이나 절기에 걸맞은 특별한 신학적 주제를 강조하게 된다.

 

[공동 기도서]에서는 4 가지 기도문들 중에서 두 가지(즉, 전문 A와 B)가 시작 기도를 수용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C와 D는 성찬 기도의 또 다른 역사적 유형에 속하였기에, 그 자체로서 완전한 구조(through composed)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성찬 기도문의 두 가지 유형 모두가 거의 모든 20세기의 예배 회복 운동의 영향으로 형성된 개신교 예배들 가운데서 발견되고 있다.

 

E.3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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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김운용교수는 거의 도용을 하였다.


K 교수


먼저 3년 주기 가운데 첫 번째 해 (year A)에는 이사야 11장의 예언의 말씀이 구약 말씀으로, 그리고 마태복음 3장의 세례 요한에 관한 기사가 신약의 본문으로 제시되었다. 두 번째 해 (year B)를 위해서는 이사야 40장과 세력 요한이 등장하는 마가복음 1장이, 마지막 세 번째 해 (year C)는 바룩서 5장이나 말라기 3장의 예언이 그리고 신약으로는 누가복음 3-16에서의 요한에 대한 기사가 선택되었다. 여기에서 예언자들이 던지는 경고에 주목하게 된다면 우리는 결국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세례 요한의 경고의 말씀에 의해 준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H 목사

 

먼저, 3년 주기 가운데 첫 번째 해(year A)에는 이사야 11장의 예언이 구약의 말씀으로, 그리고 마태복음3장의 세례 요한에 관한 기사가 신약의 본문으로 제시되었다. 두 번째 해(year B)를 위해서는, 이사야 40장과 세례 요한이 등장하는 마가복음 1장이,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해(year C)는, 바룩서 5장이나 말라기 3장의 예언이, 그리고 신약으로는 누가복음 3장 1-6절에서의 요한에 대한 기사가 선택되었다. 여기에서 선지자들이 던지는 경고들에 주목하게된다면,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들에 의해 철저히 예비 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F. 38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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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교수

 

 

 

웨슬리가 1744년에 쓴 이곡은 선지자들이 오랜 대망과 이중적 도래의 역설을 담아내고 있다. "아이로 나셨으나 이제 왕이 되실....." 이런 가사에서도 역시 마라나타의 종말론적 외침이 강하게 울려나고있다.

 

H 목사

 

웨슬리가 1744년에 쓴 이곡은 선지자들이 오랜 대망과 이중적 도래의 역설을 담아내고 있다. "아이로 나셨으나 이제 왕이 되실....." 이런 가사에서도 역시 마라나타의 종말론적 외침이 강하게 울려나고있다. 

 

G.388p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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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교수

12) 여기에서 내가 Jurgen Moltmann의 연구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영향을 받은 작품은 그의 The Church in the Power of the Sprit (San Francisco: Harper/ Collins, 1991)이다. 특히 189-96과 261-74를 주목하여 보라. "메시아의 향연으로 이해된다면, 기독교의 예배를 통한 섬김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그안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이로써 모인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역사를 피조물의 구원을 위해 죽음으로 그가 자신을 내어주심을 피조물들의 미래를 위해 하나님의 삶 안에서 그가 영화롭게 되심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메시아적 잔치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며, 그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261).

 

H목사


12) 여기에서 내가 위르겐 몰트만의 연구에 빚을 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영향을 받은 작품은 그의 The Church in the Power of the Spirit (San Francisco: Harper/ Collins,1991)이다. 특히 189-96쪽과 261-74쪽을 주목하여 보라. “메시아의 향연으로 이해된다면 기독교 예배를 통한 섬김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그 안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이로써 모인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역사를 피조물의 구원을 위해 죽음으로 그가 자신을 내주심을, 피조물의 미래를 위해 하나님의 삶 안에서 그가 영화롭게 되심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메시아의 잔치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며 그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61).

 

G. 396p

 

여기서도 김운용교수는 거의 도용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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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교수

 

“오직 성령님께서 그 후미진 곳에 거하시기에 세상은 따뜻한 가슴과 빛나는 날개로 덮일 수 있나이다." 신실하게 거행되는 종말론적 예술 안에서, 그리고 모든 시간과 장소, 문화 가운데서 사람들은 일찍이 귀로도 듣지 못했던 것을 말씀하시는 그것을 들으며,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을 나타내시는 그 일을 보게 된다. 이러한 보고 들음은 우리의 기도하는 것이 결국 정의와 자비의 수단이 되어 갈 때 신실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의 선취는 인간의 역사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끊임없이 자라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미래를 견고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맛보고, 보고, 행하고, 기도할 것을 오늘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다.

 

H 목사

 

“오직 성령께서 그 후미진 곳에 거하시기에, 세상은 따뜻한 가슴과 아! 빛나는 날개로 덮여질 수 있다.” 신실하게 거행되는 종말론적 예술 안에서, 그리고 모든 시간과 장소와 문화 가운데서, 인간의 귀는 일찍이 귀로도 듣지 못했던 것을 들으며, 또한 인간의 눈은 일찍이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고 들음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결국 정의와 자비의 수단이 되어갈 때, 하나님에 전적으로 신실한 것이 되어 갈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의 선취는 인간의 역사 안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끊임없이 자라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미래이기에, 우리가 그것을 끊임 없이 보아 맛보고, 끊임 없이 행하고 기도할 것을 오늘도 요청하고 있다.

 

 H. 결론과 평가

 

김운용교수는 초고자의 번역을 각주부터 거의 도용한 것이 드러났다. 연구부정은 아니지만 연구윤리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이다. 적어도 초고자에게 인용을 한다고 말을 했어야 했거나 공번역을 해야 했다. 독립적으로 번역을 하려면 남의 것을 도용하지 말아야 했다. 교수로서 비윤리적인 것이다. 

 

더군다나 여러개의 문장을 그대로 표절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번역이라 인용을 할 수는 없지만 공동번역이 아닌 이상 초고자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이 번역한 것처럼 독립적으로 번역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립적으로 번역하려면 남의 것을 도용하지 말아야 했다.  

 

총회 총대들은 장신대 총장으로서 남의 번역본을 그대로 도용한 것은 총장후보로서 적격하지 않기 때문에 임성빈 총장에 이어 인준을 하지 말아야 한다. 연구윤리는 5년 이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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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5년이 넘었어도 남의 번역을 그래도 도용한 사람에게 총장을 맡길 수는 없다. 학자로서 양심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교단헌법 1조 양심의 자유를 위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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