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호교수의 유신론적 진화론은 성경적인가?

유신진화론은 유신론과 무신 진화론의 양립이 가능한 것처럼 사람들을 기만하는 주장

이정환 | 입력 : 2021/06/08 [08:50] | 조회수: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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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현대과학에 근거하는 세계관이 주류 사회의 가치관과 윤리관의 기초가 되면서, 믿음을 강요하는 전통적인 종교에서 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신에 실망하고, 종교체제의 이분법적이고 차별적인 언어에 지치고 식상한 현대인들에게 과학이 일상화되고 급속도로 발전하므로 과학에 기초한 무신론이 훨씬 더 설득력과 효력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초월적인 유신론 사상은 현대인들에게 긍정적인 믿음을 주기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고 신자들까지 교회에 등을 돌리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보편화되면서 유신론이 설 자리가 점점 협소해지자 일부 기독교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교회를 살리기 위해 과학과 타협하는 유신진화론을 만들어 냈다.

 

정확히 말해서, 유신진화론은 신학도 아니고 과학도 아닌 인본주의에 기초한 탈 교회 화, 탈 기독교 화를 방지하고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을 교회 안에 붙잡아 두려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과학과 종교의 타협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은 유신론적 진화론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얼핏 들어보면 과학과 종교가 조화를 이룬듯하지만 사실상 대단히 혼란스럽고 모순투성이로 과학과 종교의 타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비상식적인 주장은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임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무신론을 근거로 하는 것으로 유신진화론이라는 용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것임에도 마치 유신론과 무신 진화론의 양립이 가능한 것처럼 사람들을 기만하는 주장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기독교 신앙에 무신론과 유신론이 공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필자는 무신론에 근거한 진화론이나 우연과 가설에 기초한 진화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더구나 진화론을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반대한다.

 

우주만물은 지으신 이가 있고 그가 지으신 만물을 친히 주관, 운행하시고 관리하시며 자신의 선하신 뜻대로 이끌어 가신다는 성서의 가르침이 훨씬 수용하기 쉬울 뿐 아니라 결국 믿음이라는 눈을 통해서만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히브리서11:3)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진화론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그리고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성서의 창조론만을 주장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로 인하여 진화론과 성서의 가르침을 적당히 타협한 그릇된 신학사조가 등장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 본질을 훼손하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그릇된 신학사조라고 부른 이 주장이 바로 유신론적 진화론이다. 마디로 유신진화론은 변화된 현실에 대한 신앙과 사이비 과학과의 타협의 산물이다.

 

중세 기독교 종교개혁은 기독교 내에서 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반의 영향을 끼치면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인문학의 발전이다. 인문학의 발전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벗어나 성서의 과학적, 이성적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교회는 당황하기 시작했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 스스로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때 등장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유신진화론이다.

 

종교개혁 이후에 나타난 개신교- 루터교, 장로교 및 영국성공회- 가톨릭 일부 교부들에 의해 유신진화론은 활기를 띄면서 신학사조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유신진화론은 초기에는 창세기의 창조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로 국한되었으나 급기야 챨스 다윈의 등장과 함께 창조의 모든 영역에 진화론적 해석과 주장이 확산되었다. 한편 유신진화론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다윈의 글 종의 기원을 읽고 진화론자가 된 영국성공회 사제 킹즐리(Charles Kingsley 1819-1875)하나님은 스스로 다른 필요한 형태로 분화할 수 있는 약간의 원형만을 창조하신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했다.

 

킹즐리의 주장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하나님이라는 단어 한 마디가 추가되었을 뿐 진화론과 동일하다.

 

이 같은 주장은 전통적인 인간창조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훼손하는 주장이다. 유신진화론은 한 마디로 종교개혁과 인문학의 발달로 위기를 느낀 기독교가 만들어낸 괴이한 신학사조라고 할 수 있다.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와 벤자민 워필드, 유신론적 진화론 지지

 

그 후 유신진화론에 대한 중요한 논쟁은 물밑에서 이어져 왔지만, 한동안 잠잠했던 유신진화론 문제에 불을 당긴 것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복음주의의 산실로 대표되는 구 프린스턴신학교로 부터였다.

 

대표적 인물이 복음주의 자였던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와 특히 벤자민 워필드(B. B. Warfield. 1851-1921)이다. 특히 워필드는 칼빈 스스로 어떤 진화론도 갖지 않았지만, 진화를 가르쳤다.... 무에서 생겨나지 않은 모든 것은 사실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평양신학교 교수, 어드먼과 이눌서도 유신진화론 지지

 

한국에서 유신진화론 논쟁은 생각보다 일찍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중반부터 평양의 장로교 신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미국에서의 유신진화론 논쟁이 구 프린스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영향 탓인지 한국교회에서도 이 논쟁에 불을 붙인 학자들이 대부분 프린스턴 신학의 영향 아래서 공부한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이거나 한국 신학자들이었다.

 

당시 미북장로파 선교사이며 프린스턴신학교 출신으로 평양 장로회신학교 교수였던 어드먼(Walter C. Erdman,1877-1948), 미 남장로교 선교사이며 역시 장로회신학교 교수였던 이눌서(William D. Reynolds, 1867-1951)등이 대표적 유신진화론 주장자들이었다.

 

이들은 무신진화론에 대한 반박으로 유신진화론을 주장하였는데 특히 어도만은 진화론을 원인적 진화론방법적 진화론으로 나눈다. 어드먼이 말하는 원인적 진화론이란 생명의 생성과 변화의 원인을 자연 자체로 보는 이론으로서 자연주의적(무신론적) 진화론을 가리킨다.

 

윤철호교수는 어드먼의 입장

 

반면에 방법적 진화론은 진화를 하나님이 우주창조의 방법으로 사용한 하나의 방법으로 보는 진화론, 즉 유신진화론을 의미한다. 어드먼에 따르면 전자의 입장은 성경의 창세기와 일치할 수 없으나, 후자는 우주의 창조자인 하나님을 인정하는 점에서 성경과 배치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윤철호 교수가 무신론적 진화론일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한 것은 윤 교수 역시 어드먼의 주장과 같이 방법적 진화론즉 유신진화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들과 동시대에 프린스턴에 유학했던 송창근과 김재준 등 평양중심의 보수적 장로교와 달리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한 신보수주의(혹은 신복음주의)를 표방하는 신학을 추구하며 전통문화나 현대과학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유신진화론에 동조하였다.

 

함석헌도 유신진화론 주장

 

장로교신학의 영향에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서 일본에 유학해서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의 문하생이 된 함석헌 역시 진화론적인 현대과학을 수용하고 진화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온 은총이라고 주장하였다.

 

호신대 신재식, 한양대 김용준교수, 서울대 장대익 교수도 유신진화론 지지

 

또한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바르트와 틸리히 신학을 수학하고 종교다원주의의 대변자가 된 한신대 교수 김경재가 대표적인 유신진화론자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한국교회 풍토에서 유신진화론은 크게 논쟁거리가 되지 못했으나 199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현대의 진화생물학과 신학과 철학에 대한 학제간의 연구를 통해 유신진화론을 확고하게 주장하고 전파하는 그룹이 등장하였는다.

 

전 한양대 화학교수인 김용준과 호남신학대학의 조직신학 교수인 신재식, 서울대학에서 과학철학을 가르치는 장대익 등의 주도아래 [종교와 과학 연구회]가 설립되어 유신진화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세워 나가고 있음이 백석대 최태연 교수 연구로 드러나고 있다.

 

윤철호교수도 유신진화론자

 

여기에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장신대 윤철호교수가 유신진화론자(자신은 창조적 진화론자라고 자처하지만 유신진화론이나 창조적 진화론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사상이다)임이 드러났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천주교를 포함하는 용어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의 진화론에 대한 입장은 여기서 생략한다. 다만 요한 바오로 2세가 19961022일 교황청 과학원 재설립 60주년을 축하하면서 바티칸의 과학원 회원들에게 계시와 진화에 관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이 메시지에서 비오 12세의 회칙 Humani generis(1950)를 재확인 하면서 인간과 인간의 소명에 대한 신앙교리와 진화 사이에는 아무 대립도 없다고 밝히고 사실상 유신진화론(지적설계론)을 천주교의 교리로 채택했다)

 

이런 유신진화론이 21세기 한국교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은 진화론을 과학으로 받아들이는 사회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하면 현대 지식사회에서 진화론에 대한 전적인 부정은 기독교의 생존에 큰 부담이 되고 있으며 이런 부담을 덜기 위해서 진화론과 타협한 창조신학이 바로 유신진화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유신진화론은 신앙과 사이비 과학과의 타협의 산물

 

유신진화론은 기독교 본질을 훼손하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그릇된 신학사조라고 부른 이 주장이 바로 유신진화론이다. 마디로 유신진화론은 변화된 현실에 대한 신앙과 사이비 과학과의 타협의 산물이다.

 

최근 장신대 윤철호 교수가 한국조직신학논총(2018)‘에 기고한 창조와 진화라는 글과 관련하여 논쟁이 일고 있다. 필자는 그 논쟁을 보면서 윤철호 교수가 유신론적 진화론의 신봉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학자의 입장에서 학문적으로 여러 가지 주장들에 대한 비판이나 논의는 가능하다.

 

윤교수의 주장, 성경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그러나 그 비판과 논쟁도 반드시 성경적이고 복음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벗어나면 모두 잘못된 것이다. 필자는 이 논쟁을 유발한 윤철호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윤 교수의 주장이 성경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겠다.

 

윤교수 입장에 대한 비평

 

이제 필자가 본 윤철호 교수의 주장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윤 교수는 인간은 침팬지로부터 진화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하나님이 창조한 첫 번째 아담은 침팬지에서 진화한 호모사피엔스라고 말한다는 비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98.5% 일치한다는 것은 제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상식화 되어 있는 생물학적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침팬지로부터 진화된 것이 아니다. 인간과 침팬지는 다른 계보에 속한다. 인간과 침팬지의 생물학적 DNA 차이는 1.5%에 불과하며, 생물학적 DNA의 극소한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은 인간이 침팬지로부터 진화한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답변은 새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이 답변은 침팬지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굳이 그렇다면 인간과 침팬지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해 언급할 이유가 없다. 인간과 침팬지의 생물학적 DNA 차이는 1.5%에 불과하며, 생물학적 디엔에이의 극소한 차이존재 한다교수가 여기서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인간이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조상이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진화론자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 차이는 단순히 1.5%의 차이가 아니다. 이것은 정확한 데이터가 아니다. 전체를 비교대상으로 하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편향적이고 부분적인 데이터를 뽑아낸 것이다.

 

침팬지와 인간의 DNA의 차이가 실제적으로 12%에서 19% 까지, 그리고 30억 염기서열 중 3억 개에서 6억 개까지 다르다는 것이 생물학적 증거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다른 이종(異種) 의 존재를 가까운 이웃사촌 정도라고 표현하는 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 그는 인간은 침팬지로부터 진화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침팬지는 다른 계보에 속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계통을 분류할 때, 인간·침팬지 등을 묶어 같은 亞科로 분류한다. 인간과 침팬지는 공동 조상으로 부터 약 500~600만 년 전쯤 갈라져, 인류의 조상이라는 라마피테쿠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등이 속한 호미니드(Hominidae)과와 침팬지ㆍ오랑우탄. 고릴라 등이 속한 폰지드(Pongidae)과가 나뉘어져 인간의 고유한 갈래가 나왔다고 주장하며 호미니드과의 마지막 인간 종이 바로 호모사피엔스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인간과 침팬지는 먼 옛날 공동조상에서 각각 갈라져 나와 각기 계보를 형성하며 진화한 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인간과 침팬지는 서로 다른 계보에 속하기 때문에 침팬지가 인간의 조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대답으로 분명해진 것이 한 가지가 있다. 진화의 원줄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침팬지와 인간은 한 뿌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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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침팬지로부터 진화된 것이 아니다. 인간과 침팬지는 다른 계보에 속한다.”고 답변한 유철호 교수의 주장은 그가 진화론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가 하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과 같다.

   

2. 윤 교수는 오늘날의 고고인류학의 관점에서 볼 때 성서가 말하는 첫 번째 인간인 아담은 첫 번째 호모 사피엔스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비판에 이렇게 답하고 있다.

 

이 구절의 의미는 성경에서 말하는 첫 번째 인간이 아담이고 고고인류학에서 말하는 첫 번째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라면, 고고인류학의 관점에서 볼 때 첫 번째 인간인 아담은 첫 번째 호모 사피엔스에 해당한다고 이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고인류학의 관점에서 볼 때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고고인류학에서는 호모 사피엔스를 최초의 인간으로 봅니다. 그러나 창세기 아담 창조 이야기의 관점에서 볼 때, 고고인류학에서 말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오늘날의 인간과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아담도 크로마뇽인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성서의 아담을 과학의 호모 사피엔스와 문자적으로 일치시켜 보려는 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신학자들의 견해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고고인류학은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연구하는 학문분야이다. 19세기 진화론의 정착과 옛 인류 조상이라 일컫는 영장류와 유인원 화석의 발견으로 현생인류의 시발점이 되는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까지 큰 업적을 이룬 인류 진화론의 중요한 축이 고고인류학이다.

 

고고인류학 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 등장한 첫 번째 인간이다. 윤철호 교수는 이 호모 사피엔스가 첫 사람 아담과 가까운 존재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할 무렵, 지구상에 다른 인류 조상들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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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로운 인류 화석의 발견과 과학의 혁신 덕분에 고고인류학은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유전자 분석기술의 발전으로 뼈의 생김새와 뼈에 남은 질병의 흔적이나. 뼈조직의 양상, 집단의 유전자 염기서열 등이 밝혀지면서 호모 사피엔스와 이웃으로 살았던 인간 종이 밝혀졌다.

 

이들은 13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무렵까지 지구에서 살다가 사라진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불리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흔히 네안데르탈인이라 불리는 인종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타인은 약 1만년 동안 공존하였는데 어느 시기에 네안데르타인은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게 된다.

 

고고인류학적 관점에서 의문을 갖는다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타인 중 호모 사피엔스를 현생 인류의 첫 조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신체의 유전적 인자가 현재 인간과 가장 유사하다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적 입장에서 윤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성경의 아담과 호모 사피엔스를 동일시하려면 하나님이 고고인류학에서 인류 조상이라 일컫는 두 종족 중, 호모 사피엔스를 선택하여 그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불어 넣으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남은 인간 종족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아담 외에 모두 사라진 이유가 밝혀져야 한다. 화석은 멸종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죽었다는 뜻이다. 여기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중요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아담의 출현 이전 인류의 조상들의 멸종은 아담의 범죄 때문인가?

 

그러나 죽음은 아담의 범죄 이 후에 등장한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죄 때문이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인류조상의 멸종(죽음)에 대해서 아담과 호모 사피엔스를 동일시 하려는 유신진화론 자들은 답변해야 한다.

 

3. 유신진화론을 주장하는 윤 교수의 주장을 용인하면 기독교 교리의 중요한 문제 한 가지가 발생한다. 바로 죄의 문제이다.

 

윤 교수는 아담의 창조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제가 아담이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진화론적 이유가 아니라 신학적 이유에서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완벽한 인간이라면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대 교부 이레네우스는 인간의 완전성이 시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완성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레네우스의 인간론은 오늘날 인간의 하나님 형상의 완성을 종말론적 운명으로 이해하는 판넨베르크와 같은 신학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됩니다.”

 

윤 교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이 완벽한 인간으로 창조되지 않았으며 종말에 가서야 완전에 이르도록 만드셨다고 주장한다.

 

곧 하나님의 인간 창조가 불완전하게 창조되었다는 것과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완전에 이르도록 하셨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창세기의 인간창조는 완전한 창조이다. 히브리어 바라’(Bara)는 무에서 유의 완전한 창조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남성 3인칭 단수 완료형이다. 더 이상 추가적인 조치가 전혀 필요 없는 완벽한 창조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윤 교수는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인간 창조의 완전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윤교수와 어거스틴의 견해

 

윤 교수는 아담이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진화론적인 이유가 아니라 신학적 이유 때문이라고 물하고 그 이유는 아담이 완벽한 인간이라면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인간 타락에 대한 윤 교수의 주장은 악은 하나의 본질이나 실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본성의 타락이다. “무로부터창조된 본성은 어떤 것이든 자동적으로 하나님보다 못하며 그러므로 형이상학적으로나 절대적으로 완벽하지 못하고 타락의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주장한 어거스틴의 견해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의 이원론적인 신관을 비판하는 글에서 창조자로서 기독교 하나님 개념을 설명하고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피조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이지 완벽하게 창조되지 못했기 때문에 범죄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아담이 완벽한 인간이라면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불완전한 아담 창조를 주장하는 윤 교수의 답변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고 표현하는 것은 범죄한 이 후의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지, 타락 이 전의 인간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이 범죄를 함으로서 불완전한 존재가 된 것이지 완벽하게 창조되지 못했기 때문에 범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윤교수의 주장은 하나님을 무능한 신으로 만들어

 

인간이 연약한 존재라는 말은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죽음에 이르게 된, 사망선고를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연약한 존재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이 완벽하게 창조되지 못했다면, 인간을 불완전하게 창조한 그 신을 가리켜 어떻게 전능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신 자신이 불완전하니 불완전한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윤 교수의 이 주장은 전지전능하신 성경의 하나님을 불완전하고 무능력한 신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주 잘못된 주장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인간의 범죄를 창조주 하나님의 탓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칼빈주의적 입장에서 아담의 범죄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상관관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담 범죄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여기지 않는다.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드는 것은 이단적 주장"이라고 고신 교단은 제51(2001)52(2002)53(2003) 총회에서 연속 채택하였다.

 

 

윤 교수는 이레네우스와 판넨베르그의 주장을 근거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완전성이 시초(창조 시)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종말에 가서야 완성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완벽하지 못하게 피조 된 인간이 종말에 가서야 완벽한 인간이 된다는 뜻으로 인간의 완전성은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종말에 가서 완성된다는 뜻이다. 인간이 진화되어 간다는 주장을 어렵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궤변이다.

 

인간은 범죄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다. 칼빈의 주장대로 완전히 타락하여 스스로 회복이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범죄로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 주셨다.

 

중생한 성도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성화) 해 가는 것이지 미완성의 존재에서 완벽성이나 완전성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다.

 

유신진화론의 주장대로 호모 사피엔스와 아담을 동일 시 하게 되면 고고인류학자들이 주장하는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인류조상들의 죽음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 고고인류학자들은 인류 조상종족들의 부침이 종() 자체의 결함이나 환경적 문제도 있지만 종 상호간에 싸움이 지속되어 온 것을 이들의 화석 연구를 통해서 밝혀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담이 호모 사피엔스와 동류라면 다른 인류조상들의 죽음은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이 된다. 죽음(사망)은 죄가 가져온 결과이기 때문이다”(5:12, 6:23) 

 

진화론자들, 간극설 주장

 

진화론자들은 간극설, 혹은 간격설(Gap Theory)이라는 것을 주장하며 첫 창조와 재창조 사이에 고대동물들과 유인원이 살다가 죽어서 화석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간극 이론 신봉자들은 물론 격렬하게 부인하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이 이론은 유신론적 진화론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이들은 진화에 필요한 모든 시간을 창세기 1장에서 창조가 다시 시작되기 전인 아담 이전 세상’(pre-Adamic world)으로 억지로 밀어 넣는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죽음이 인간(아담)의 타락 이전에 있었다는 주장인데 이것은 한 사람(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성경의 가르침에서 어긋나는 주장이다.

 

윤철호교수의 유신론적 진화론은 사이비 진화론

 

진화는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을 할 뿐 완벽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므로 윤 교수가 이레네우스를 빙자하여 주장하는 인간의 진화적 창조론은 종말론적으로 완성된 인간으로 점진적으로 진화해 가는 것을 주장함으로 진화가 완벽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진화론의 일반론과도 모순이 되는 사이비 진화론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윤철호교수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습니다. 즉 이 스펙트럼 안에는 전통적인 창조론에 가까운 입장도 있고 이신론에 가까운 입장도 있습니다. 본인의 입장은 자연의 창발적 진화 과정 안에서의 하나님의 창조적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온건하고 보수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이 보수주의자라고 말한다.

 

보수주의는, 창조질서와 인간의 원죄를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 세계관을 전제하고 인간 상위의 초월적인 도덕적 질서와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보수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진 윌리엄 버클리(William Buckley Jr.)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종교적일 필요는 없지만 종교(기독교)에 적대적일 수는 없다고 한 말을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나 복음주의 자들은 유신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다.(유신진화론을 인정하는 신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주의를 향해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한다)

 

유신진화론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진화라는 방법을 이용해서 우주세계를 창조했다는 괴상한 억측이다. 현대에 이르러 과학을 폄하하고 거부하면서, 종교와 분리하려는 유신론적 교회는 사회적인 설득력과 신뢰를 잃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상황과 사회 환경에서 우주와 생물의 기원에 대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그 일을 진행했다고 하면 성서와 진화론과의 갈등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그릇된 착각에 빠져 성경이 증언하는 창조를 사실상 부정하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라는 미명하에 신학교수가, 더구나 우리 장신대 교수들이 이런 주장에 앞장서고 있는 현실이 매우 염려스럽다. 신앙은 딱 맞아떨어지는 과학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유신진화론이 일부 기독교 학자들이 과학을 앞세워 세상과 타협하려는 거짓과 은폐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고, 이들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더 유익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이라는 칼빈의 권고가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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