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유산답사기(안동편)

안동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미 철학적으로 준비된 지역

편집인 | 입력 : 2021/06/10 [08:31] | 조회수: 39

한국사회에 기독교에 정신적인 영향을 끼친 안동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퇴계의 사상과 삶을 연구해 볼 필요성이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사실상 유교적 기독교이다. 유교를 설명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기독교를 말하기 어렵다. 특히 영남의 기독교는 유교적 기독교로서 이퇴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영남 기독교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1세대 목사로서 '봉경 이원영'은 이퇴계의 14대 후손이기도 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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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독교는 절대적으로 이퇴계의 사상과 유교의 사상속에서 해석된 유교적 기독교이다.  

 

이퇴계와 함께 조선 왕조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었던 이율곡(1536-1584)은 "선생은 세상의 유종으로서 조광조(정암) 뒤로는 서로 비견할 사람이 없다. 그 재주와 기국은 혹 정암에 미칠지 모르겠으나 의미를 탐구하여 정미한 것까지 드러내는 데서는 정암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여 학문에 있어서 이퇴계를 극찬한 바 있다.

 

  이율곡

 

시일야방성대곡의 장지연(1864-1921)도 "공맹정주의 도를 환히 우리 동방에 다시 밝힌 사람은 오직 선생 한 분뿐이라"고 했다.

 

일본 유학자인 '도변예제'는 "퇴계의 학식의 조예야말로 원. 명의 제유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한중일 학자중에서도 퇴계가 최고의 학자임을 역설하였다.    

    

 

퇴계는 성은 李이고 이름은 滉으로서 연산군 7년(1501년) 지금의 안동군 도선면 온혜동에서 태어나 후학들을 양육하기 위하여 도산서원을 만들기도 했다. 

 

 생가


퇴계는 관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관료이기도 했지만 그의 저술로 보았을 때는 학자이기도 했다.

 

다른 한 편 도산서원을 세워 많은 후학들을 길러냈기 때문에 교육가이기도 했다. 퇴계는 "천하에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은 더 없는 기쁨이다"고 말하여 후학을 양육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퇴계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맨 먼저 소학으로부터 시작하여 대학, 삼경, 논어, 맹자 및 주자서의 여섯가지를 기본으로 삼았다.

 

교육방법으로는 정주계통의 해석을 기준으로 삼고, 특히 義理를 탐구하되 경의 태도를 더불어 지니는 지행합일을 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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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행합일을 교육이념으로 삼은 퇴계에 대해 제자들은 권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벗을 대하듯 가르쳤고, 어린 제자라 하더라도 이름을 부르거나 '너'라고 하지 않았고, 항시 예를 갖추었고, 공손하여 敬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제자가 오면 먼저 부형의 안부붙 물었고, 제자가 먼 길을 떠나면 반드시 술을 대접하여 보냈고, 수업을 할 때에는 각 제자의 학문 정도에 따라 각기 알맞게 가르쳤고, 만일 이해하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이해할 때까지 반복하여 가르쳤고 조금도 염증을 내지 않았다.

 

몸이 아파도 중병이 아니라면 강론을 계속했고, 세상을 떠나기 한 달전까지도 강론을 하였을 정도로 훌륭한 교육자였다.

 

그는 임종시까지도 "평소에 올바르지도 못한 견해를 가지고 종일토록 강론한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겸손함까지 드러냈다.  

 

그는 유언에서도  "예장을 사절한 것"과 "비석을 세우지 말 것"을 부탁하기까지 했다. 그는 비석대신에 작은 돌을 사용하라고 했다. 그는 성리학자로서 도덕적인 인격의 완숙함을 보여주었다.

 

퇴계가 평생 학문을 벗 삼은 것은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은 우주만물을 설명하는 형이상학적인 체계보다도 형이하학체계로서 수기정덕을 통한 도덕적인 인격의 완성의 역점을 두었다.

 

퇴계는 그 인격 완성의 전제 위에서 안인, 치인이라는 유가 본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런 이유로 성리학은 자신의 인격형성에 의한 진정한 인간의 성취를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성리학은 이와 기를 갖고서 우주만물의 이치를 설명하는 것보다 인격완성에 촛점을 둔 학문이었다.     

 

성리학은 참된 인간으로서 "본래적인 자기를 위하는 것"이 학문방향이었고, 목표는 군자라는 이상형의 인간이었다. 성인이 가상적 완성인으로서의 이상인이라면 군자는 유가의 실제적인 실현 가능한 이상인이었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실상 성인이었다. 기독교가 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유가는 군자라는 성인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성리학에 있어서 도덕적인 이상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끝없는 자기 수양과 함께 인생과 우주에 대한 깊은 형이상학의 철학적 이해가 요청되었다. 

 

그러는 의미에서 퇴계의 형이상학세계를 논하는 이기이원론은 형이하학세계에서의 자기 수양의 전제조건이었다. 그는 형이상학세계와 형이하학세계를 연결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이슬 머금은 풀잎 싱그러이 물가에 우거지고

작은 연못의 물 티없이 맑고 깨끗하도다

떠가는 구름과 나는 저 새도 본래의 연관이 서로 있는 것

다만 때때로 제비의 차고 가는 발 길에 물결 일까 저어되도다.    

     

퇴계의 이기이원론

 

理는 법칙, 氣는 존재

 

理란 진리를 뜻하기도 하지만 원리, 원칙 등 일체의 법칙을 말한다. 이것은 그렇게 되는 까닭을 뜻하는 소이연(所以然)이나 당연한 것을 뜻하는 소당연(所當然)으로  나타내어 진다.

 

理는 선의 원리, 선자체의 뜻으로 통용되기도 하고, 사물의 형식, 본질의 뜻도 가진다. 만물을 이루는 理의 전체가 곧 태극이다. 

 

理의 특징은 경험을 초월한 초경험적이고, 추상적이며 보편적이고 형이상학적이다. 理는 道로 대용되기도 한다.   

 

理가 형이상학세계의 법칙, 원칙, 道로서 존재한다면 氣는 형이하학세계에 사물이 실제로 드러나는 존재의 측면을 가진다. 그런면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현상이거나 사물의 질료로 볼 수 있다. 理과 氣의 차이는 경험의 영역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이데아와 질료

 

경험할 수 없는 플라톤의 이데아 영역은 理이고, 경험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역은 이데아적 형상을 갖고 땅에서 경험가능한  질료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일체의 존재는 질료와 형상의 결합이며, 가능성(질료)이 현실성(형상)으로 전화ㆍ발전하는 것으로 보았다.

 

질료에는 수동성을, 형상에는 활동성을 부여함으로써 운동의 시원과 목적을 형상에 귀착시켰다. 여기에서, 운동의 시원으로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는 것, 즉 '움직이지 않는 최초의 움직이는 것'으로 신(神)을 내세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같이 초월적인 이데아를 인정하는 관념론자는 아니고 그가 자연을 논하는 경우에는 유물론적 색채가 농후하다.

 

퇴계에 있어서도 서구의 철학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경험불가능한 형이상학의 세계와 경험가능한 형이하학의 세계를 논하는 것은 공통점이 있다. 그런면에서 사물의 질료는 기와 같다. 

 

기는 형이하학의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氣는 때에 따라서 기운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오행(金木水火土)또는 質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모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기이다. 그러므로 기는 경험가능한 형이하학의 세계를 논한다.

 

일원론

 

퇴계의 철학사상을 알기위해서는 일원론과 비교연구하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일찍이 서화담은 일원론에 치중을 했다.

 

이는 기를 떠나서 따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이는 다만 기의 작용에 따라 생각될 수 있는 기작용의 조리 또는 질서라고 밖에 보지 않았다.

 

서화담은 기밖에 이가 있지 않음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기뿐이다고 했다. 서화담은 오직 하나의 기가 시종도 생사도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나 퇴계는 서화담에 대해서 기한편에만 치우쳤다고 보았다.  퇴계는 기에 대해서 결코 상존하거나 불멸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불멸 항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가 아니라 이라고 주장했다. 이기이원설이다. 퇴계의 경우 "氣는 생멸하고 理만이 항존하므로 理야말로 실재"라고 주장했다.  

 

퇴계는 철두철미한 이기이원론자로서 이와 기를 분리하였고, 이가 동하면 기가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주렴계의 태극이 동하여 양을 생하고, 정하여 음을 생하였다는 이론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론처럼 "이는 태극이 동하자 양의 기가 생겼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기의 존재에 앞서 이가 독자적으로 선재한다는 전제를 수용한 것이다.

 

태극이 음양에 앞서 존재했다는 주자설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음양을 태극의 소생으로 보고, 태극을 음양의 능생자로 본것 이다.

 

퇴계의 사단칠정론

 

퇴계의 이기이원론은 심성론인 사단칠정론에까지 적용된다. 원래 사단이란 맹자가 처음 말한 것으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라는 네가지 정을 말한다.

 

정을 단으로 표현한 까닭은 이것이 바로 "인, 의, 예, 지"라는 네가지 선한 본성을 드러내는 이른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인의예지는 사단이다.

 

칠정은 예기에서 처음 말하여진 것으로 희, 노, 애, 구, 애, 오, 욕이라는 정들을 가르킨다. 이것은 인간의 정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칠정 자체로는 중립적이다. 

 

퇴계는 사단칠정에 대하여 사단은 이의 발이고, 칠정은 기의 발이라고 한다. 사단은 모두 선하지만 칠정은 "본래는 선하지만 중립적으로 악으로 흐르기 쉬운 정서"라고 판단했다. 

 

"사단은 인의예지의 성으로부터 발하지만 칠정은 외물이 形氣(감각기관)에 감촉되어 중심에서 동하게 되어 경으로 말미암아 발하는 것이 다르다"고 하여 사단과 칠정을 구분했다.

 

사단은 선자체이고 칠정은 언제든지 악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중립적이면서도 변화무쌍한 정서이다.

 

그러나 이기일원론의 고봉 기대승은 젊은 나이에 퇴계의 사단칠정구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서화담과 이율곡 계열의 일원론자이기 때문이다. 

 

지역적으로는 호남의 기호학파가 영남의 학파에게 문제점을 지적한다. 호남은 경험론을 중시했고, 영남은 퇴계의 영향을 받아 이기이원론을 중시했다.

 

그래서 호남은 경험론적인 저항속에서 경험론적인 예수를 받아들였고, 영남은 유교를 통한 도와 원칙의 예수를 수용했다. 

 

고봉 기대승은 퇴계의 해석을 지적했다. 고봉은 주희는 불상리로서 기와 이를 분리하지 않는데 퇴계는 이기이원론으로 사단과칠정을 분리한다는 것이다.

 

고봉은 사단과 칠정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사단이 칠정내에 포함되는 만큼, 사단칠정의 의미란 정의 일부를 말하느냐 전체를 말하느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주리론자들은 "사단과 칠정은 엄격히 구분된다. 사단은 이理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칠정은 기氣를 중심으로 설명해야 한다. 사단과 칠정은 표출되는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여 서로 떨어져있는 것으로 주장했다. 

 

이러한 이론은 훗날 기대승의 질의에 무너지고 만다. 주희는 이와 기가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불상리를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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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론자들은 이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주희의 불상리를 강조한다. 반면 주리론자들은 이와 기는 잡다하게 섞일 수 없다는 불상잡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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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고봉의 입장에서 이 또는 기하나만으로 사단과 칠정을 나누는 해석은 있을 수 없고 사단은 칠정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주희의 불상리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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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퇴계는 한 보 양보한다. 사단칠정의 의미가 다른 만큼 이와 기가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끝까지 고집하지만 "사단은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함에 이가 탄 것이다"고 하여 사단칠정론은 사실상 이기일원론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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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주리론자들은 상위 그림에서 보듯, "사단과 칠정은 엄격히 구분된다. 사단은 이理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칠정은 기氣를 중심으로 설명해야 한다. 사단과 칠정은 표출되는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여 서로 떨어져있는 것으로 주장했지만 훗날 기를 중시하는 일원론의 젊은 학자 기대승의 질의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기이원론과 이기일원론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기독교가 표방하는 삼위일체은 이기이원론의 불상잡과 이기일원론의 불상리를 모두 포함했다. 

 

칼케톤 신조를 보면 불상잡, 불상리이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아울러 완전한 사람이며, 두 본성은 나누어지지 않고, 분리되지 않으며, 변하지 않고, 혼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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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는 불상잡, 불상리였다. 영남은 철학적으로 퇴계의 사상을 통하여 이미 개신교의 삼위일체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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