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교리적 질의에, 당회, 노회, 교수들까지 나섰다

그러나 치리회와 교수의 권위로 팩트를 왜곡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

편집인 | 입력 : 2021/07/12 [05:49] | 조회수: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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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인  것이다.

 

 개인의 교리적 질의에 당회, 노회, 장신대교수들까지 나서 눈길을 끌고있다. 제도적 권위로 팩트를 덮겠다는 것이다.

 

새문안교회 이경의 집사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 이상학목사의 논문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질의했다.

 

질의 1.  이상학목사의 박사학위논문이 예장통합교단의 헌법에  나오는 교리편과  일치하는지요?
질의 2. 한의 치유가 구원의  수단이 될수 있는지요?
질의3. 한은 우리 민족의 극도의 슬픔이 녹아진 종교심리학적 용어인데 기독론을 대신 할 수있는 용어인지요?
질의4. 한은 구조적인 악으로서 민중의  개념에서 출발한 단체의 정서를 뜻하는 개념이고 속죄의 개념은  죄를  용서받는  개인의 개념인데 단체의 개념이 개인의 개념을  대체할 수 있는지요?
질의5. 한을  통한 개인의 구원의 개념을 주장하는 것이 기독론에  벗어난다고 판단하는데 교단 헌법에 비추어  볼 때 교리적으로 하자는 없는지요?

 

A.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질의하자,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는 절차하자를 근거로 반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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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경의 집사는 다음과 같이 절차를 준수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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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새문안교회 당회

 

팩트에 자신없는 새문안 당회, 한을 구원의 수단으로 정당화

 

이과정에서 새문안교회 당회가 총회에 서류를 반려하라고 적극 개입한 것이 드러났다. 박사학위논문을 총회 이대위가 다룬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팩트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절차하자를 강조했다. 사실상 한을 구원의 수단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기독교의 본질적 교리대신 담임목사를 선택하였다.

 

새문안교회 당회는 서류 절차상 하자가 명백하기 때문에 반려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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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교회 당회, 총회장 책임까지 묻는다고 압박


교리에 대한 개인질의가 교회의 덕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반려하지 않을 경우 총회장의 책임을 묻는다고 일개 교회 당회가 총회장을 압박했다. 새문안교회가 한이 구원의 수단인지 아닌지에 대해 답변을 못하게 하고 있다. 결국 이대위는 정치적 압박에 굴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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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위, 규칙부는 개인의 질의에 대해서 답변해주고 있다.

105회 총회시 임원회는 다음과 같은 질의건이 올라오자 처음에는 반려하고 다시 올라오자 이대위로 이첩하였다.  

 

 105회 총회회의안



총회임원회, 서울노회로 이첩

 

처음에 총회임원회는 서류를 반려했으나 이경의 집사가 부전지를 첨부하여 재질의서를 보내자 이를 서울노회에 이첩을 하고, 서울노회는 새문안교회 당회에 새문안교회 당회는 장신대에 의뢰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장신대에서 끌어냈다.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다.

 

C. 장신대

 

장신대 총장 직속 검토위원회는 장신대는 이상학목사를 두둔하기 위해 ""본 논문은 한국에서 한을 경험하는 개인들에게 초점을 두면서 구원을 한의 치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며, 한의 치유가 구원의 과정안에서 포함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고 답변했다.

 

장신대 교수들은 1) "이상학목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예장통합교단의 헌법에 나오는 교리편과 일치하는지요"라는 질의에 대해

 

"본 논문은 한국에서 한을 경험하는 개인들에게 초점을 두면서 구원을 한의 치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며, 한의 치유가 구원의 과정안에서 포함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성서에 나오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는 메시야의 사역(사61장)과 다른 본 교단의 교리편(특히, 21세기 신앙고백서)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의 넓은 차원에 포함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이해를 더 풍성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고 했다.        

 

2) 한의 치유가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요? 에 대해

 

"본 논문은 성경에서 드러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과정안에 치유가 포함될 수 있는지를 논구하며, 특히 한이 경험하는 개인들에게  한의 치유가 구원의 과정안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고 했다.

 

3) 한은 우리 민족의 극도의 슬품이 녹아진 종교심리학적인 용어인데 기독론을 대신할 수 있는 용어인지요?에 대해 

 

장신대 총장직속 검토위원회에서 장신대 은퇴 조직신학자들은 " 본 논문은 서론에서 논문의 다섯가지 주용한 한계들을 극복하고(p5-6) 결론에서 논문의 네가지 중대한 한계점을 언급하고 있는데(p. 216),  특히 후자의 4번째 한계점에서는 본 논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다루는 기독론을 연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p. 216). 그러기에 본 논문은 한의 용어로 기독론을 대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본 논문은 한을 경험한 개인들의 치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사역에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 며 이상학목사를 두둔했다.  

 

4) 한은 구조적인 악으로서 민중의 개념에서 출발한 단체의 정서를 뜻하는 개념이고, 속죄개념은 죄를 용서받는 개인의 개념인데, 단체의 개념이 개인의 개념을 대신할 수 있는지요?에 대해

 

장신대 은퇴교수들은 "한은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측면과 그 구조 안에서 영향을 받는 이들의 개인적인 측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 논문은 민중신학의 집단적 정서로의 한보다는 개인이 경험하는 아픈 상처로서의 한을 다루고 있기에 본 논문이 단체의 개념을 개인의 개념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고 했다.

 

5) 한을 통한 개인의 구원의 개념을 주장하는 것이 기독론에 벗어난다고 판단하는데 교단헌법에 비추어 볼 때 교리적으로는 하자가 없는지요지요?  에 대해

 

장신대 은퇴교수들은 "본 논문은 서론에서 논문의 다섯가지 주요한 한계들을 언급하고(p.5-8), 결론에서 논문의 네 가지 중대한 한계점들을 언급하고 있는데(p. 216), 특히 후자의 네번째 한계점에서는 본 논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다루는 기독론을 연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p.216). 그러기에 질의 5)는 본 논문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고 했다.    

 

 

 

 



 

질의자, 검토위원들 중학교 영어실력으로 폄하

 

장신대 조직신학자로 구성된 검토위원들이 해석한 것에 대해 이경의 집사는 "유독 장신대 검토위원들만 한글사전을 펼쳐놓고도 해석하기 힘든 애매모호한 답변과 그나마 5개 항목 중 하나는 답변불가를 보내왔습니다. 검토위원들이 중 1정도의 영어 실력이 없어서 그랬을리는 만무하고 그들이 일말의 양심들이 있기는 했던 모양입니다"고 비아냥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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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질의에 대해 왜 당회와 노회가 지나치게 개입

 

이경의 집사는 이상학목사의 구원관에 대해서 질의한 것인데 "왜 당회가 지나치게 개입하느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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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서울노회 종로시찰회


개인의 질의에 대해 당회뿐만아니라 노회까지 적극 개입하였다. 시찰회서기로서 서울 연동교회 김주용목사까지 개입하였다.

 

단순한 개인의 질의에 대해 서울노회, 종로시찰회는 "이 문제는 교회와 장신대로부터 이미 검증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경의 은퇴집사 개인이 다시 총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총회 임원회에서는 세밀한 법적인 상의 없이 수용하여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로 보냈다는 소문을 듣고,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 부당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종로시찰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목회자들은 다시는 개인이 노회와 총회의 질서와 절차를 무시하고 목회자와 교회를 흔들지 못하도록 임원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 강력하고 확실하게 처리하여 주실 것을  요청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고 하여 절차적 하자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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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위, 결국 정치적 부담때문에 반려

 

결국 이대위는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새문안교회 당회, 서울노회가 들고 일어나 총회장까지 압박하니 절차 하자를 이유로 들어 서류를 반려하고 말았다.

 

장신대도, 현역교수가 아니라 은퇴교수가 답을 한 것도 절차하자 

 

한의 치유가 십자가의 도를 대치할 수 있는지 본질적인 질의에 대해 장신대는 현역이 아니라 은퇴 조직신학자들이 답변하는 절차하자를 범했고, 서울노회는 이러한 절차하자식 답변을 정당하게 판단했고, 오히려 이경의집사의 개인적 질의를 절차하자라고 평하였다. 내로남불이다.

 

서울노회가 서울강남노회처럼 집단적으로 범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박노철목사(전서울교회담임)을 지지했던 서울강남노회는 패소하고 말았다. 박노철목사는 출교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서울노회도 지나칠정도로 특정 개인을 지지하여 교단 헌법을 위반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대위는 정치적 부담이 되니 한이 구원의 도구인지 치유의 도구인지 조차 답변하지 못하는 겁장이 교리판별 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힘없는 사람들과 군소교단에 대해서만 이단운운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팩트는 무엇인가? 우리는 장신대 조직신학자들의 해석을 져버리고 이상학목사가 직접 쓴 팩트를 갖고 판단해 보자.

 

권위대신 팩트

 

현재 교단은 치리회 권위로, 장신대는 교수의 권위로 팩트를 왜곡하고 양심의 자유를 져버리고 있다. 이는 논리학의 오류론에서 귄위의 오류이자 교단의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위반하는 것이다. 교단의 교리편의 성문법은 살아있는데 해석으로 성문법을 왜곡하고 있다. 교수와 치리회, 이대위가 교리편의 신앙고백과 정치편의 양심의 자유라는 성문법을 위반하여 범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귄위대신 팩트를 보자. 다음은 이상학목사 개인이 자신의 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Abstract
 
Reclaiming the Understanding of Sin and Salvation from a Korean Experience of Han  (한국인의 한의 경험으로부터 구원과 죄악의 이해 회복)
 
Sanghak Lee (이상학)

 

From the Korean experience of han, Christian theology needs to change the primary model of sin from the forensic one, which is led by the dominant metaphor of guilt/debt, to the medicinal model, which is initiated by the dominant metaphor of wound/damage.

 

한국인의 한의 경험으로부터 기독론은 유죄의  지배적인 메타포(은유)에 의한 법정 모델로부터 상처의 기본적인 메타포에 의해 시작되는 치료적인 모델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    

 

Especially, as a dominant type of atonement in the Korean Protestant Church, the penal substitution theory of atonement has led to an overemphasis on the event of the crucifixion while overlooking the Christ event as a whole;

 

특히 한국개신교에 있는 속죄의 지배적인 유형으로서 속죄의 형벌대체이론은 대체로 그리스도의 사건을 간과한 채 십자가의 사건을 지나치게 강조해왔다.   

 

it has distorted the proper positioning of atonement, redemption, and salvation in soteriology; and it has interpreted the cross as a retributive rather than a restorative event. As a result, it functions and even dysfunctions in a person experiencing han.

 

형벌대체이론은 구원론에 있는 구원과 속죄의 적절한 위치를 왜곡시켰다. 그것은 십자가를 회복사건으로 보기 보다는 인과응보사건으로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십자가 사건은 한을 경험한 사람에게 바른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기능장애(역기능)를 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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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model falls short of being an effective model of salvation for people who are deeply wounded by radical suffering.

 

이 모델은 과격한 고통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효과적인 구원의 모델이 되지는 못한다.

 

Through the lens of metaphorical usage of sin, its primary metaphor in the victim is wound/damage which needs to be healed rather than forgiven. Based on the biblical tradition and the Greek (Eastern) theological tradition, the metaphor of healing in the discourse of salvation in the Bible is not merely one of many secondary metaphors.

 

죄악의 은유적인 사용법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볼 때, 희생의 주된 메타포(은유)는 용서받는 것 보다는 오히려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처(한)이다. 성경의 전통과 동방신학의 전통에 입각할 때, 성경의 구원의 담론에 있는 치유(한)의 메타포(은유)는 단지 많은 이차적인 메타포(은유)의 하나가 아니다.

 

 Rather, it is only when we rightly understand the semantics of healing in soteriology that the deeper meaning of Christian salvation is clearly revealed. On behalf of the salvation of all human beings, especially of those suffering from unresolved wounds, the metaphor of healing should obtain a more prominent position than it currently holds. The meaning of salvation from the experience of han centers on the recovery of one's full humanity;

 

오히려 우리가 구원론에서 치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때만이 기독교 구원의 더 깊은 의미가 확연히 드러난다. 모든 인간들의 구원을 위하여, 특히 해결되지 않는 상처(한)로부터 오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 치료의 메타포(은유)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현저한 위치를 얻어야 한다.  한의 경험으로부터 구원의 의미는 한 사람의 완전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salvation should include self-acceptance; the image of salvation is an ongoing process of sag-him toward one's full humanity; and this journey requires both God's grace and human beings' authentic participation.

 

구원은 자기 수용을 포함해야 한다; 구원의 이미지는 한 사람의 완전한 인간성을 향한 삭힘의 진행 과정이다; 그리고 이 여행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진정한 참여를 요구한다.

 

 

  이상학목사 박사학위 요약본(GTU, Ph.D)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대형교회 목사건은 답을 못해

 

이상 개인의 질의에 대해 새문안교회 당회, 서울노회, 장신대가 조직적으로 나서 이대위가 답변을 하지 못하게 하는 범죄를 저질러 양심의 자유를 위반하고 말았다. 제도적인 권위로 교리적 팩트를 왜곡하는 것이다.

 

결국 새문안교회 당회, 서울노회, 장신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는 이러한 논문에 대해서 신앙적 양심을 져버리고 한 줄도 비평하지 못하고 억지로 해석을 붙이거나 반려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헌법의 교리편과 정치편의 양심의 자유를 위반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새문안교회, 장신대, 이대위는 이상학과 타협할 것이 아니라 신앙양심을 갖고 하나님와 타협을 해야 했다. 그들은 경건과 학문이 아니라 학문과 경건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개인의 질의에 대해 당회와 노회는 지나칠 정도로 개입하여 오히려 파이를 더 키우고 말았다. 


예수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팩트대신 당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산헤드린, 로마 총독이라는 권위에 의하여 희생되었다. 권위로 팩트를 왜곡하는 것은 범죄이다. 이경의집사는 총회결의 조차 준수하지 않는 서울노회와 새문안교회가 언제부터 총회결의를 준수했느냐고 묻는다. 제105기 총회장에서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한마디 발어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교회에 돌아와 총회 결과에 대하여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반대한 이상학목사와 새문안교회 당회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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