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교수님들의 격문(檄文)을 읽고

장신대 교수들, 양심적으로 스스로 답해야

공헌배 | 입력 : 2018/08/11 [18:15] | 조회수: 281

 

지난 8월 7일 총회재판국의 발표가 있은 후, 장신대의 교수님들은 집단행동으로 격문(檄文)을 발표하셨다. ‘격문(檄文)’이라는 말의 뜻은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의분을 고취하려고 쓴 글, 백성을 독려하고 일깨우거나 죄를 책망하기 위해 짓는 글”이다.

 

그런데 그 책망의 대상이 총회의 재판국과 M교회였다.

 

심지어는 이를 경술국치에 견주는가 하면, 빌라도의 재판에까지 견주었다. 그러니까 총회의 재판국이 빌라도의 재판과 같은 판결을 했으며, 그 재판으로 인한 수치가 마치 경술국치의 수준과 맞먹을 정도란 말씀 아니겠는가?

 

물론 이와 같은 주장들은 선언이며, 당연히 동질선상에서 비교될 바도 아니거니와 총회재판국에 대한 법정모독의 발언들이다. 이미 판결을 선고하기 전에, 기도회를 통해 재판국원들의 이름들까지 하나 하나 불러가며 했다는 데, 이게 협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론재판이나 인민재판을 하고 싶은 것인가?

 

그리고 불법이라고 했는 데, 그게 불법인 지 합법인 지를 가리는 것이 그 재판의 핵심 아니었는가? 그런데 왜 불법으로 단정하면서 불만을 표했는가?

 

그분들은 이번 일로 통합 교단 자체가 뿌리 채 흔들린다고 했는 데 과연 그런가? 이 교단은 개(個)교회 하나 때문에라도 뿌리가 흔들릴 만큼 취약했는가? 아니면 선동들을 통해 뿌리마저도 흔들고 싶은 것인가? 왜 이 한 개의 재판으로 교단의 뿌리까지 흔들려야 하는가?

 

혹시 통합 교단은 이 일 아니어도 뿌리마저 흔들릴 만큼 심각한 그 무엇들이 있었는데, 그 핵심을 놓친 채 엉뚱한 곳을 향하여 분풀이를 하는 것은 아닌가?

 

재판국원들에게 ‘양심선언’하라고 주문하시던데, 이게 협박인 지, 강요인 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답 하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마치 명령문 쓰듯 하는 그 요청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무슨 양심선언을 하란 말인가! 재판국원들은 판결로써 이미 말했지 않은가!

 

장신대의 교수님들은 명성교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의 편에 섰다고 했는데 그걸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그리고 김하나 목사님이 교단의 근간을 흔들고, 한국교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고 하셨는데, 세상에!! 김하나 목사님이 그만큼 능력 있는 분이었던가! 그리고 목사 한분 때문에 교단전체가 흔들릴 만큼 그 교단은 취약했는가! 신학교수님들의 판정들은 왜 그런 식인가? 대형교회의 목사 한 분 때문에 그토록 흔들릴 일이라면, 자(自)교단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 준 반증 아니겠는가?

 

정말 그 교단의 어려움이 김하나 목사님 때문이란 말인가? 아니면 교단이 어려운 이유가 다른 곳에 있었는데 김하나 목사님에게 뒤 집어 씌우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개별적으로 김하나 목사님이 밉기 때문인가?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이 땅의 양심적 그리스도인들에게 호소한다고 하셨는데, 양심은 인간들의 판정범위를 넘어 선다. 그리고 그런 선언문을 발표하신 신학교수님들은 얼마나 양심적이셨는가?

 

프랑스에서 공부하시고 귀국하신 것으로 소개 된, 모 신학자 분이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해 물류회사에서 근무하시다가 소천하신 일이 있었다. 그분의 죽음에 대해 장신대의 교수님들은 과연 가책을 느끼셨는가?

 

해마다 소망학술상을 한국기독교 학회에서 시상하시던데, 전에 보니까 전임교수님도 그 상금을 받으시더라, 기왕이면 어렵게 사는 분에게 그 상금을 주시는 것이 좀 더 염치 있는 일 아니겠는가?

 

명성교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들의 편에 선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장신대의 교육행정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실행됐는가? 장신대를 위한 그 많은 후원금들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늘에서 곧 바로 떨어졌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헌금으로부터 갔는가? 장신대는 통합 교단 7개 신학대학들 중 어느 곳보다도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은 듯도 한데, 이것은 기득권 대물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장신대는 어떤 분의 희사로 서울을 벗어난 곳의 넓은 부지조차도 거부했을 만한 서울주의자들 아니었는가? 즉 그분들은 지방 가기를 싫어했지 않은가? 예수님을 말씀했지만 예수님은 지방이나 변두리에서도 활동하신 분 아니겠는가!

 

2016년 대통령 탄핵의 바람들이 불었을 때 장신대에서도 입장표명을 한 일이 있었지 않는가? 그러나 장신대야 말로 1990년대 중/후반 경에 신대원 신입생의 정원을 불과 일년 사이에 몇 백 명 씩 들쭉날쭉 차이나도록 받지 않았는가? 과거의 장신대는 제법 오랫동안 신대원의 입학정원들을 교육부에서 정해 준 정원보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라도 더 받지 않았는가!

 

그래서 소위 "건축학번"이란 말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정유라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즉 정유라는 한 명이지만 장신대는 공식적으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왔다 갔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굳이 양심을 말씀해야 했는가?

 

예수님을 인용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설명해보자: 예수님은 지방이나 변두리로도 다니셨다. 그럼 장신대 출신들은 서울에서의 목회를 희망하는가 아니면 농촌이나 지방에서의 목회를 더 희망하는가? 양심적으로 스스로에게 답해 보시길 바란다!

 

장신대 교수들에게 쓴 소리

http://kidogkongbo.com/866

 

공헌배 박사는 영남출신으로서 영남신학교를 졸업하고 호신대에서 석사학위를 마쳤고, 계명대학교에서 한국사상과 접목하여 조직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영남대학교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실증사학으로 한국신학을 접근하고 있다. 현재 영주에서 목회를 하고 기독교학술원연구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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